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30]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6(행 1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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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0]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6(행 16:1-10)
제2차 선교여행팀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은 주후 51년 혹은 52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출범한지 20여년이 지난 때였다. 바울이 안디옥을 떠날 때는 동행자가 실라 한 사람 뿐이었다. 두 사람은 도보로 바울의 고향인 다소를 거쳐 제1차 선교여행 때 극심한 박해를 받았던 더베와 루스드라에 당도하였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기절했다가 깨어난 곳이었다. 이 도시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 여성 로이스와 그녀의 딸 유니게 및 외손자 디모데가 있었다(딤후 1:5).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교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젊은이였다. 바울은 그를 선교팀에 합류시켜 목회자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부친이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받게 하였다. 아마 바울과 실라는 디모데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루스드라에 머물렀을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은 구원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공격적인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치른 외과시술에 불과하였다. 지역교회의 권유도 있었을 것이다. 성서시대에는 부계혈통이 유대인 여부를 결정했지만, 오늘날에는 모계혈통만이 유대인 여부를 결정한다. 2천년 가까운 유배생활로 부계혈통을 신뢰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이방인일지라도 유대교에 개종하여 할례 받고 개종침례를 받으면 유대인이 될 수 있었다. 디모데는 유대교인이 되려고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할례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것이다. 교회의 장로들도 유능한 젊은이를 안수하여 목회자로 세우는 일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하였을 것이다(딤전 4:14).
젊은 디모데의 합류로 선교팀원은 이제 세 사람이 되었고,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12)는 말씀처럼 선교팀이 강화되었다. 이들 세 사람이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지나면서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결정한 판결문을 읽어주고, 유대교율법에 매이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이 일로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다”(5절). 도전과 진군에 항상 위기가 따라붙었지만, 위기는 언제나 또 다른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바울의 계획은 터키 서부 아시아의 거점도시에 선교부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육하여 인근 도시들로 파송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에서의 선교는 제3차 선교여행 때로 미뤄졌다. 성령님께서 아시아 선교를 가로막고 다른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아시아 북부 무시아 지방 앞에 이르러 흑해에 맞닿은 터키 최북단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려고 힘썼으나 그조차도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바울 일행은 할 수 없이 북서방향으로 진행하여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본서의 저자이자 의사인 누가가 팀에 합류하였다. 이로써 팀원은 4명으로 늘었다. 5세기의 베자사본(D)에는 10절의 “우리가”란 말이 11장 27절과 14장 22절에도 있기 때문에 학자들은 누가가 안디옥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가장 위대한 유산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서서 바울을 청하여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였다. 이 환상을 하나님의 지시로 믿고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로 가기를 힘썼다. 이때 바울이 환상을 통해서 본 사람은 자신보다 350여 년 전에 태어난 알렉산더 대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알렉산더는 광대한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했던 영웅이다. 당시 페르시아제국은 오늘날의 그리스 일부, 터키, 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까지 통치하고 있었다. 바울은 칼이 아닌 복음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하려는 의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36년 20살에 왕위에 올랐고, 13년 후 33살의 나이로 죽었다. 알렉산더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정복한 영토가 아니라, 그리스문화를 동방문화와 결합한 헬레니즘을 꽃피우게 한 것이었다. 헬레니즘은 기독교복음의 농장으로써 350여 년간 준비된 것이었다. 신약성서가 헬라어로 쓰인 것, 땅의 것을 하늘의 것의 그림자나 모형으로 본 것, 구약을 신약의 예표로 본 것 등은 헬레니즘이 복음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헬레니즘은 부분적으로 1453년까지 비잔티움제국의 동방정교회 문화 속에 살아남아 있었다.
헬레니즘이란 기름진 토양에 복음이란 좋은 씨앗을 뿌린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유대인들이었다. 이 복음의 씨앗은 서로마라는 토양에서 긴 세월동안 가톨릭교회로 변질되었고, 동로마라는 토양에서 역시 긴 세월동안 동방정교회로 변질되었다. 원형의 보존은 그나마 동방정교회가 서방 가톨릭교회보다 좀 나은 편이다.
