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28]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4(행 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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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28]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4(행 15:1-21)
구원의 의미: 유대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가나안땅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그 땅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낙원, 엘뤼시온(샹젤리제), 신천신지, 도솔천, 용화세계, 에덴동산, 유토피아, 무릉도원, 아르카디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실제로 가나안땅의 상당부분은 척박한 광야 곧 사막에 가까운 땅이었고 에덴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대인들에게 땅은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떠돌이였고, 노예였다. 따라서 땅은 그들이 수천 년간 꿈꿔왔던 '하티크바'(Ha-Tikvah,희망)였고, ‘올람하바’(Olam Ha-Ba,다가올 세상)였다. 이 땅을 처음 꿈꾼 사람이 아브라함이었고, 그의 꿈은 최소 430년(최고 645년) 후에 모세와 여호수아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리고 그 땅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경우, 최고 684년을 넘기지 못하고 앗수리아에 넘어갔고, 남왕국 유다의 경우, 최고 820년을 넘기지 못하고 바벨론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주후 70년까지 유다 마카비가 이끈 유다-헬라 전투의 승리로 단 한번 100년간 왕권을 회복하였으나 총 556년간을 속주민으로 살아야했으며, 유다-로마전쟁의 패배로 주후 1948년 극적인 국가재건 때까지 1878년간을 지도에서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사라져버린, 그래서 땅이 없는 떠돌이 소수민족으로 멸시와 천대 속에서 살아야했다. 이 긴 2534년간 주권이 없거나 땅이 없는 상태로 살아온 유대인들이 꿈꾸고 희망했던 나라, 유대교인들이 지금도 희망하고 있는 메시아 왕국이 바로 ‘올람하바’(Olam Ha-Ba,다가올 세상)이다.
유대인들의 땅에 대한 절박함은 율법준수의 엄격함으로 발전되었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지 50일째 되는 첫 오순절 날 시내 산기슭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이 율법이고, 계명이며, 토라이다. 첫 오순절 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십계명이었고,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다. 그 후 하나님의 계명은 총 613개로 늘어났고, 늘어난 계명의 상당 부분이 땅과 성전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게다가 후대의 랍비들은 수많은 울타리 법들을 만들어 사람들이 계명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자 하였다. 이 모든 하나님의 계명과 울타리법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핵심 골자였지만(마 22:40), 땅을 지켜내고자 한 저들의 절박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가나안땅이 보존되느냐 마느냐의 관건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얼마나 충실히 지켜내느냐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땅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예언자들의 냉정한 판단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배신한데 따른 응보였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약소국이 살아남는 비결이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뿐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해야만 하는가? 헬라나 로마가 처음부터 강대국이어서 제국이 된 것은 아니었다. 마케도니아나 로마가 이스라엘보다 나라가 컸던 것은 아니었다. 제 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 제 힘을 키우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게 하고, 도전정신과 위기극복의 지혜를 얻게 한다. 무엇보다 제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 플러스알파의 능력을 장착시킨다.
구원의 의미: 기독교
유대인들의 하나님이해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유대인들의 땅 중심의 민족적, 배타적, 선민사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 상상을 초월하는 기나긴 압박의 세월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위기와 시련을 극복하고, 국가를 재건하며, 세계통치의 숨은 권력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신앙, 곧 유대교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민족 중심으로 잘못 믿었어도 이 정도인데, 기독교신앙을 바르게 갖고 실천한다면, 그 폭발력이 어떻겠는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 가톨릭지배의 암흑기를 거쳐 온 유럽의 짙은 그늘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문명의 상징이 되었던 것은 전적으로 기독교신앙의 긍정적인 면 때문이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구원의 의미는 영적으로 하늘 가나안땅에서 누리는 참 안식이다. 그 땅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낙원, 엘뤼시온(샹젤리제), 도솔천, 신천신지, 용화세계, 에덴동산, 유토피아, 무릉도원, 아르카디아와 같은 곳이다. 그렇다고 현실 세계를 포기하거나 절망적으로 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주장을 말세론 또는 시한부 종말론이라고 하는데, 성서의 가르침을 오해하거나 왜곡한 데서 비롯된다. 오히려 성서는 세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기를 바라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고 성령님을 선물로 붙이셔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힘입어 인간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불의하고 불평등한 인간의 나라를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바꿔가도록 하신다. 다만,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종국적이고 영원한 삶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더 궁극적이고 영원한 가치, ‘장차올 더 좋은 것’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소망하고 추구하는 ‘장차올 더 좋은 것’은 영원하고 참되며 세계적인 것인데 반해,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올람하바’(다가올 세계)는 현세적이고 일시적이며 민족적인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차이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히6:9), ‘좋은 소망’(히7:19), ‘더 좋은 언약’(히7:22), ‘더 좋은 약속’(히8:6), ‘장차 나타날 좋은 것’(히10:1)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히브리인들도 ‘더 좋은 것을 사모’하였지만, 그것은 지상의 것이었지, 영원한 하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세우신 ‘더 좋은 계획’에 따라(히11:40)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자들을 위한 ‘한 도시’ 곧 하늘 가나안땅에 새 예루살렘을 마련해 놓으셨다(히11:16)고 밝혔다.
바울도 ‘장차올 좋은 일’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였다(엡 1:21). 고린도후서 5장 5절을 보면,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이 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씀이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으로써”(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성령님은 ‘장차올 좋은 것’에 대한 ‘약속’의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설명되었다. 광야사막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확실하게 인도한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율법과 복음의 갈등
어떤 히브리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까지 와서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서 안디옥교회에 율법과 복음사이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 히브리파유대인들의 이런 주장은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에 중대한 도전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권위와 이방인교회들에 치명적인 손상이 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이에 안디옥교회는 시비를 갈려줄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결정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보고도할 겸,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파송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까지 15일 정도 걸리는 먼 길(480KM)을 여행하는 동안, 교회들을 방문하여 이방인 선교결과를 전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4절) 보고하였다. 이때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5절)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오랜 시간 토론하였다. 토론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7-11절)고 호의적인 발언을 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바나바와 바울이 일어나 선교지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을 말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가 일어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교가 문의 개종자들에게 요구하는 노아의 법들을 지키도록 권하되,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20)는 말로 회의를 종결시켰다.
이때가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지고 20여년이 지난 주후 50년경이었다. 교회의 승인권을 가진 사도들이 기독교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오픈하기로 공식 결정하고, 율법의 무거운 짐을 내려줌으로써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세계선교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에 힘입어 바울과 바나바는 다음과 같은 복음의 정수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옛 언약의 율법은 지상 가나안땅의 보존에 필요하고, 할례는 그 가나안땅 약속에 대한 증표에 유효하지만, 즉 옛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새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가나안땅을 약속받고 그 효력을 유지하는 데는 필요치 않다.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삶과 윤리적 삶에 도움이 되지만, 하늘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민족성별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으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으면, 은혜로 값없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가족의 식구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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