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17]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3(행 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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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7]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3(행 7:1-60)
스데반의 설교의 핵심(1)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져 있었던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체포되신 그 밤에 대제사장들과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셨던 것처럼, 공회에서 심문을 받았다. 매수당한 사람들이 나서서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 하였고, 성전과 율법을 폄훼하였으며,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함을 우리가 들었다”(6:14)고 거짓 증언하였다. 7장 1절은 이 증언들이 사실인가고 스데반에게 묻는 대제사장의 심문내용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2절부터 53절까지이다. 이 답변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출현으로부터 출애굽사건과 가나안땅 입성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장황하게 되짚었다. 그렇게 한 까닭은 스데반이 율법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세하게 꿰고 있다는 것과 그의 신사상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율법과 역사의 성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웅변한 것이다.
스데반의 장황한 설교를 정리해 보면, 그 내용이 대략 열다섯 가지 정도가 된다.
첫째, 가나안땅에 대한 희망을 최초로 품었던 조상 아브라함은 이미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할 당시에 영광의 하나님을 뵈웠고,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는 지시를 따라 이동하였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노예지 이집트와 유배지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땅에로 이주한 사건들의 예표였기 때문에 아브라함 자신의 대에는 물론, 이삭과 야곱의 대에서도 이뤄지지 않고, 이집트 고센에서 큰 민족을 이룬 후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이 모두가 위기가 기회로 바뀐 사건들이었다. 유배지 바벨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은 흩어지지 않고, 게토를 이뤄 힘을 키웠고,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문명을 익혔으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가나안땅에로 이주를 단행하였다. 유대인들은 이 ‘이주’를 ‘알리야’(aliyah)라고 부르며, 역대기사관과 결합하여 ‘시온에로의 오름’(ascension to Zion)이라 부른다.
둘째, 아브라함은 중간 기착지인 하란에 임시 거주하였다. 그는 아버지 데라가 죽고 나서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로 이주하였다. 그것은 히브리인 우상숭배자들이 40년간 광야사막에서 다 죽고 나서야 비로소 가나안땅에 입성한 사건의 예표일 수 있다.
셋째, 아브라함이, 비록 가나안땅에 입성하였지만, 그의 희망이 아직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희망은 먼 후대에 그의 후손들에게 이뤄질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의 희망은 수백 년 앞을 내다본 웅대한 꿈이었다.
넷째, 아브라함은 모든 자손이 낳은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함으로써 자신의 희망이자, 하나님의 언약인 가나안땅의 꿈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집단무의식을 자손대대에 심었다.
다섯째, 아브라함의 장차 올 나라에 대한 희망은 모세의 율법이 있기 이미 수백 년 전에 믿음으로 된 것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가나안땅의 지속여부를 위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은 언약일 뿐, 율법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위에 굳게 서는 믿음이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궁극적 희망은 지상 가나안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 가나안땅이었다.
스데반의 설교의 핵심(2)
여섯째, 요셉이 형들에게 이집트 노예로 팔려갔으나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셨고, 이집트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요셉이 팔린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서 비롯되었고, 전화위복의 사건이었다. 또 요셉은 새 이스라엘을 이루게 하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일곱째, 18-19절에서 보듯이, 이집트의 왕이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암시한 사건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여덟째, 하나님은 모세를 히브리 민족의 메시아로 택하셨으나,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거절하였다. 모세는 히브리인에게서 태어났으나 바로의 딸의 손에서 성장했으며, 이집트의 문물을 배워 익혀 말과 일에 출중하였다. 나이 40세에 동족을 돌볼 마음이 생겨 실행에 옮겼고, 25절에서 보듯이, 그는 자기 동족이 자기를 구세주로 믿고 따라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27절에서 보듯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며 모세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에 모세는 동족을 돕기 위해 이집트인을 살해한 것이 탈로날 것을 두려워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주하였다. 거기서 모세는 이집트왕궁에서 호의호식했던 40년 세월만큼, 모래바람 이는 광야사막에서 양을 돌보는 목자생활과 민중의 애환을 뼛속 깊이 새기며 40년의 수행기간을 보냈다. 양치기 소녀와 결혼하여 아이들도 낳았다. 이로써 그는 음양의 조화를 갖춘 히브리민족의 지도자로 다듬어졌다. 고통과 회한의 세월이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아홉째, 때가 무르익자, 하나님은 모세를 호렙산에서 만나주셨다. 30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고, 히브리민족을 구원할 자로 세워 이집트로 보내셨다.
