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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구원사역의 점진적 연속성4(행 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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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621 2014.01.0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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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구원사역의 점진적 연속성4(행 1:12-26)

예수님의 기도습관에 잇대어

사도행전 1장 12절의 ‘감람원’은 올리브나무가 심겨진 산을 말한다.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 한 주간을 습관처럼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이곳 감람산에서 노숙하셨다(눅 21:37, 22:39). 체포되시기 직전 금요일 밤에도 이곳 겟세마네 동산에서 생사를 놓고 기도하셨다(마 26:30-36).

감람산에 가기 위해서는 성전 동편의 황금문을 지나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야한다(요 18:1). 기드론 골짜기는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메시아의 심판이 이곳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언(욜 3:2, 12, cf. 왕하 23:6)되어 있고, 메시아가 황금문을 지나 승천한다는 민간설과 마호메트가 황금문에서 승천하여 코란을 받았다는 설도 있어서 유대교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가 이곳을 묘지로 쓰고 있다.

누가는 예루살렘 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 감람산을 예수님의 승천장소로 밝혔는데, 이 산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도 그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누가는 그곳이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에 있다고 적었다. 광야시대에 언약궤와 이스라엘 회중 사이의 간격은 2,000큐빗이었다(수 3:4). 랍비들은 이 거리를 안식일 법을 범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범위로 해석하였다. 그 거리가 900-1000미터쯤 된다. 그런데 안식일에 회당에 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을 걸어야할 사람들이 있었다. 사방 900-1000미터마다에 기도회장소(회당)를 두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도회를 열기 위해서는 13세 이상의 남성 가장 열 명이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900-1000미터쯤 걷고 난 후에 잠시 쉬었다가 또 걷도록 한 것이었다. 안식일에 거리제한을 둔 이 해석법은 수없이 많은 안식일계명의 울타리 법들 가운데 하나이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1:12)는 안식일에는 처소에 머물고 나오지 말라는 계명(출 16:29)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 랍비들이 만든 울타리 법이다. 랍비들은 광야시대에 언약궤와 이스라엘 회중 사이에 2천 큐빗의 간격을 띠우라는 명령에서(수 3:4) 안식일을 범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유추하였다. 유대인들은 이 거리를 대충 960미터로 본다. 이 법에 대한 다른 해석을 보면, 자기 집으로부터 2천 큐빗이 아니라, 도성의 경계, 좀 더 정확히는 성각에서 34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부터 일직선으로 광야를 960미터 이상을 가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해석은 집들이 촘촘히 서있는 도심에 적용되지 않고, 2천 큐빗 반경 이내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면 이 법이 엄격히 적용된다고 말한다.>

13절에 “저희가 유하는 다락”이란 말이 나온다. 예수님의 남녀 제자들이 머물던 장소를 말한다. 2천 년 전 보통 유대인들의 집 다락은 식사, 잠자리, 손님접대에 사용되었던 2층(복층)을 말한다. 과연 이 다락방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를 먹기 위해 모인 장소와 동일한 곳인지, 120여명이 모여 제비뽑기로 사도를 충원했던 장소인지(15절), 오순절 날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인지(2:1),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던 곳인지(12:5), 무엇보다도 이 장소가 마가의 집 2층이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답을 주지 않는다. 마가와 친분이 있었던 누가조차도 이곳이 마가의 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13-14절을 보면,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또 다른 물음, 즉 과연 이 다락방이 기도장소였는가를 묻게 한다. 왜냐하면,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100여개의 ‘베라카’(기도문)를 낭송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성전제사 대용으로 ‘쉐모네 에스레이’(Shemoneh Esrei)라 불리는 18개의 ‘베라카’를 하루 세 번 정해진 기도시간에 낭송하였고, 기도회를 갖는 장소는 주로 회당과 성전 뜰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말씀은 오늘날의 기도회와 동일한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유대인들의 기도습관에 잇대어

14절의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꾸준히 지속적으로 기도했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1장은 아직 구약시대의 상황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절대 다수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오순절 날 그리스도의 교회가 출범되고서도 반세기 정도의 과도기, 유대교에서 기독교에로 넘어가는 전환기, 옛 언약에서 새 언약에로 건너는 징검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한쪽 발을 유대교에 담고 있었다. 하물며 아직 교회시대가 열리지 아니한 예수님 승천 직후부터 오순절 날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까지의 열흘 사이에 있었던 제자들의 행동들을 기독교의 잣대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다. 누가는 그 시간을 ‘삼시’(오전 9시), ‘육시’(정오), ‘구시’(오후 3시)로 적고 있다. 특히 오후 3시는 성전에서 저녁 희생이 드려지는 시간이었다. 유대인들이 하루 세 번하는 기도회의 목적은 성전제사 대용으로 ‘쉐모네 에스레이’를 낭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후 85년경에는 이 18개의 기도문에 회당에 잔존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파문시키려고 “이단을 공격함”이란 제목의 기도문을 12번째에 추가시켰다. 기독교도 이에 질세라, 주기도문을 하루 세 번 암송하도록 권면하였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유대인들의 쉐모네 에스레이의 암송에 잇대어져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더라도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전혀 기도에 힘썼다.” 유대인들은 고대 때부터 ‘쉐마’(Shema)라 불리는 성구(신 6:4-9, 11:13-21, 민 15:37-41)를 매일 아침과 저녁 기도회 때에 낭송해왔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18개의 ‘쉐모네 에스레이’ 기도문을 매일 아침과 오후와 저녁 기도회 때에 낭송해왔다. 그밖에도 먹고 마시기 전후, 새 옷을 입을 때, 손을 씻거나 촛불을 밝힐 때, 소식을 접할 때, 행사 때, 예루살렘의 축복과 재건, 메시아의 출현,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 대한 찬양 등 하루에 100여개의 ‘베라코트’를 낭송해왔다.

