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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6]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8(눅 22: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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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342 2013.03.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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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6]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8(눅 22:24-53)

제자직에 관한 교훈

누가복음 22장 24절에서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은 9장 46-48절에서 이미 한번 언급된바가 있다. 9장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다”(9:48)고 교훈하셨다. 22장에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아야한다”(22:26)고 하셨다. 9장은 작은 자가 큰 자이니, 작은 자를 영접하라는 말씀이었고, 22장은 작은 자가 되어 섬기는 자가 되라는 교훈이다. 누가는 이 제자직에 관한 교훈을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시작하기 직전에 두 차례와 오름의 막바지에 한 차례 소개하였다.

복음서에서 제자직에 관한 교훈은 수난예고 다음에 나온다. 누가복음의 경우 제1-2차 수난예고가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시작하기 직전인 9장 22-25절과 46-48절에, 제3차 수난예고가 오름의 막바지인 18장 31-33절에 배치되어 있다. 제1차 수난예고에서 주신 제자직의 교훈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9:23) 따라야한다는 것이었고, 제2차 수난예고에서 주신 제자직의 교훈은 “가장 작은 그가 큰 자”이니, 작은 자를 영접하라는 것이었으며, 제3차 수난예고에서 주신 제자직의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18:29)가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18:30)는 것이었다.

누가복음 22장 24-30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섬기신 후에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시고 영광을 받고 계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에서 복종하고 섬긴 후에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계시록 3장 21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시기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부와 명예와 권세에 눈이 멀었던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의 부활승천과 오순절 성령강림을 겪고 난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제3차 수난예고를 언급한 18장 34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부와 명예와 권세에 눈이 멀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 병든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예고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고의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에 중독된 문화와 세속적 부와 명예와 권세로 엮긴 월계관을 쓰고 힘차게 승리의 팡파르 속에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참 가치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부와 명예와 권세를 모두 팔아서라도 그 가치를 손에 넣고자 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영안이 열려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았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의 무지와 배반까지도 참아 내셨다. 그 때를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 부와 명예와 권세와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영원하고 참된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교훈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누릴 영광

누가복음 22장 24-27절에서 예수님은 작은 자가 되어 섬기는 자가 되라고 교훈하신 후, 28-30절에서 예수님은 고난에 동참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왕권을 주신 것처럼, 왕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메시아왕국에서 메시아와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말씀은 열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약속으로써 계시록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한 약속과 동일한 보상이다. 예수님은 계시록 3장 21절에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계시록 2-3장에는 끝까지 이기는 자가 받게 될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당시 교회들은 박해의 풍랑에 직면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련을 각오해야 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채찍과 몽둥이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며, 맹수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였다. 예수님은 큰 환란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끝까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겠다”(2:17), “새벽별을 주리라”(2:28), “이기는 자는 ...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는 말씀으로 보상을 약속하셨다.

이것들은 모두 구원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잠시 받는 환난을 견디고 참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고 위로한다. 바울이 로마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예수님도 소아시아지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족히 비교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7-18절에서 말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린도후서 4장 16-18절에서도 같은 위로의 말을 적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굳게 믿으면서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왕권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이다. 이 왕권은 영적인 것으로써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의 왕권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태평천하(太平天下)를 뜻한다.

제자직수행의 능력

누가복음 22장 31-53절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이다. 기도는 제자직수행의 능력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삶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셨다. 사탄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가지고 놀 것이기 때문이다. 33절에서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습니다.”라고 예수님께 말하였으나 예수님은 32절에서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당부하셨다. 단단한 각오를 밝힌 베드로조차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 그 밤에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5-38절의 말씀은 마치 전장에 나가는 용사처럼 단단히 무장하라는 권면이다. 무장의 내용으로 전대도 차고, 배낭도 매고, 단검도 마련하라고 지시하셨지만(36절), 그 뜻은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절)는 당부였다.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단검 두 자루를 내놓았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셨다. 단검 두 자루로 무슨 혁명을 이룰 수 있겠는가?

39-53절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고 체포되신 장면이다.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 후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늦은 밤에 제자들과 함께 노숙 장소인 감람산에 오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절)고 당부하시고 자신을 위해 혼신의 기도를 바치셨다. 누가는 41-44절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습관화된 기도생활을 강조한다. 누가는 39절에서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다”고 적었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은 헬라어로 ‘에토스’(ethos)이다. 이 말은 규칙적인 행동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말에 철학적 수사학적 의미를 첨가하였다. 그는 그의 <수사학>에서 말하는 자의 자연적 성향, 기질, 도덕적 성격 등을 에토스라 불렀다. 누가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1:9), “율법의 관례대로”(2:27), “주의 율법을 따라”(2:39), “절기의 관례를 따라”(2:42), “때를 따라”(12:42), “계명을 따라”(23:56)와 같은 표현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였다. 누가는 예수님의 에토스 즉 예수님의 습관, 성향, 기질, 성격과 같은 성품을 통해서 또 자세, 옷차림, 목소리, 시선, 태도, 카리스마 등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감성인 ‘파토스’(pathos)를 자극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누가는 기도가 예수님의 생활습관이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생활을 강조한다. 예수님이 사탄의 끈질긴 유혹 또는 유대인들의 집요한 세속적 요구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기도에 있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지금도 예수님은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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