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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8]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10(눅 2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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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060 2013.03.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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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8]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10(눅 23:1-49)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유대총독부는 예루살렘 서북쪽 약 112㎞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 가이사랴에 있었고,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지방의 수도 디벨료에 머물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헤롯궁전과 안토니우스 성곽에 로마군 병영과 총독 관저가 있었다. 빌라도와 헤롯 안티파스는 민란이 일기 쉬운 유월절에 정치적 책임자로서 혹은 행사참여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된 직후 밤새도록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앞에서, 공회원들 앞에서, 빌라도 총독 앞에서, 헤롯 안티파스 앞에서, 다시 빌라도 총독과 군중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유월절 날 아침 8시경에는 살점을 도려내는 채찍을 맨살에 맞으셨고,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 형틀에 쓰일 가로대를 짊어지시고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오르셨으며, 기도시간인 아침 9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기도시간인 정오부터 저녁희생을 드리는 오후 3시경까지 어둠이 지속되었으며, 예수님은 저녁희생제물이 드려지는 바로 그 시각에 운명하심으로써 인류의 화목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졌다.

1968년 예루살렘의 기밧트 하미브타르 발굴에서 1세기경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유골함 속에는 요하난 벤하콜이라는 20대 남자의 유골이 들어있었다. 이 유골 중에는 18cm 길이의 굵은 쇠못이 박혀있는 발뒤꿈치 뼈가 있었다. 쇠못은 나무에 박힌 후 빠지지 않게 뒤끝이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었고, 십자가는 올리브나무였다. 그리고 쇠못은 죄수의 발등이 아니라, 발뒤꿈치 옆 복사뼈 밑에 박혀 있었으며, 아카시아 나뭇조각이 죄수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 유골함 속에는 큰 나무망치에 맞아서 부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정강이뼈도 있었다. 발견된 손과 손목뼈에서는 손바닥이 아닌 손목 위 두 개의 팔뼈 사이에 큰못을 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2천 년 전에 시행된 십자가 처형식이 어떠했는가를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되었다.

죄수가 십자가형을 받으면, 상의를 벗긴 채 나무기둥의 허리부분에 양손이 묶인다. 그러면 죄수의 벌거숭이 등이 하늘을 향하게 된다. 죄수의 등에다 동물의 뼈나 철 조각이 매달린 채찍으로 내려치면 피가 튀기고 살점이 도려내진다. 체벌이 끝나면 죄수는 십자가의 가름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형장을 향해 걷는다. 도착하면 짊어지고 온 가름대를 기둥에 맞춘다. 그리고 땅에 눕혀진 십자가나무 위에 죄수의 옆구리가 나무 바닥에 닿게 눕힌다. 그리고 죄수의 두 발이 세로 기둥에 나란히 모아진 상태에서 복사뼈 바로 밑에다 쇠못을 박는다. 굵고 울퉁불퉁한 쇠못은 두 발의 복사뼈를 관통한 다음 나무에 깊이 박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죄수의 상체를 90도 비틀고 무릎을 꿇려서 바로 눕힌다. 다음에는 끈으로 양쪽 팔목을 가름대에 묶고 양손의 손목뼈 사이에 못을 박는다. 이렇게 한 다음 십자가를 세워 고정시킨다. 상체가 뒤틀린 상태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은 산소부족과 호흡곤란으로 큰 통증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쉽게 죽지는 않는다. 낮에는 뜨거운 땡볕과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고, 때로는 날짐승의 공격을 받으며, 고통 중에서 서서히 죽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죄수를 급히 죽여야 할 경우에는 큰 나무망치로 정강이뼈를 쳐서 부러뜨린다. 그러면 횡격막이 숨통을 조여 죽게 된다. 예수님은 못 박히신지 6시간 만에 운명하셨다.

무죄한 자의 십자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에서 누가가 주목한 사실은 예수님에게 십자가에 못 박힐만한 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고,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누가는 다른 저자들과 달리 빌라도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무죄였다는 사실을 세 번 강조하였다. 4절에서 빌라도는 첫 번째로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선언하였고, 14-15절에서 두 번째로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다”고 하였으며, 22절에서 세 번째로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고소인들에게 강하게 항변하였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에 매단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명패를 마태와 마가가 “죄패‘(마 27:37, 막 15:26)라고 적었지만, 누가는 ’죄‘자를 빼버리고 그냥 “패”(38절)라고만 적었다. 또 십자가 처형을 책임진 백부장의 신앙고백을 마태와 마가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막 15:39)라고 한 것을 누가는 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47절)라고 적었다.

