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25]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1(행 13:1-12)
본문
[행강25]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1(행 13:1-12)
선지자들과 교사들
사도행전 13-28장까지의 후반부는 주후 46년부터 63년까지 대략 18년간 바울을 중심으로 펼쳐진 “땅 끝까지” 선교이야기이다. 1-12장까지의 전반부는 주후 30년부터 45년까지 대략 16년간 베드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선교이야기이다. 이 무렵 안디옥교회에는 아직 붙박이 목회자인 장로가 없었던 것 같다.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안수한 사람들이 “선지자들과 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도들처럼 1세기 말엽까지 떠돌이 전도자로 활동하였다. 이들 가운데 비사도적인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약성서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에 대한 훈계를 빼놓지 않고 있다. 새 언약 백성의 옳고 그름의 잣대는 모세의 율법이나 헬라인들의 지혜(철학)가 아니라 예수님께 직접 배운 사도들의 전통이었다. 이 기준을 통과한 글들이 정경 신약성서 27권이다.
선교교회들에 최초로 장로를 뽑아 목회자로 세운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이었다(14:23). 사도, 선지자, 교사와 같은 떠돌이 전도자시대가 완전히 끝난 2세기부터는 지역교회들이 전적으로 장로(감독)들의 사목을 받았다. 주후 392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에는 성체성사(Mass)의 영향으로 장로들이 ‘사제’(제사장)로 불렸고, 사제(장로) 밑에 부제(집사), 사제 위에 주교(감독), 주교 위에 대주교, 그 위에 추기경과 교황이란 직제가 생겼다. 16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쳐는 ‘사제’를 ‘목사’(목자, 장로)로 고쳐 부름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개혁가 존 녹스가 개신교에 평신도 장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 장로교회이다.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한 사람인 ‘니게르’(Niger)는 라틴어로 ‘검은’이라는 뜻이다. 리비아 남쪽에 붙은 나라, ‘니제르’의 이름이기도 하다. 니게르가 흑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의 이름이 ‘시므온’인 것을 보면, 헬라파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만일 유대인이었다면, 니제르 출신이었거나 피부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검었을 가능성이 있다.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옛 해안 도시 ‘구레네’ 사람이었다. ‘루기오’(Lucius)는 라틴어로 ‘밝은’이란 뜻이다. ‘니게르’하고는 정 반대의 뜻이다. ‘구레네’는 리비아의 옛 해안 도시이다. 사도행전에 ‘구레네’가 4번 언급되었다.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2:10), 회당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6:9), 사울의 박해 때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까지 가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던 사람들(11:20) 그리고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헬라파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마나엔’(Manaen)은 히브리어로 ‘므나헴’의 헬라식 이름이며, “위로 자”란 뜻으로 “위로의 아들”이란 뜻을 가진 바나바와 비교가 된다. ‘마나엔’은 유년시절 헤롯 궁에서 안디바와 함께 지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나엔’의 선조는 에센파 소속으로 헤롯 대왕이 왕이 될 것을 미리 예언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한 집안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세례 요한의 살해자가 되었고, 다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안디옥교회는 피부가 검은 사람, 하얀 사람, 귀족, 평민, 유대인, 이방인 등으로 고르게 구성되었다.
모험에의 도전 및 선교전략
헬라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사고는 사마리아인이든 이방인이든, 피부가 검든 희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대상이 아니라, 구원받을 대상이란 열린 사고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 배타적 폐쇄적 선민사상을 과감히 버리고, 민족성별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고, 값이 없고,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새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이 열린 새로운 복음적 사고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짧은 시간에 로마제국의 국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또 헬라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것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믿음 위에 굳게 섰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빛과 생명의 창조자이셨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빛의 일, 생명의 일, 살림의 일을 하기 위한 모험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열린 사고와 도전정신이 세상을 평등사회로 바꾼 원동력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한 사람들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지자들과 교사들이었다. 이 일은 바울이 개종한지 10여년 만에 이뤄진 일이며, 이 일은 바울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 지속되었다. 13-14장은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와 함께 한 제1차 선교(46-48년)로써 그리스도의 교회 최초인 선교전략이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첫째,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다(13:2).
둘째, 기도와 금식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13:3).
셋째, 누구와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개인적으로 판단하였다(13:4-5).
넷째, 고향과 그 인근 지역을 먼저 찾아갔다(13:4).
다섯째, 지역의 유력한 인사를 먼저 찾아갔다(13:7).
