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33]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9(행 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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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3]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9(행 17:16-34)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아레오바고)
베뢰아에서 아테네(아덴)까지는 육지로 12일, 배로 3일 걸리는 32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바울을 아테네까지 인도해준 성도들이 베뢰아가 돌아가서 그곳에 남아 있는 실라와 디모데를 떠나보내고, 또 그들이 아테네로 와서 바울 일행을 만나 합류하기까지 걸린 기일은 최소 1-2주에서 3-4주가량이었을 것이다. 그 기간에 바울은 아테네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고, 몇 번 회당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아테네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였고”(16절),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문의 개종자 헬라인들과 장터(아고라)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17절)하였다. “그리고 몇몇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도 바울과 논쟁하였다”(18절).
아테네는 철학자 소크라테스(469-399BC)와 플라톤(427-347BC)과 아리스토텔레스(384-322BC)로 대표되는 학문과 예술의 도시였다. 바울이 22절에서 “범사에 종교심이 많다”고 평가하였듯이, 종교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23절에서 보듯이, 3만이 넘는 신들을 섬겼던 아테네인들은 ‘알지 못하는 신’(Agnostos Theos)을 위한 제단을 만들고, 또 “자주 알지 못하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도 했다(Pseudo-Lucian, Philopatris, 9.14). 2세기의 그리스의 여행자 겸 지리학자였던 파우사니아스는 아테네에서 10KM 정도 떨어진 피레에프스 항구로 가는 길에 “알지 못하는 신”들을 위한 제단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Pausanias' Description of Greece in 6 vols, Loeb Classic Library, Vol I, Book I.1.4).
바울의 헬라인 청취자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거나 새기거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을, 비록 ‘알지 못하는 신이지만, 우수한 신’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신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예배드려왔던 알지 못하는 신이였다는 암시를 받았을 것이고, 바울도 그런 뉘앙스로 설교하였을 것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아테네의 언덕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해서 이 법정을 ‘아레오파고스’(아레스의 언덕)라고 부른다. 이 언덕에서 아테네의 공회가 열렸다. 그리고 공회판사를 아레오바고 관원이라고 불렸다.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디오누시오(Dionysius)는 이 법정의 판사였다.
이 언덕에서 동편을 바라보면, 약 150미터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크로폴리스라 불리는 광장이 보이는데, 거기에 그 유명한 파르테논(아테나의 신전)이 있었고, 지금도 그 형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 또 아레오파고스 언덕 아래에는 시민들의 장터이자 광장이었던 아고라가 있었다.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나 신의 거주지였다면, 아레오파고스는 재판정이었고, 연설장이었으며, 귀족들이 토론하고 회의를 여는 공회였다. 반면에 아레오파고스 아래에 있었던 아고라는, 17절에서 “장터”로 언급되었듯이, 서민들의 시장이자 광장이었다. 아고라는 단순히 상거래만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토론을 벌이고 시의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아테네의 학파들
아테네는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를 자랑했던 도시이다. 아테네에 우상이 가득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아테네가 그리스도의 적국이었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고, 바울이 격분하여 사람들과 벌린 변론을 영적인 전투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투는 칼과 창과 방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평화의 복음으로 하는 것이고, 나라를 빼앗고 백성을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죄와 사망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아 일으켜 생명을 살리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은 자연을 세계의 정신으로 보는 범신론이자, 제우스까지도 운명에 지배된다고 믿었던 숙명론이다. 자기부정의 금욕주의를 추구하면서, 유교의 칠정(七情)에서처럼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에 무감정 무관심할 것과 불교에서처럼 욕심을 버려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스토아 철학은 키프로스 사람 제논(주전 330-265년)이 창시하였다. 제논이 아테네의 아고라(시장)에 있는 주랑중 하나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토아’(stoa)란 ‘주랑’ 또는 돌기둥을 뜻하는 말로써 강렬한 햇살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회랑 또는 행각을 말하며, 주로 이런 회랑에서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문답교육이 이뤄졌다. 바울의 출생지 다소에도 스토아 철학이 유명하였다.
에피쿠로스(주전 342-270년) 철학에서는 쾌락이 삶의 최고의 목표였다. 물론 좋은 의미의 쾌락을 말한다. 고통과 애욕과 공포에서 벗어나 평정지계를 누리는 가장 가치 있는 쾌락을 말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영혼불멸을 부정하였고, 사후보응에 대해서도 부정하였다. 그러나 신의 존재는 인정하였다. 물질은 영원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부정하였고, 신의 통치와 섭리도 부정하였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근대 공리주의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공리주의는 쾌락의 양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것이 정의이고 선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공리주의는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늘린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해 보이는데, 그것이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지상주의, 실용실리주의로 흐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성공, 부, 쾌락이 절대가치가 될 때, 하나님의 뜻, 성경적 가치, 개인의 권리, 인권, 존엄성 등이 무시되는 큰 약점이 있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맥을 잇고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유지상주의를 펼쳤다. 개인이 타인의 행복, 즉 공동체를 위한 행복의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했다. 내 몸의 결정권은 내게 있으니, 내가 자살을 하든, 낙태를 하든, 마약을 하든, 매춘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장기를 떼어 팔든, 대리모를 사고팔든 상관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이런 주장은 낙오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모든 수단을 거부할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의 가르침은 참 쾌락이란 하늘에만 있고, 부활 후 영생을 누릴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또 고통과 고난이 사람에게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며, 고난은 장차올 영광에 족히 비교될 수 없다고 하였다.
바울의 설교내용
바울은 앞에서 살펴본 아테네 학자들과 예수님과 부활에 관해서 논쟁을 펼쳤다(19절). 아테네 사람들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았다”(21절)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기 위해서 아레오파고스의 바위언덕에 멍석을 깔았다(20절). 바울은 이 기회를 살리고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바울의 설교를 청취한 자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거나 새기거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을, 비록 ‘알지 못하는 신이지만, 우수한 신’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신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예배드려왔던 알지 못하는 신이였다는 암시를 받았을 것이고, 바울도 그런 뉘앙스로 설교하였을 것이다. 바울의 설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천지대군이시며, 손으로 지은 신전에 계시지 않고, 무엇이 부족하신 것처럼 사람에게 대접을 받지 않으시며, 오히려 빛과 생명을 주시고, 만물을 관리하게 하셨다(24-26절).
둘째,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한 혈통을 가진 형제자매로 만드시고 수명과 거주할 장소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상을 만들거나 숭배하지 말아야 한다.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은 “금이나 은이나 돌”이 아니라 살아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27-29절).
셋째,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할 때이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자(30-31절).
이 바울의 설교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야유하며 복음을 거절하였다(32절).
둘째, 어떤 사람들은 결신을 미루고 보류하였다(32절).
셋째, 아레오파고스 관원인 디오누시오(Dionysius)와 다마리(Damaris)라는 여인 및 다수의 사람들은 믿었다(34절). 결코 적지 아니한 성과였다.
아테네는 철학자 소크라테스(469-399BC)와 플라톤(427-347BC)과 아리스토텔레스(384-322BC)로 대표되는 학문과 지성의 도시였다. 주신(主神)도 지혜의 여신 아테나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실상은 우상의 소굴이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 3년쯤 후에 쓴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말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사람에게나 그리스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18-24).
아테네 사건이 있고나서 5-6년쯤 후에 쓴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롬 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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