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31]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7(행 16: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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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1]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7(행 16:11-40)
빌립보 교회 설립
사도행전 16장은 바울 일행의 그리스 선교이야기의 시작이며,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서의 이야기이다. 바울 일행은 오늘날의 터키 북서해안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알렉산더가 동방원정 때 건넜던 다르다넬스해협 남쪽 초입에 있는 해발 1,650M의 높은 산봉우리를 가진 사모드라게 섬으로 직행하여 이튿날 마케도니아의 네압볼리(Neopolis)에 도착하였다. 복음으로 무장한 강력한 진군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위해서 마케도니아에서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 오늘날의 터키 서안의 아시아로 진군했다면, 바울 일행은 거꾸로 그리스 원정을 위해서 다르다넬스해협 남쪽 초입의 에게해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들어갔다.
‘네압볼리’(11절)는 ‘네오폴리스’ 즉 신도시라는 뜻이다. 빌립보의 외항이며, 19KM 떨어져 있었다. 네압볼리는, 주전 146년에 건설된 총 길이 784KM, 서울부산왕복거리에 해당되는 ‘에그나티아’(Egnatia) 대로가 시작되는 동부지역 출발점이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까지 이 도로를 도보로 이용하였다.
빌립보(12절)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2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이며, 금광과 은광이 많은 곳이었다. 빌립보는 주전 42년에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군대가 율리우스 시저를 암살한 공화정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군대를 무찌른 곳이었다. 이 전쟁의 승리로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빌립보를 속주지에서 로마의 이주지로 승격시켰다. 이주지 주민들에게는 자치권이 주어지고,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이 면제되는 등 이태리인들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졌다.
유대인들이 회당기도회를 가지려면 가장의 숫자가 열 명이 넘어야 했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주후 49년에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사실이 있었다.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이 일으킨 소동 때문이었는데,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사회에서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큰 소요가 있었던 것이다. 황제의 칙령은 이주지인 빌립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바울 일행이 도착하기 1-2년 전에 이 도시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모두 추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도착하여 며칠 쉬는 동안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는지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안식일에 성문 밖으로 나가 기도처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 나섰던 것은 빌립보에 유대인회당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유대인회당은 없었으나 강가에 기도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울 일행은 거기에 참석하여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가 있었다. 루디아는 터키 두아디라 출신의 자색옷감 장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문의 개종자였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고 복음을 받아드리게 하셨다. 그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집안 식구와 함께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바울 일행을 강권해서 자기 집에 모셨다. 참고로 루디아의 집은 강가에 있었고, 그곳에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의 3만 신들과의 전투
바울 일행은 기도처로 가다가 귀신에 사로잡혀 점을 치는 노예 소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점을 쳐서 혹은 예언을 해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이 여자가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고 외쳤다. 이런 일이 여러 날 지속되자, 바울은 그 여자의 몸에 붙은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여 내쫓아버렸다. 이 사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노예 소녀는 신체적으로도 노예였지만, 영적으로도 노예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몸에 붙은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쫓아낸 것은 3만 명이 넘는 그리스의 신들과의 최초의 전투이자 승리였다.
둘째, 귀신이 소리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으나 바울 일행의 신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전도를 훼방하는 동시에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것이었다.
셋째, 귀신의 집요한 공격이 주효하여 유대인이었던 바울과 실라가 체포되어 태형을 맞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다. 누가와 디모데는 헬라인이어서 태형과 투옥을 면했던 것 같다. 바울과 실라가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힌 것은 전투에서의 아군의 손실에 비교될 수 있다. 이긴 싸움이든 진 싸움이든 싸움에는 항상 피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도 피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진리가 이기고, 정의가 이긴다는 것이다. 이긴 것이 정의이고 이긴 것이 진리라는 뜻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는 언제 이겨도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다.
넷째, 바울 일행에게 위기를 몰고 온 귀신의 공격이 꺾이자 노예 소녀는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았고, 빌립보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된 것이다.