여섯째, 사람이 많은 중심지를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고, 제자들을 훈련하여 자신이 가지 못하는 주변지역에 파송하였다(13:5-6,14).
일곱째,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하였다. 일행은 먼저 유대인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13:5,14,43,46).
여덟째, 교회를 세운 후에는 장로를 뽑아 목회자로 세웠다(14:22-23).
아홉째, 파송한 교회로 돌아가 선교보고를 하였고(14:26-27), 안식년을 보냈다(14:28).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 최초의 선교정책은 자급자족, 자치, 자선(自宣) 즉 스스로 복음을 전파하는 토착교회로 훈련하는 것이었다. 토착의 의미는 침투한 곳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고 번성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바울 일행의 제1차 선교여정은 수리아 안디옥(터키 최남단)에서 출발하여 25KM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 실루기아로 가서 배를 타고 208KM 떨어진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 동쪽 도시 살라미에 상륙하여 160KM에 이르는 섬을 도보로 가로질러 바보에 이르기까지 전도하였고, 다시 배타고 터키로 올라가 버가를 통과하여 비시디아 도(道)에 이르러 여러 도시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지에서 전도하였다.
제1차 선교지역
지상에 교회가 출범된 지 16여년 만에 교회차원의 선교가 최초로 이뤄졌다. 안디옥교회의 파송선교사들이었던 바울은 40대 초반, 마가는 30대 중반이었다. 바나바는 마가의 사촌이나 삼촌이었기 때문에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당대의 기대수명이 50세 미만이었으므로 바나바와 바울의 연령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마가는 그중 젊은 사람으로서 수행원에 불과했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며 ‘망치’란 뜻이다. 흔한 이름이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긴지 422년 만에, 그리고 1948년 국가를 재건하기까지, 나라 잃은 2,534년 기간에 유일하게 100년간 주권을 되찾게 해준 영웅 유다 마카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마가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볼 때, 그도 바나바와 바울과 마찬가지로 헬라파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고향이 바나바와 같은 구브로 섬이었는지도 모른다. 마가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으로써 요나와 같다. 그는 침례를 베풀고, 짐을 지거나 숙식을 정하는 잔일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스도의 교회 최초로 파송된 이들 선교사들이 향한 곳은 팀장인 바나바의 친인척이 거주하는 구브로 섬이었다. 이 섬은 주전 57년에 로마에 합병되었고, 구리광산이 있어서 다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반면에 구브로 섬의 주신(主神)은 아프로디테(비너스)였다. 이 여신이 이 섬 앞바다에서 태어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아프로디테 신전들은 성창들의 난잡한 의식과 매춘으로 악명이 높았다.
선교사들이 섬의 행정수도인 바보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 터졌다. 구브로의 로마총독은 서기오 바울이었다. 그는 네로 황제의 개인교사였던 세네카의 형제였다. 총독의 종교고문직을 맡고 있는 유대인 바예수가 있었다. ‘바예수’란 ‘예수(구원자)의 아들’이란 뜻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행이었다. 바예수는 마술사(엘루마)였다. 총독이 그에게 종교고문직을 맡긴 것을 보면, 그가 유대교에 관심을 갖고 있었거나 입교한 하나님 경외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총독이 바울의 복음전도에 관심을 보이자, 바예수는 총독의 신임을 잃게 될까봐 선교사들의 전도노력을 훼방하였다. 이 때 바울은 엘루마를 소경으로 만들어 물러서게 만들었다.
누가는 로마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님을 영접한 때로부터 사울의 이름을 바울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사울’은 히브리어로 ‘큰 자’란 뜻이고, ‘바울’은 라틴어로 ‘작은 자’란 뜻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울이 큰 자란 뜻의 사울이었을 때에는 바나바의 주도권 아래 있었지만, 작은 자란 바울로 개명한 이후로는 오히려 바나바가 바울의 주도권아래 놓였다는 점이다. 바나바로서는 마술사를 소경으로 만들고 로마총독을 개종시킨 바울의 카리스마를 부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름을 바꾼 바울은, 추측하건데, 계획에 없던 비시디아 지역 선교를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상황변화, 즉 주도권 변경과 계획에 없던 연장 원정에 대해서 마가는 안디옥으로 돌아가겠다며 반발했을 것이고, 바나바는 바울을 홀로 떠가게 할 수가 없어서 동행을 결심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곳곳에 매복된 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 위기 뒤에는 언제나 기회가 그들을 반겼다.
- 이전글 [행강26]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2(행 13:13-52) 14.05.22
- 다음글 [행강24]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10(행 12:1-25) 14.05.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