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26]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2(행 13: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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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26]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2(행 13:13-52)
새 여호수아서: 새 언약 백성의 강력한 진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각각 새 출애굽기와 새 여호수아서에 해당된다. 탈버트(Talbert)와 같은 신학자들은 이 두 권을 예수님과 제자들이 연결되어 등장하는 연속전기 형태로 보지만, 그 유형이 당대의 전기문학형식에 가까운 면도 있지만,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가 옛 언약 백성의 문자적 가나안땅 입성기인 반면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새 언약 백성의 하늘 가나안땅 입성기인 동시에 새 언약 백성의 새 출애굽기와 새 여호수아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옥중에 갇힌 후에 마태복음 11장 12절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아니란 점, 예수님은 요한의 죽음을 기점으로, 당신께서 “영광 받으실 때,” 곧 죽음의 때가 임박했음을 아시고, 그동안 비밀에 부쳐왔던 당신의 정체성, 곧 메시아인 사실을 공개하고, 인류의 죄 대속과 하늘 가나안땅을 향한 새 출애굽사건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르셔야한다는 점, 그리고 요한의 때로부터 이 하늘 가나안땅을 향한 “침노” 즉 강력한 진군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민중이 고대한 새 세상은 지상 가나안땅의 회복이었지만, 예수님이 의도하신 새 세상은 하늘 가나안땅이었으며, 이 하늘 가나안땅은 “침노”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여기서 “침노”는 폭력(violence)을 뜻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의 가나안땅 점령을 위한 강력한 진군(forceful advance)을 의미한다. 이 “침노”는 여호수아가 주도한 히브리민족의 가나안땅 점령에 그 예표가 있고, 그 실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제자들이 걸었던 십자가의 길에 있다. 따라서 “침노”는 복음전도에의 도전, 그에 따른 위기, 위기 뒤에 오는 교회성장의 기회를 말한다. 옛 언약 백성인 히브리민족이 가나안땅을 정복한 것은 주인 없는 땅을 쉽게 차지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메뚜기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골리앗과 같은 거인 족속들을 상대하여 당당히 쟁취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새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들도 도전을 통해서, 모험을 통해서, 세상을 향해 강력히 진군함으로써, 그 위기 뒤에 오는 기회를 쟁취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침노”는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인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에 연결되며, 그 예표가 여호수아서 1장 1-9절에 있다. “...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제1차 선교지역(2)
구브로 섬에서 마술사를 제압하고, 로마총독 서기오 바울을 개종시킨 사울은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계획에 없던 비시디아 지역 선교를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상황에서 선교의 주도권이 바울에게 기울었고, 이에 반발한 마가는 배로 버가까지만 동행한 후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나바는 바울과 동행하였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의 도전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침노” 또는 강력한 진군에 해당되었다. 진군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 첫 희생이 수행원이었던 마가를 떠나보낸 아픔이었고, 적들의 반격과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그러나 위기 뒤에는 언제나 기회가 그들을 반겼으므로, 가는 곳마다에 교회들이 들어섰다.
13-14절의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는 이 짧은 두 구절 속에는 선교여행의 위험과 고통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어 있다. 여기서 생략된 이야기는 10여년 후 기록된 고린도후서 11장 26절에 수록되어 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자매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구브로(키프러스)에서 터키 남단의 버가까지는 뱃길로 대략 160KM 정도이다. 버가에는 다이아나 신전이 있었다. 다이아나 여신은 숲을 감독하고 사냥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지역이 험준한 산악지역임을 암시한다. 바나바의 묘지가 이곳에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는 약 200KM이며, 세바스테 길(Via Sebaste)이라 불리는 도로가 뚫려있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자면, 버가에서 80KM 지점에 해발 3천 미터 이상 높이 솟은 토로스(타우루스)라 불리는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 산중에 호모나데스(Homonadesians)라 불리는 강도들이 창궐하고 있어서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10여년 후 바울은 자신의 선교여정들을 회상하면서 강도의 위험을 언급하였다. 그나마 다행했던 점은 이 산 중에 아다다(Adada)라 불리는 도시가 있었고,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대상들의 집(Caravan Saray)이 있었다. 이 아다다에 교회가 세워졌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경에는 안디옥이라는 지명이 두 곳에 등장한다. 실제로는 안디옥이란 지명이 16개나 된다고 한다. 안디옥이란 지명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알렉산더 대왕의 네 명의 장수 가운데 한 사람인 셀류쿠스가 알렉산더 사후에 자신의 왕조를 세우고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헬라 제국 내에 16개의 도시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모두 안디옥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남 갈라디아 지방의 수도였다. 구브로 섬의 로마총독 서기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강제로 이주당한 유대인들이 아주 많았고, 바울의 선교전략 가운데 한 가지는 유대교 회당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유대교 회당이 있던 자리에 주후 325년에 세워진 바울 기념 예배당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바울의 첫 설교
15절에서 보듯이, 회당장들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더러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한 것은 오늘날과는 달리 당대의 유대교 회당에는 목회자가 없었고, 장로들이 주재하였으며, 성서는 일주일에 세 번, 안식일, 월요일, 목요일 아침기도회 때에 그 주간의 분량을 낭독하였는데, 성서낭독 후에는 누구나 지명을 받거나 자원하면 설교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회당은 복음을 위한 준비된 도구였고, 바울은 이것을 십분 활용하였다. 아마 바울은 바리새인의 복장을, 바나바는 레위인의 복장을 하고 있어서 설교할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란 말은 유대인들이 기도회 때 두 곳, 모세오경과 그 밖의 책들에서 성경을 낭독했던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매년 모세오경을 완독하였고, 그 밖의 구약성서의 글도 함께 읽었다. 이 전통을 따라 기독교도 십 수 세기 동안 예배 때 세 곳, 구약과 복음서와 그 밖의 신약성서의 글에서 읽었다. 유대인들이 모세오경(토라)에 특별한 예를 갖췄던 것같이 기독교는 사복음서에 예를 갖췄다.
설교할 기회를 얻은 바울은 16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청중들 가운데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들이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13장에서만 이들 헬라인들에 대한 호칭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16절),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43절), “경건한 귀부인들”(50절)로 표현되었다. 에베소와 골로새의 중간쯤에서 조금 남쪽에 여신 아프로디테를 주신으로 섬겼던 또 로마가 사랑했던 도시 아프로디시아스에서 1977년에 발굴된 2세기경 회당건립 후원자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에는 유대인 가장이 69명, 하나님 경외자의 가장이 54명이나 되었고, 완전개종자도 3명이나 있었다. 이들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은 기독교복음을 세계로 뻗어가게 하는 징검다리였다.
16-41절은 바울의 첫 설교내용이다. 하나님은 떠돌이와 노예였던 한 백성을 택하시고 이집트에서 건지셨고,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하나님은 그 후 사사들과 왕을 주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흡족해 하셨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뜻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후 하나님은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를 보내셨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시라고 전하였다.
하나님은 예수님보다 앞서 세례 요한을 보내셨고, 자기보다 뒤에 오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전하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관리들과 시민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언대로 그를 다시 살리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늘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의롭다하심을 얻게 못하는 모세의 율법에 더 이상 매이지 말고, 이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하심을 입으라고 설교하였다.
이 설교를 듣고 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따랐으나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탄압함으로 이방인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반면에 이방인들 중에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으며, 그리스도의 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다른 도시로 피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또 다른 도전과 기회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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