다섯째,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예언의 영에 사로잡힌 노예 소녀를 만난 것은 우상과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입성했다는 뜻이고, 3만이 넘는 신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노예 소녀에 붙었던 영은 퓌톤(Python)이었다. 그리스신화에는 예언과 치유와 관련된 왕뱀이야기가 있다. 이와 관련된 장소가 세계의 배꼽(옴팔로스)이라고 믿었던 델포이였다. 델포이는 주후 392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까지 고린도에서 멀리 아니한 파르나소스 산 남쪽 기슭에 있었다. 델포이의 직전 지명은 퓌톤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이곳에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신탁소가 있었고, 가이아는 정자 없는 처녀임심으로 아들 퓌톤, 일명 왕뱀을 낳아 이 신탁소를 책임지게 하였다. 한편 여신 레토는 제우스의 씨를 받아 이란성 쌍둥이인 궁수의 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았는데, 아폴론은 출생과 동시에 퓌톤을 활로 쏴서 죽이고 신탁소를 장악하였다. 그리고 퓌톤의 아내인 퓌티아를 사람으로 만들어 신탁소의 제니(여사제)로 삼아 자신이 맡겨놓은 예언(신탁)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의 제니 퓌티아를 통해서 신의 뜻을 알아낼 수 있다가 믿었다. 뱀이 인간에게 예언을 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능력
바울과 귀신의 대결은 참 하나님과 그리스의 거짓 3만 신들과의 대결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델포이 신전 입구 상인방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신들 앞에서 오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왕뱀의 영을 몰아낸 바울은 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세운 것에 비교될 수 있다. 모세와 바울이 행한 일들은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들이었다. 뱀은 약도 주고 병도 준다는 것이 당대의 생각이었다. 뱀한테서 예언의 능력을 받았던 고린도의 폴뤼이도스는 뱀에 물려 죽어가다가 다른 뱀이 물어다 준 약초로 인해서 살아났다는 신화가 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들에게 물려서 죽어갔다. 그 때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세워서 뱀에 물린 자들이 그 놋뱀을 보면 살게 하였다. 뱀이 병도 주고 약도 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뱀이 예언과 치유의 상징인 것에 반해서, 성경에서 뱀은 하나님의 일, 살림의 일, 빛의 일, 질서의 일, 생명의 일에 반대되는 죽임의 일, 어둠의 일, 혼돈의 일, 죽음의 일을 하는 사탄과 마귀로 상징된다. 노예 소녀의 주인들은 왕뱀의 영이 패배함으로써 수입원이 사라진 것을 원통히 여기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무리와 함께 관가로 데려가 소란을 피우며 고소하였다. 이에 빌립보의 상관들이 태형을 집행하는 릭토르(lictor)에게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친 후에 옥에 가두게 하였다. 바울은 제1차 선교지에서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이미 여러 번 매를 맞았지만, 이방인에게 매를 맞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대인들은 39대까지만 곤장을 치지만, 이방인들은 매질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 로마인들은 죄인들의 두발을 찢어지도록 넓게 벌려 차꼬를 채워 토굴 같은 감옥에 가뒀다.
옥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야 정신을 수습하였는지, 그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시작하였다. 죄도 없이 심한 매를 맞고 차꼬에 묶인 채 감옥에 갇혀 기도하고 찬송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과 실라에게는 이것이 적을 무찌르는 강력한 무기요 사람을 살리는 병법이었다. 기도와 찬송은 지진을 일으켜 옥터를 움직였고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차꼬가 저절로 풀리게 하였다. 기도와 찬송은 또 자결하려던 간수의 육체의 목숨을 살려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침례를 받아 영생에 이르게 하였다. 간수뿐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고 빌립보교회의 창립멤버가 되게 하였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태형을 맞고 감옥에 갇힌 위기를 통해서 주어졌다.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들인 동시에 로마시민권자들이었기 때문에 이 고통을, 마음만 먹었으면, 굳이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권리를 쓰지 않았고, 그 결과 간수의 가족을 구원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교회가 강가에 있는 루디아의 집에 세워졌다. 창립멤버들로는 루디아의 가족, 노예 소녀, 간수 가족으로 이뤄졌다. 그들은 극심한 환란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힘에 넘치도록 바울의 선교를 지원하였다(고후 8:1-5). 산고가 컸던 만큼 건강한 옥동자를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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