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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27]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3(행 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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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986 2014.05.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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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27]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3(행 14:1-28)

유대교 회당: 황금어장

바울과 바나바가 가는 곳마다 제일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파한 것은, 첫째로 복음을 전파할 기회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회당에는 따로 목회자나 설교자가 없었고, 안식일 아침기도회 때 성서를 낭독한 후에 지명을 받은 자나 자원자가 설교할 수 있는 제도 때문이었다. 둘째는 회당기도회 때 유대인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도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회당기도회 제도와 이들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은 준비된 하나님의 그릇들이었다. 특히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들은 대부분이 유대교의 손님들 즉 문의 개종자(문안의 객)인 절반개종자들이어서 기독교복음을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 활용하였다.

터키의 고대 도시인 에베소와 골로새의 중간쯤에서 조금 남쪽에 여신 아프로디테를 주신으로 섬겼던 도시 아프로디시아스에서 1977년에 발굴된 2세기경의 회당건립 기념비에 유대인 가장 69명, 문의(절반) 개종자 가장 54명, 의의(완전)개종자 가장 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전체 이름에서 이방인이 차지한 비율이 무려 45퍼센트에 달했다. 이 자료가 증명하듯이, 하나님 경외자들에 대한 증거는 성서 안은 물론이고, 밖에도 많다.

첫째, 사도행전에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 경외자’로 소개되었다. 유대교개종자 안디옥 사람 니골라(6:5), 이디오피아 내시(8:27), 로마백부장 고넬료(10:1-2),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회당의 헬라인들(13:16,43), 이고니온의 유대인회당의 헬라인들(14:1), 빌립보의 루디아(16:14), 데살로니가의 유대인회당의 헬라인들(17:1-9), 베뢰아의 유대인회당의 헬라인들(17:12), 그리고 고린도의 유스도(18:7)가 그들이다. 복음서에도 갈릴리 가버나움의 백부장(막 8:5)이 하나님 경외자로 소개되었고, 신학자 헹겔은 누가도 그의 해박한 구약성서와 유대교관련 지식을 미뤄볼 때 ‘하나님 경외자’였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였다.

둘째, 성서외적인 증거들도 적지 않다. 네로의 아내 폽페아 사비나(Poppaea Sabina)가 하나님 경외자였다. 로마황제 안토니누스도 하나님 경외자로 꼽히고 있다. 예루살렘 탈무드(Megillah 3.2.74d)에 따르면, 그는 유대교회당에 메노라(등대)를 기증하였다. 히브리대학교의 쉬무엘 사프라이(Shmuel Safrai) 교수는 소아시아에서 발견된 다수의 비문들에서 유대교회당에 기부금을 낸 ‘하나님 경외자들’이 언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아시아 중부 브리기아 아크모니아(Akmonia)의 회당에서 발견된 1세기의 비문에는 ‘줄리아 세베라’(Julia Severa)라는 여인에 의해서 회당이 건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여인은 네로시대 때 황제숭배 제사를 주관한 고위직 여사제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여인이 ‘하나님 경외자’라는 명시적 증거는 없어도 유대교회당에 기부금을 내고, 유대인들과 유대관계를 맺었던 이방인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소아시아 사데(Sardis)에서도 유대교회당이 발굴되었다. 본관에 있었던 명판에는 “사데의 시민이요 하나님 경외자인 아우레리오스 헐모게네스(Aurelios Hermogenes)인 본인은 신께서 내리신 재능들을 가지고 일곱 줄기로 된 메노라(등대)를 만들었다(혹은 기부하였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하나님 경외자들의 책무

