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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3]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5(눅 21: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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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049 2013.03.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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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3]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5(눅 21:10-38)

기독교 박해

누가복음 21장 5-36절은 박해시기, 유대-로마전쟁 및 세상종말에 관한 경고들이 복합적으로 겹쳐있는 말씀이다. 10-19절은 세상의 종말이 있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박해를 받게 될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12절의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는 이 박해가 유대인들뿐 아니라 로마당국으로부터도 있게 될 것을 암시한다. 또 16-17절에서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박해시대에 고문과 종교 갈등이 때때로 가족배신으로까지 이어진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의 기회가 될 것이다”고 13절에서 말씀하셨고, 19절에서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생명을 얻어라”고 권면하셨는데, 이것이 18절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의 뜻이다. 박해로 인해서 육체는 죽임을 당할지 몰라도 온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1차 유대-로마전쟁의 참패로 유대교가 세력을 잃기까지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예를 들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때리고 수없이 감옥에 가두며 돌로 몰매를 때려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렸던 사람들이었다(고후 11:23절 이하).

로마는 황제숭배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사나운 맹수에 찢기고 십자가에 못 박히며 투기장에 끌려 나가곤 하였다. 네로의 박해가 그 시발점이었다.

주후 64년 7월 18일에 로마의 대경기장 상가에서 발화된 불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크게 번져 9일 동안 로마 시의 3분의 1이상을 잿더미로 만든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항간에는 네로가 방화범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네로는 자신에게 집중된 화살을 피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세워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 쓴 채 사나운 짐승에 물려 죽었다. 바로 이 시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괴수로 지목받았고, 긴급 체포되어 로마의 지하 감방(Mamertine Prison)에 갇혀 있다가 네로가 자살하기 한 해전 67년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는 네로의 박해 때 피신하던 중에 “로마의 내 백성들이 널 찾고 있다. 네가 내 백성들을 버리면 난 로마로 돌아가 두 번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로마로 돌아가 박해받는 성도들을 위로하며 목양하다가 체포돼서 나 같은 죄인은 바로 죽을 수 없다고 간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박해에 관한 예수님의 예고는 그리스도인들의 광야길, 즉 긴 역사 속에서 자주 있을 사건들을 말씀하신 것이지, 역사의 어느 특정시기 즉 칠년 대 환 난에 집중적으로 발생될 사건들을 예언하신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하루하루가 시련의 연속이다. 하물며 어찌 신앙의 길이 순탄만하겠는가?

유대-로마전쟁

예수님은 8절에서 거짓 메시아들이 많이 나타나서 때가 왔다고 외치며 난리와 소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30여명의 거짓 메시아가 출현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거짓 메시아는 종교인이 아니라 혁명가이다. 그들이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것은 거사에 참여하라는 선동이다. 예수님은 이런 난리와 소문들이 세상 끝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 후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기까지 세 번의 난리가 있었다. 20-24절과 32-33절의 말씀은 이 난리들에 관한 예언으로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주후 66년에 발발하여 73년에 끝난 제1차 유대-로마전쟁이다. 이 전쟁을 일으킨 유대인들은 아마 한 세기 전에 있었던 마카비 혁명의 추억에 젖어 있었던 자들일 것이다.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us)는 헬라로부터 조국을 해방시켜 하스몬가왕가를 세웠고, 주전 64년 로마에 멸망하기까지 100년간 주권을 지속시킨 영웅이자 혁명가로서 메시아에 준하는 인물이었다. 유대인은 누구나 마카비 혁명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외경 마카비1,2서가 이 혁명에 관한 글이고, 해마다 기념하는 빛의 축제 하눅카에 얽힌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한 번의 성공에 대한 추억은 유대인들을 세 번의 유대-로마전쟁에로 몰아넣었다.

