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24]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10(행 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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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24]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10(행 12:1-25)
헤롯 왕가의 인물들
헤롯 왕가의 인물들은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연대를 추정하는데 유용하다. 1절의 헤롯왕은 아그립바1세로서 54세 때인 주후 44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도 야고보가 순교한 연도와 베드로가 탈옥 후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 것은 예루살렘에 교회가 설립된 지 14년 만인 주후 44년에 생긴 일이다.
헤롯 왕가는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로마제국의 꼭두각시로써 팔레스타인을 통치하였다. 시조는 ‘안티파테르’로서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인(에돔)이었으며, 할례를 받고 개종한 자였다. 신약성서에 실린 안티파테르의 후손들은 예수님의 출생 때 아기들을 살해한 헤롯 대왕, 세례 요한을 죽인 안디바, 사도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1세, 바울을 심문한 아그립바2세가 있다. 여성들로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헤로디아는 삼촌 빌립1세와 삼촌 안디바의 아내가 되었고, 아그립바1세의 딸들 가운데 두루실라는 바울을 주후 58년에 가이사랴의 옥에 가둔 로마총독 벨릭스의 아내였으며, 바울이 심문받을 때 오빠인 아그립바2세 옆에 앉았던 버니게는 미인으로써 삼촌인 칼시스의 헤롯왕과 길리기아의 왕 폴레몬2세의 부인이 되었다가 나중에 로마황제 티투스의 정부가 되었다. 버니게는 오빠 아그립바2세와의 관계를 늘 의심받고 있었다.
사도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옥에 가뒀던 아그립바1세는 폭군 칼리귤라와 로마에서 동문수학한 자였다. 칼리귤라는 아그립바1세에게 왕의 칭호와 함께 역대 헤롯 왕들이 통치했던 대부분의 영토를 통치토록 하였다. 그의 할머니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도 역시 유대인들의 호감을 얻고자 힘썼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 야고보의 살해와 베드로의 투옥이었다. 그는 주후 44년에 급사하였다. 당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와 누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아그립바1세가 황제의 안녕을 비는 축제(8월1일) 때, 은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와 연설을 했고, 아침 햇살에 그의 옷이 반짝거리자 참석자들은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22절)고 아첨을 했으며, 그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은 이 불경한 행동 때문이었다는 것이다(23절).
사도 야고보의 순교는 스데반의 순교가 있는지 10년 만에 일이었다. <교회사>를 남긴 4세기의 유세비우스 감독은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한 군인이 야고보를 재판자리까지 인도했는데, 야고보의 증언에 감명을 받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고백을 하여 야고보와 함께 참수를 당했다고 전한다.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베드로는 이후 예루살렘을 떠났는데, 이즈음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가 이때에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설립하고, 초대 감독이 되었으며,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로마교회의 감독(교황)들은 베드로의 계승권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베드로는 이때쯤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고(갈 2:11), 51년경에는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이다(15:7).
교회성장의 역설
12절에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처음으로 언급되었고,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 구절 때문에 주후 30년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지나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예루살렘교회가 시작된 지 14년이 지난 이 무렵에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위해서 드린 기도가 유대인들이 평소 드리던 ‘베라코트’였는지, 또는 자유로운 개인기도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상황이 매우 위급하고, 군사들의 감시가 철저했기 때문에 베드로의 석방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던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전후반부가 매우 분명하다. 사도행전의 경우 12장까지가 전반부인데, 베드로의 행적을 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즉 복음이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 전파된 전도이야기이다. 13장부터 28장까지가 후반부인데, 바울의 행적을 주로 적고 있다. 그리고 땅 끝까지, 즉 복음이 지중해 연안 세계에 전파된 선교이야기이다. 그런데 누가는 전반부에 3개, 후반부에 3개 총 6개의 중요한 문구를 적고 있다. 전반부 3개의 문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전파되어져가고, 제자들의 수가 더 많아졌으며,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는 것이다. 후반부 3개의 문구는 믿음이 더욱 단단하여지고, 세력이 커졌으며, 복음전파를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6개의 중요한 문구는 모두 위기를 극복한 결과에서 비롯된 열매임을 밝힌 것들이다.
첫 번째가 6장 7절인데, 헬라파에서 일곱 사람의 지도자를 뽑아 세움으로써 히브리파와의 갈등을 해결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9장 31절인데, 교회를 탄압하던 사울이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 수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12장 24절인데,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옥에 가뒀던 박해자 아그립바1세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였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16장 5절인데, 이방인 하나님 경외자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의 율법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키로 하고,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구원의 교리를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승인함으로써 바울과 바나바가 세운 선교교회들이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여졌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가 19장 20절인데, 에베소를 거점으로 한 소아시아 선교 때 여러 형태의 위기들을 극복했더니,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가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데(28:31), 비록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 2년간 감금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와 그리스도인
사도행전에는 “제자”란 말이 30회 이상 사용되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사도행전에 2회, 신약성서 전체에 3회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내에서 자신들을 일컬어 부른 자의식에서 비롯된 호칭인 반면, 비록 사용 횟수는 적지만, “그리스도인”은 교회 밖에서 타인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일컬어 부른 외부적 호칭이었다. 이사야 62장 2절,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은 외적 수동적 호칭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받기까지 15년 정도 걸렸으며,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따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외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을 가장 먼저 듣게 된 제자들이 다름 아닌 시리아 북부의 대도시 안디옥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헤롯 아그립바2세(26:28)와 베드로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베드로는 남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고 권하였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서 “일컬음을 받다”로 번역된 동사, ‘크레마티조’는 공공에 비추진 인물이나 어떤 이름이나 직책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쓰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비즈니스에 종사한다면, 그는 비즈니스맨으로 불리고, 의술에 종사한다면, 의사, 송사를 맡아 변호한다면, 변호사, 목회에 종사한다면, 목회자로 불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8세기말부터 신약성서교회를 회복하려고 힘썼던 미주의 개혁가들은 그들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들” 혹은 “그리스도인”이라고만 불렀다. 그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의 교회” 운동을 펼쳤다. 첫째는 이사야 62장 2절에서 말한 하나님이 예정하신 “새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에 입각하여 그 어떤 다른 인위적인 이름들의 사용을 거부하고,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이 신성하고 단순한 이름 안에서 지상의 모든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꾀하였다. 그래서 그들 자신들의 호칭을 “그리스도인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로 불렀고, 총회조직을 갖추고 전국교회연합(NCC)과 세계교회연합(WCC) 등에서 활동하기를 원했던 다른 줄기들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혹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등으로 호칭하였다. 이런 이름들의 교회들과 교인들은 전 세계에 대략 십만 교회와 천만 성도에 달한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에 부조금을 보낸 때는 주후 46년경이었다. 당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고대사> 20장 5절에 의하면, 아가보 선지자가 예언한 유대지방의 기근은 주후 45년에 있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부조금 선교로 얻은 결과는 젊은 일군 마가를 안디옥에 데려온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위기를 통해서 기회를 얻게 하시며, 결코 실패가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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