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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8]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4(행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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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19 2014.04.1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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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8]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4(행 8:1-13)

스데반의 순교

사울(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은(1절) 율법 때문이었다. 스데반이 신성과 성전을 모독했다고 생각했고, 율법은 그런 자들을 돌로 치도록 명하였다(레 24:16). 돌로 치라는 율법은 신성모독, 우상숭배, 안식일위반 등 무려 17가지에 해당되었다. 형 집행 때 죄인을 성 밖으로 끌어내는 관습은 조선시대에도 같았다. 대표적인 처형장소가 도성 안의 시체를 밖으로 내가는 출구였던 서소문 밖 네거리였다.

예루살렘교회에 “큰 박해”(1절)가 일어난 것은 사울이 대제사장들의 권세를 위임받아 행한 것이었다(26:12). 당시에 그리스도인임을 표시하는 무슨 상징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물론,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의 상징물인 성소등대의 받침과 물고기 꼬리를 포개서 메시아별이 되게 한 상징물(Messianic Seal)도 아직 없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스데반에게서 보듯이, 그들은 성전이나 회당기도회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울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낼 수 있었는가? 아마도 고발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박해가 시작되면 고소고발이 많아진다.

사울의 박해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1절). 5세기의 베자사본(D)에는 이 구절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란 말이 첨가되어 있는데, 사도들을 포함한 다수의 히브리파유대인들이 이 말에 해당될 수 있다. “흩어졌다”와 연관된 흩어짐을 뜻하는 헬라어 디아스포라는 본래 헬라파유대인들에게 쓰이는 말이며, 그들은 이 디아스포라를 유배라 부르면서 자신들을 떠돌이(신 26:5)로 간주한다. 사울의 박해로 히브리파유대인들이 흩어졌더라도, 그 현상은 일시적이었을 것이고, 지속적인 흩어짐은 헬라파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사도행전의 관심도 히브리파유대인들이 아니라, 헬라파유대인들의 활동에 집중되고 있다. 사울이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으로 향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박해의 칼날은 헬라파유대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의 권한이 헬라파유대인들에게 국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국에서 나서 자란 헬라파유대인들에게는 고향에 가족 친지 또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흩어졌으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들에게까지 “주 예수를 전한”(11:19-21)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도행전에서 “경건한”이란 말이 8번 사용되었다. 유대교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하나님 경외자들에게 쓰였다. 이 점에서 스데반을 장사지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유대교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스데반을 위해 운 것을 보면, 스데반이 “칭찬 듣는 사람”(6:3)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울의 삶은 스데반의 삶에 잇대어졌다. 10년 후에 바울은 스데반처럼 복음을 전할 때 헬라파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끝임 없이 이동했어야 했고, 디모데의 고향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성 밖에 버려졌었으며(14:19), 수없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결국엔 순교하였다. 스데반의 순교는 바울에게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살게 한 좋은 의미의 족쇄가 되었다.

빌립 전도자의 활동(1)

빌립도 스데반처럼 헬라파유대인이었다. 빌립은 박해를 피해 사마리아로 갔다. 사마리아인들은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크게 환영하였다. 그들의 마음이 그만큼 더 갈급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4장에 실린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과 동네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점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 남성이었던 예수님이 자신에게 물을 달라 청하는 것만으로도 감격하여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어서 성서는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는 설명을 붙었다. 이어진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선지자이신 것을 알고, 예배할 장소가 그리심 산이 옳은지, 시온 산이 옳은지를 물었고, 이어서 메시아도래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는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전했고, 사마리아인들의 많은 수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다.

이토록 마음이 가난하고 갈급했던 사마리아인들에게 빌립의 전도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 당시의 상황을 빌립에게 직접 청취한 누가는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적었다( 6-8절).

사마리아인들은 혈통과 신앙 모두에서 정통성을 잃은 혼혈인들이었다. 그들은 주전 722년 앗수르왕 사르곤 2세에게 왕국이 멸망할 당시 노예로 끌려가지 아니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 버려진 가난하고 못 배운 북 이스라엘왕국의 후손들이었다. 그들의 조상들은 생존 때문에 앗수르제국이 강제로 이주시킨 이방인들과 혼인함으로써 혈통도 신앙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성산인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워 그들 나름의 야훼신앙을 이어가길 원했다(요 4:20). 한편 남왕국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 바벨론으로 유배를 당한 후에도 혈통과 신앙을 지켜냈고, 예루살렘의 시온 산을 그들의 성산으로 여겼다. 이런 민족적 종교적 우월성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여 개 취급하며 상종하려하지 않았고, 탄압하였다.

이런 점 때문에 히브리파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기독교복음을 전파하기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가져간 것은 헬라파유대인 “전도자 빌립”(행 21:8)의 공로였다. 빌립은 유대총독부가 설치되었던 항구도시, 그래서 이방인의 출입이 잦았던, 예루살렘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가이사랴에 살고 있었다.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방인과의 접촉을 당연시하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런 성품 때문에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유대지방은 물론이고, 유대인이 싫어하는 사마리아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에티오피아인 흑인 내시에게까지 헬라어로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푼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사마리아 교회 창립

빌립은 사마리아교회의 창립자란 영광을 차지했다. 예루살렘교회를 세워 성장을 주도했던 사도들조차 예루살렘성문 밖으로 복음을 가져갈 생각을 못하고 있던 때였다. 빌립의 전도여행은 사울의 박해가 만들어낸 것이었지만, 그는 박해를 피해 가족이 있는 북서쪽 가이사랴로 향하지 않고, 흩어짐을 전도여행의 기회로 삼아 북쪽 사마리아로 향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빌립뿐 아니라, 사울의 박해로 흩어졌던 모든 헬라파유대인들이 흩어짐을 전도여행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빌립의 활동범위는 제한적이었다. 11장 19-20절을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란 말씀에서 보듯이, 복음을 해외로 가져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헬라파유대인들이 이 먼 곳까지 갔던 것은 그곳에 친인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빌립은 해외로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 않았다. 빌립은 유대지방과 사마리아지방을 커버했다. 그 이유는 그의 가족이 가이사랴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립의 전도활동에 큰 성과가 따랐다. 사마리아성에 “마술을 행하여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9절)로 칭하던 시몬까지도 빌립의 전도를 받고 침례를 받았으며,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랄”(13절) 정도였다.

사도행전 8장 1절의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는 말씀은, 1장 8절의 예수님의 말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어갔는가를 보여준 말씀이다. 이 말씀은 11장 19-20절,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헬라파유대인 사울의 기독교탄압과 또 사울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바울로 이름을 바꾼 후에 헬라파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음으로써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장부터 5장까지의 박해가 사두개인들에 의해서 히브라파유대인들에게 집중되었다면, 6장에서 8장까지의 박해는 바리새파 헬라파유대인 사울에 의해서 헬라파유대인들에게 집중되었다. 이 박해라는 위기는 기독교복음의 발전이라는 기회로 작용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인가? 헬라어를 말할 수 있고, 또 외국에서 나고 자란 유대인들이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다. 박해로 흩어진 빌립이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던 사마리아인에게 내려가 복음을 전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다. 사마리아에 교회가 창립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마리아성에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이른 것이다.

<(1)헬라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열린 사고, 사마리아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은 하나님에게 버림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란 신사고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짧은 시간에 로마제국의 국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열린 사고를 가지고 살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민족주의적 배타적 선민사상은 인류평화에 바람직하지 않다. (2)그리스도인들은 위기가 언제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고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한다. 하나님은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빛과 생명의 창조자이시다. 하나님처럼 빛의 일, 생명의 일, 살림의 일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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