유대인들의 기도는 그룹기도가 원칙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도들은 “나”란 단수 대신에 “우리”란 복수로 되어있다. 이런 형태의 단체기도는 서로를 위한 책임과 운명을 함께 지는 공동체란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개인 활동이기보다는 단체 활동이다. 유대인들이 기도회로 모일 수 있는 최소인원은 13세 이상의 유대인 가장(家長) 10명이다. 유대인들은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을 기도문을 외우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행할 의무를 가진 자로 본다. 그래서 10명의 정족수를 채우지 않고서는 기도회로 모이지 않는다. 이 기도의 정족수를 '민얀'(minyan)이라고 하는데, 이 민얀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도회나 신앙 활동들이 수행될 수 없다. 이런 민얀의 요구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무리 먼 곳에 흩어져 있더라도 기도회를 열기 위해서는 모여야 했다. 유대인들이 지난 2,600여 년간 떠돌이와 노예로 살면서 갖가지 핍박과 탄압을 받았지만, 흩어지지 않고 공동체를 이뤄 민족성을 지켜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삶은 철저히 회당중심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습관 또한 유대인들의 기도습관에 잇대어 있었다.

성전예배와 열두지파에 잇대어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제자들이 모여 기도한 곳을 큰 다락방으로 본다(막 14:15, 눅 22:12). 그리고 이곳을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집 이층 방(upper room)이라고 못 박아 말한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말하는 큰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잡수셨던 곳이었지, 그곳이 마가 요한의 집이었는지, 1장 13절의 “저희가 유하는 다락”이었는지, 1장 15절의 “약 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모여 제비뽑기로 사도를 충원한 장소였는지, 2장 1절의 오순절 날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었는지, 12장 5절의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곳이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답을 주지 않는다.

마가와 친분이 있었던 누가조차도 이곳이 마가의 집 다락방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숙했던 다락방과는 별도로 제자들의 모임장소로 성전의 솔로몬행각을 여러 차례 지목하여 말하였다(눅 24:53; 3:11; 5:12). 이런 점에서 120여명이 모여서 제비뽑기로 사도를 충원했던 장소, 성령님이 강림하셨던 장소,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한 장소 등이 성전의 솔로몬 행각이었을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13절의 유숙장소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당일의 일이었고, 15절의 120여명에 대한 언급은 “그 무렵에”(표준새번역) 즉 승천하신 당일(40일째 날)과 오순절 날(50일째 날)을 제외한 41일째와 49일째 사이 의 어느 한 날이었다. 이 두 장소가 동일한 장소란 보장은 없다.

둘째, 제자들은 기도시간에 성전에서 기도하였고, 집회장소로 성전의 솔로몬 행각을 이용하였다. 누가는 그들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고”(눅 24:53), 오순절 당일 아침 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모였을 때 위로부터 내리는 강한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으며(행 2장), 오순절 날 이후에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행 2:46),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기”(행 5:21) 때문이다. 여기서 성전은 솔로몬 행각을 말한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였고”(행 3:11),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행 5:12)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독교 집회가 주의 만찬 예배의 예표인 성전예배에 잇대어 있다는 증거이다.

사도행전 1장 2절에 언급된 ‘사도’란 ‘보냄을 받는 자’란 뜻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요 3:17; 6:57), 예수님은 사도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으며( 28:19-20; 행 1:8), 사도들은 주의 종들을 파송하였다. 또 이 사도전통을 계승한 교회들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22절은 사도의 기능을 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을 증언하는 일로 말하고 있다. 이 사도들의 증언이 교회의 기초이고(엡 2:20), 이들의 증언과 전통이 신약성서에 담겨 계승되고 있다(고전 11:2; 살후 2:15; 3:6). 이들의 증언이 확실하고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그들의 손으로 이뤄진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었다(2:22; 왕상 17:24; 고후 12:12; 롬 15:18; 살후 2:9; 히 2:4). 이런 중요한 역할 때문에 제자들은 집회를 열고, 두 사람을 호천하여 제비뽑기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로 맛디아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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