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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7]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9(눅 22: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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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95 2013.03.2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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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7]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9(눅 22:54-71)

체포와 심문과 희롱

누가복음 22장 54-71절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심문받으신 일과 베드로의 배교에 관한 기사이다. 이 내용을 당시의 상황에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잡수셨다. 유월절 식사는 18단계로써 찬양과 권면과 문답이 있고, 식사를 겸한 경건한 예식이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만찬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까운 겟세마네 동산으로 이동하셨는데, 이 날은 춘분이 지난 첫 보름날 밤이고 달이 밝게 뜬 날이어서 횃불이나 등불이 없이도 이동에 지장이 없었다.

예수님은 이곳 동산에서 힘겨운 기도를 하셨고, 자기와의 싸움에 돌입하셨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내면의 큰 고통을 눈치 채지 못했고, 피곤한 육신을 가누지 못해서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밤중이 되자,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들이 겟세마네 동산에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님을 즉시 체포했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고 갔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는 그날 밤의 거사를 도모하느라 이미 모닥불이 피어있었고, 쌀쌀한 밤 기온 탓인지 사람들은 일이 어찌 되어 가는가를 보려고 모닥불 곁에 모여들었다. 그들 사이에 베드로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초라한 행색의 그가 갈릴리 출신이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보았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속들로부터 세 번이나 심문을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때마다 강하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60절에 보면, 베드로가 세 번째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고 하였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하였다(61-62절). 그리고 그 때 동이 터오기 시작하였다.

닭이 울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신지 벌써 네다섯 시간이나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새벽이 되고서야 비로소 대제사장들이 공회원들을 소집할 수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신상문제가 더욱 신속히 처리되었다. 로마제국 당시 고관대작의 집들은 대개가 이층집이고, 집 가운데에 뜰이 있었다.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는 뜰에 있었고 예수님은 이층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는데, 마가복음 14장 66절에 보면,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 22장 61절을 보면,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로 되어 있다. 이것은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여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래 뜰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다 지켜볼 수 있도록 이층 난간 쪽에 세워놓고 심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들의 다그침에 담대하게 답변하시던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교행위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시고 아래 뜰에 있는 베드로를 연민의 눈빛으로 잠시 내려다보셨을 때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고, 이내 닭이 울었다. 그리고 동녘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닭이 울다

서울대학교 미대 김병종 교수는 자신이 그린 <닭이 울다>(1988)란 그림에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붙었다. “닭이 우는 시간은 통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의 시간이다.” 닭이 우는 시간이 통회와 고통의 시간이라 말한 것은 이해가되는데, 김병종 교수가 왜 닭이 우는 시간을 환희의 시간이라고 했는가?

배교와 닭의 울음과 여명은 일본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생각나게 한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보면, “멀리서 닭이 울었다”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본부 유물전시관에는 다 닳은 성모상이 새겨진 작은 성화판이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1637년 일본 큐슈우 시마바라(島原)에서 농민들이 과중한 세금과 기독교금지에 반항하여,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오(天草四郞)를 대장으로 삼아 난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때는 3대 막부인 도쿠가와 이에미쯔 시대였는데, 시마바라 난을 진압한 후,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이 성화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색출된 기독교인들을 ‘구멍 매달기’란 방법의 고문을 통해서 신앙을 포기토록 유도하였다.

<침묵>에 로드리고란 이름의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담당 형사는 지독하게 믿음이 강한 이 신부를 배교시키려고 이미 몇 번씩이나 주님을 저주하고 성화를 밟고 배교한 농민들을 놓아주지 않고 그들을 거적에 말고, 양쪽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한 방울씩 피가 흐르게 한 뒤 좁은 구멍에 거꾸로 매달아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죽어가게 한다. 결국 신부는 자기로 인해서 농민신도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들의 고통을 면해주기 위해서 배교의 길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성화판을 발로 밟고 지나간다. 엔도는 이 장면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 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닭이 울고 동이 튼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닭의 울음은 곧 동터오는 새날에 대한 전령의 외침이요, 그 외침에 눈을 뜨고 통회하는 자는 새날을 맞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말씀이 곧 이 뜻일 것이다. 수탉의 외침에 눈을 뜨고 귀를 여는 자만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자만이, 온몸과 마음으로 세례를 받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환희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김병종 교수가 자신의 그림 <닭이 울다>에 붙인 해설, “닭이 우는 시간은 통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의 시간이다.”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눈과 마주쳤을 뿐 아니라, 닭이 울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통회와 고통과 환희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했던 베드로는 62절을 보면,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쥐어짜며 통회했을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당혹스럽고 두려운 현실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고서도 당당히 맞서셨지만, 베드로는 하속들의 심문에 맥없이 무너져버렸다.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따져 보면, 예수님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예루살렘에도 오르셨던 반면, 베드로는 살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고, 예루살렘에도 올랐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예수님께 세 차례 이상 예루살렘에서의 수난에 대해서 들은바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베드로가 통회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배신은 단순한 실수였던 것이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기로 작정했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했으며, 돈을 받고 스승을 팔았다. 그것도 살인자들에게 팔아넘겼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득권층에서 예수님을 잡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치밀하게 손익과 비용편익을 분석해 본 후에 그들의 음모에 가담하기로 작정을 했을 것이다. 그런 유다가 뒤늦게 후회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용서를 빌고 회개하기엔 너무 멀리에 가 있었다. 또 사탄은 손아귀에 쥐고 “밀 까부르듯”(31절) 이용했던 가룟 유다가 정상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회개하지 못하고 자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룟 유다의 비극은 유대인들의 비극이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유대민중의 배신을 상징한다. 예수님께 얻고자 했던 세속적 욕망을 얻지 못한 우매한 민중의 배척을 상징한다. 반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지상 최초의 유대인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와 지상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가이사랴 교회를 창립하였고, 빌립이 세운 사마리아 교회와 바울의 선교교회들을 승인하였다. 비록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은 아니었지만, 열두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였다. 통회와 고통이 없었다면, 그는 이 큰 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네로의 기독교 박해 때 체포되어 갇혔다가 주후 67년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얍복 강가에 혼자 남아 밤이 맞도록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였다. 얼마나 힘쓰고 뒹굴었던지 환도뼈의 힘줄이 끊어져 있었다. 동틀 무렵에 하나님은 그에게 속임수와 남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살아온 지난날의 ‘야곱’이란 이름대신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혹은 ‘그가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뜻의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셨다. 통회와 고통으로 밤을 지새운 대가로 야곱은 환희의 아침을 맞았다. 그래서 그는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는 뜻으로 ‘브니엘’이라 지었다. 베드로가 통회 후에 부활의 새아침을 맞은 것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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