이것뿐 아니라, 누가는 빌라도가 죄 없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놓으려한 점을 강조하였다. 16절에서 빌라도는 첫 번째로 예수님께 죄가 없으니,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고소인들에게 선언했고, 20절에서 두 번째로 “예수님을 놓고자” 하였으며, 22절에서 세 번째로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고소인들에게 선언하였다. 또 누가는 41절에서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 함께 못 박힌 죄수의 고백까지 실었다.

누가가 예수님의 무죄에 이처럼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당시에 교회는 로마로부터 박해와 유대인들로부터 모함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바울이 곤경에 처한 것은 그분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간교한 유대인들의 모함 때문이었으며, 빌라도와 같은 로마총독들과 백부장들이 예수님과 바울의 무죄를 확인했고, 선언했으며, 석방하려고 했고, 기독교신앙에도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때문이다.

22절에서 누가는 “세 번째”란 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삼심제도를 반영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세 번째”란 말이 8번 정도 쓰였는데, 대부분 ‘마지막’을 뜻할 때 쓰였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초대교회의 박해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비두니아(Bithynia)에 111년 총독으로 부임한 소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준 후에 그래도 계속해서 신앙을 고집하면 처형토록 하였다. 기독교 초기에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침례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세 번의 침수세례를 베풀었다. 침례를 받는 자는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후에 첫 번째 침수를, “나는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후에 두 번째 침수를,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후에 세 번째 침례를 받았다. 이 세 차례의 신앙선언과 침수세례는 박해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직면했던 세 번의 배교선언과 무관하지 않았다.

용서와 기도로 승화된 십자가

누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1:35, 4:3, 8:28), “구세주”(1:47, 2:11), “하나님의 거룩한 자”(4:34), “의인”(23:47),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실 “인자”(21:27, 22:69),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분(9:51, 24:6-7),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고 섬겨야할 분, 많은 배척과 시험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길인 예루살렘에로 오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도하시며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분,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고 따라야할 분이셨다. 그분은 모태 때부터 성령 충만하셨을 뿐 아니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신 분이셨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성령님의 임재와 하늘의 음성을 체험하셨으며(3:21-22), 산에 올라 “기도하실 때’에 변모하시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신령한 체험을 하셨다(9:28-29). 또 예수님은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금식기도(4:1), 병을 고치신 후에 성찰의 기도(5:16),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철야기도(6:12), 메시아이신 것을 밝히시기 전에 홀로 기도(9:18), 주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모범 기도(11:1), 베드로를 위한 중보기도(22:32),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피땀 기도(22:41-46)를 드리셨다. 이것뿐 아니라 예수님은 간청의 기도(11:5-13), 끈질긴 기도(18:1-8), 겸손의 기도(18:9-14)를 비유로 가르치셨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상에서 박해자를 위한 기도(23:34), 강도를 위한 축원기도, 임종 전에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기도(23:46)를 드리셨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남긴 말씀은 일곱 마디이다. 마태와 마가는 각각 예수님의 절망적인 외침 한마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를 기록에 남겼고 누가와 요한이 각각 세 마디씩을 기록으로 남겼다. 요한은 영지주의 이단을 물리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에 관련된 말씀들,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요 19:26), “내가 목마르다”(요 19:28), “다 이루었다”(요 19:30)를 기록으로 남겼다.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하시고 운명하신 예수님의 삶을 당시의 고난당하던 성도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본보기로 제시하였다. 그것들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가 그것들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용서와 기도로 수치와 죽음의 십자가를 영광과 구원의 십자가로 승화시키셨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 정오 기도시간부터 저녁 희생을 바치는 기도시간까지 3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지속되고(44절),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진”(45절) 것은 성전의 민족의 담, 성별의 담, 신분의 담, 계급의 담이 허물어진 사건을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히 4:16),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히 10:19). 예수님께서 당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찢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직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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