열째, 모세는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며 거절하던 그들이 생각나서 가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그들의 메시아로 보내셨고, 히브리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홍해 건너편 광야로 이끌어내었다. 모세는 이 광야에서 또 다른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들을 행하였다.
열한째, 모세는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고 하였고, 18절에서 하나님께서도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번째 메시아가 예수님이셨는데, 첫 번째 모세는 이 두 번째 모세인 예수님의 모형이요, 예표와 그림자였으며, 예수님은 오실 자 참 메시아시었다.
열둘째, 히브리인들이 제1모세를 40세 때와 80세 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배척하고 거절하였다. 마찬가지로 제2모세이신 예수님도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하시고 거절당하시어 기어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열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배척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들을 섬기다가 결국에는 멸망당하였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절한 이 세대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주후 70년에 멸망당할 것이 예정되었다.
가시나무 떨기 불꽃(burning bush)
열넷째,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제조하였고, 솔로몬이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하였지만, 48절에서 보듯이, 무소부재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사고였다.
열다섯째, 54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고” 스데반을 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서 죽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의 정점이었다. 주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한 이후 유대인들은 성전중심의 다윗왕국의 회복을 희망하였다. 이 대업을 성취할 자가 제2모세 즉 메시아였다. 그가 와서 성취할 종말세계를 ‘올람 하바,’ 곧 ‘다가올 세상’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성전을 폄훼하는 말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모독이었다.
유대인들은 성막 혹은 성전을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믿는다. 지성소는 보좌가 있는 방이다. 법궤는 하나님의 보좌요, 말씀이다. 성소는 에덴동산을 상징한다. 이 구도는 회당에 그대로 적용되었고,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당(성소)에도 오랫동안 적용되었다. 성소에는 등대(메노라), 분향단, 떡상이 있었는데, 모두 하나님의 창조와 에덴에서의 완벽한 삶을 상징한다. 등대는 칠일 창조를 상기시킨다. 등잔을 매일 정리하는 것은 빛으로 시작되는 창조의 과정이 지속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떡상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하나님을 상기시킨다. 떡상의 진설병을 일주일마다 새 것으로 놓는 것은 항구적인 하나님의 활동을 상기시킨다. 분향단의 향기는 살아 있는 꽃들의 향기, 특히 에덴의 향기를 상기시킨다.
성소의 등대가 스데반이 30절에서 언급한 모세가 호렙산에서 본 가시나무 떨기 불꽃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다. 등대와 가시나무 떨기 불꽃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유대인 랍비들의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교회에 십자가 장식이 일반적이듯이, 미국 유대교회당의 경우 등대와 가시나무 떨기 불꽃 장식이 일반적이다. 한 가지 예로, 미국 유대교 신학대학원은 출애굽기 3장 2절,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는 글과 함께 “가시나무 떨기 불꽃” 그림을 학교의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유대교는 등대와 가시나무 떨기 불꽃을 중요한 상징으로 취급한다.
가시나무 떨기 불꽃은 하나님의 임재(계시)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에너지, 신성한 빛, 생명의 빛이고, 모세로 대표되는 인간에게는 흠숭과 경외의 대상이다. 동방교회는 이 불꽃이, 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에너지 혹은 영광으로 보았고, 그것이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던” 이유라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가시나무 떨기 불꽃은 기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신 계시적 사건이었다.
동방교회는 이 신적 에너지를 그리스도인이 장차 받게 될 구원의 모습으로 본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본질에는 통합되지 못해도, 이 영원한 에너지에 통합된다고 본다. 따라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뵈웠던 불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뵈웠던 하나님의 영광이요, 베드로가 산에서 뵈웠던 세분,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광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세가 신을 벗었듯이, 제사장들이 경외감으로 성소에 입장하였듯이,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겸손히 설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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