하나님 경외자들에게 부과된 책무는 무겁지 않았다. 1세기 헬라파유대인사회에서는 “만약 할례의 영적인 의미가 실현되었다면 할례의 외적 의식이 생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대의 헬라파유대인과 히브리파유대인의 율법에 대한 견해차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실려 있다. 헬라파유대인이었던 아나니아스(Ananias)는 주후 40년경 아디아벤(Adiabene)의 왕인 이자테스(Izates)의 교사이자 상인이었다. 그는 왕이 유대인에게 지배받는다는 백성의 반발을 우려하여 할례받기를 주저하자, 왕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채 유대인의 종교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권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할례를 받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충고하였다. 반면에 히브리파유대인이었던 엘레아자르(Eleazar)는 나중에 이자테스 왕에게 할례를 받지 않는 것, 즉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 것은 불경죄라고 충고하였다. 그러자 왕은 즉각 할례를 받았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서든 외국에서든 지역을 불문하고 엘레아자르와 같은 보수적 인물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고 율법전체를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 경외자들’이라할지라도, 2급 시민에 불과하였고, 유대교도들의 묘지에 묻힐 수 없었으며,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 경외자들에게는 613개의 계명과 울타리 법들을 포함한 율법 전체의 준수가 요구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노아의 일곱 개의 율법이 요구되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경외자들을 ‘노아의 자녀들’(B'nai Noah)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인들은 이 일곱 개의 율법이 최초의 하나님 경외자였던 아담과 노아에게 주어졌던 것이며, 지금도 다가올 세상(올람하바)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이들 일곱 개의 노아의 율법은,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둘째, 우상들을 숭배하지 말라; 셋째, 간음하지 말라; 넷째, 살인하지 말라; 다섯째, 도둑질하지 말라; 여섯째, 동물의 살코기를 산채로(피와 함께) 먹지 말라; 일곱째, 사법체계를(공의의 재판정을) 만들라 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소개된 사도총회에서 결정된 네 가지 금지사항들, 즉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금하라는 야고보의 절충 제안은 바로 유대인들이 하나님 경외자들에게 요구했던 내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헬라파유대인들이었고, 그들의 청중들 역시 헬라파유대인들과 그들의 회당에 출입하는 헬라인들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고향의 회당들에서 유대교에 입교한 헬라인들을 만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극심한 박해를 무릅쓰고 끈질기게 유대교회당을 찾았던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유대교회당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황금어장이었기 때문이다.

유대교에 입교한 헬라인들은 한 분 참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과 영원한 삶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고, 가난한 자들과 지역 공동체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물질로 후원했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고문헌과 고고학 발굴로 확인이 되었고, 누가문서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입증해 주었다.

제1차 선교지역(3)

터키는 광활한 나라로써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비가 내리는 온화한 겨울의 지중해성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버가에서 비디시아 안디옥(Yalvac)까지 200KM,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Konya)까지 96KM,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Hatunsaray)까지 64KM, 루스드라에서 더베까지가 36KM이었다. 이처럼 도시에서 도시까지의 거리가 수십 혹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해서 이동에 며칠씩 걸렸다. 당대에는 하룻길인 30KM마다에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대상들의 집(Caravan Saray)이 있었다고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도주하여 이고니온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3일 이상이었을 것이다. 2세기에 저술된 <바울행전>에 의하면, 이고니온의 주민 오네시보로가 이고니온으로 오고 있던 바울을 마중 나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바울은 “작은 체구에, 맞닿은 양미간, 코는 좀 길고, 대머리에 다리는 휘었으며, 단단한 체격에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이고니온에서의 선교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세력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여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고, 부득이 또 도주하여 이틀거리인 루스드라로 향하였다.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가 일어나 걷게 되는 표적이 일어났다. 이에 주민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로, 바울을 헤르메스로 착각하였다. 제우스는 그리스 신전의 주신(主神)이며,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마이아(아틀라스의 딸)사이에서 태어난 신들의 전령이다. 소문을 듣고, “성 바깥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13절). 이에 바울은 무리를 말리며 말하기를, 우리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우상숭배를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비록 인간의 우매한 행위들을 허용하고는 계시지만, 끊임없이 자연을 통해서 당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면서 복을 주고 계시다고 설득하여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리고 갔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 앞에서 깨어나 하루 쉬고 이튿날 하룻길인 더베로 떠났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생사를 오가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아마 디모데와 그의 가족 외조모 로이스와 모친 유니게(딤후1:5)의 개종이었을 것이다.

더베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성도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하였다.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22절) 라고 말하였다. 무엇보다도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23절) 목회자와 감독자로 세웠다(20:28). 그리고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바울과 바나바는 2,000KM 이상을 도보와 해상여행을 하였다. 목숨을 건 전도의 결과로 많은 수의 이방인교회들이 세워졌다. 파송교회에 이를 보고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성취한 업적을 자신들이 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이라고 전하였고, 셀 수 없는 도전(진군)들 속에서 하나님이 “믿음(기회)의 문을 여신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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