제1차 유대-로마전쟁이 예수님보다 한 세대 후에 일어난 전쟁이었다면, 예수님보다 한 세기 후에 제2차 유대-로마전쟁이 주후 132-135년에 발발하였다. 이 전쟁을 일으킨 혁명가는 ‘별의 아들’(Bar Kochba, 민 24:17)로 불린 코시바의 아들 시몬(Simon ben Kosiba)이었다. 시몬은 엄한 독재자였고, 로마에 대항한 3년 전쟁에 대패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1,813년간 영영히 씻을 수 없는 시련과 실망(Kozeba)을 안긴 인물이 되었다.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땅은 초토화 되었다. 58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고, 생포된 자들이 너무 많아서 노예로 헐값에 팔렸으며, 나머지는 이집트에 강제로 이주하였다. 로마황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주피터신전을 세우고, 도시 이름을 ‘아에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꿔 이방인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이때부터 5백여 년간 이슬람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할 때까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내 출입과 접근을 금지 당하였다. 오직 일 년에 하루, 아브월 9일(Tisha B'Av, 7-8월경)에만 성전이 파괴된 날을 애도하도록 방문을 허용 받았다. 이때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라는 속주 이름을 '시리아-팔레스티나'(Palestina) 곧 팔레스타인으로 바꿨고, 유대인들의 종교행위와 절기축제와 성경을 사형으로 금지시켰다. 이 전쟁의 참패로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자기 땅에서 학살되거나 추방되었고, 산 자들은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다.

또 제2차 유대-로마전쟁 직전인 115-117년 사이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곳곳에서 로마에 항쟁하였는데, 이를 ‘키토스’ 전쟁(Kitos War)이라 부른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파르티아(이란) 침공을 계기로 이집트, 키프로스, 키레나이카(리비아)의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같은 기간에 바벨론의 유대인들은 파르티아의 통치자들과 함께 그 나라에 침범한 로마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였다. 이 반란으로 키프로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육을 당하였다.

세상의 종말

24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이 이방인에 짓밟힌 역사는 매우 길다. 주전 586년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유배당한 때로부터 1948년 건국 때까지, 주권을 회복했던 주전 164-64년까지 100년을 뺀 나머지 기간이 실상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힌 기간이었다. 그 기간이 무려 2434년간이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이라면 1948년까지 그 기간이 1878년간이 된다. 그렇다고 여기가 끝은 아니다. 일부 유대교인들은 이스라엘이 아직 회복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메시아왕국이 시작되면, 613개의 계명 모두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지금은 성전이 없기 때문에 성전에 관련한 계명들을 지키지 못한다. 범법 절차들에 관한 계명들도 지키지 않는데,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도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아직 고국에 다 복귀하지 못하고 여전히 유배(디아스포라)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도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25-33절은 주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관한 말씀처럼 들린다. 27절에서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고, 29-31절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라고 권면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31절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에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재림이후에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32절에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이 기록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보다 반세기가 지난 후였다. 32절의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에서 “이 세대”는 예수님시대로 추정된다. 그런데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는 예수님의 “이 세대”가 과거 세대가 되어버렸으니까, 32절의 말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는 말씀대로 앞에서 언급하신 일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성취됐어야 한다. 만약 그랬더라면 또 그렇게 이해되었더라면, 인자의 재림과 세상 끝이 벌써 도래했을 것이므로 누가복음을 비롯한 다른 복음서들이 기록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대”는 지속되었고, 복음서 저자들은 복음서기록의 필요를 요구받고 있었으며, 재림은 지연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누가는 왜 32절의 말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하였는가? “이 세대”란 무엇인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직면한 세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여 있는 지속적인 역사적 현재 세대를 말하고자한 것은 아닌가? 교회시대를 말하고자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제한되지 않고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민중에게 들려주신 말씀들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이 된다. 중요한 것은 34-36절의 말씀이다. “그 날” 곧 주의 재림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쉼 없는 기도와 성령 충만함만이 하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잘 마칠 수 있는 보증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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