칼이 아닌 평화의 복음으로 예수님과 바울이 세계에 끼친 정신과 문화는 알렉산더가 끼친 헬레니즘을 훨씬 능가한다. 이 성과에 대해서 18세기 영국인 에드워드 깁본(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의 몰락사>(1776-88)란 책에서 다섯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일신교 신앙을 단호하게 지켜냈다는 점; 둘째, 신자들에게 사후의 세계를 보장했다는 점; 셋째, 수많은 기적들이 사도들의 손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점; 넷째, 신자들이 깨끗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 다섯째, 그리스도인공동체들이 일치단결해서 로마제국 내에 독립된 사회를 구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65년에 영국인 에릭 도즈(Eric R. Dodds)가 <불안의 시대 안에서의 이교도와 기독교도>란 책을 냈고,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을 네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절대적 배타성이 불안의 시대를 살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되었다는 점; 둘째, 기독교가 제시하는 구원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어떤 차별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 셋째,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는데 성공했다는 점; 넷째, 일체감이 강한 그리스도인공동체에 가입하게 되면 의식주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남녀노소빈부귀천민족색깔의 차별을 두지 않았던 기독교의 위대한 평등주의, 즉 하나님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며,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라는 기독교복음은 인류가 누려온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강력한 진군(Forceful Advance)
알렉산더는 주전 334년에 기병 5천명과 군함 160척을 포함하여 마케도니아 군과 그리스 동맹군을 합쳐 약 4만여 명을 이끌고, 페르시아 정복을 위해 강력히 진군하였다. 원정군에는 측량사, 기술자, 건축가, 과학자, 궁정관리, 역사가들이 포함되었다.
알렉산더는 가장 먼저 페르시아의 지배아래 있던 그리스 도시들을 해방시켰고,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넜다. 원정 초기 5년간은 주로 바다를 낀 서해안을 따라 오늘날의 터키,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이집트까지 공략하여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후에는 메소포타미아로 진군하여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들을 장악하였다. 알렉산더는 여기서 마케도니아군(軍)과 그리스군(軍) 가운데서 지원자만을 거느리고 다시 동쪽으로 원정하여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 강(江)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원정 10년차인 주전 324년에 페르세폴리스로 회군하였다. 다음 해인 주전 323년 바빌론으로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에 열병으로 33세에 사망하였다.
바울의 1,2,3차까지의 선교기간은 대략 11년간으로써 알렉산더의 정복기간과 거의 맞먹는다.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을 46년경에 시작하여 제3차 선교여행을 57년 말경에 마쳤다. 물론 바울은 그 후로도 계속 살아남아 67년 순교할 때까지 복음을 전했으며, 34년경에 개종하여 67년경에 순교할 때까지 예수님의 일생에 맞먹는 33년간 전도자의 일생을 살았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실제 일생은 35년 정도로 추정되긴 하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33살이란 숫자가 알렉산더와 예수님 그리고 바울의 공적 생애와도 같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군사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칼도 창도 방패도 없었다. 제2차 선교여행 때에는 군사라고 해봐야 고작 자신을 포함해 4명뿐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취한 전신갑주는 14-17절에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였다. 이런 무기로 무장한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는 그리스 공략을 위해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알렉산더가 동방원정 때 건넜던 다르다넬스해협 남쪽 초입에 있는 사모드라게를 거쳐 네압볼리로 건너갔다. 복음으로 무장한 강력한 진군이었다.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위해서 마케도니아에서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 터키로 향했다면, 바울 일행은 거꾸로 그리스 원정을 위해서 다르다넬스해협 남쪽 초입의 에게해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갔다.
바울 일행은 알렉산더가 세운 헬라제국과 그 헬라제국을 붕괴시킨 로마제국이 닦아놓은 통일된 언어와 훌륭한 도로와 항로와 헬레니즘을 통해서 예수님의 평화의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강력히 진군하였고, 그리스의 알렉산더와 로마의 시저와 폼페이가 거둔 승전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을 각각 대표하는 그리스와 로마는 오늘날까지도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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