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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6]새 언약 백성의 새 땅과 새 나라1(행 1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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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612 2014.06.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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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6]새 언약 백성의 새 땅과 새 나라1(행 18:5-17)

고린도교회 설립

바울 일행은 그리스 최남단에 위치한 아가야도의 행정수도 고린도에서 주후 51년경에 처음으로 1년 6개월간의 거점선교에 성공하였다. 안전과 숙식문제가 해결된데 따른 결과였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거점마련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고린도는 10만 명 정도의 상업, 체육, 종교, 문화, 교통이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에 선교거점이 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안전에 대해서는, 6절과 12절에서 보듯이,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9-10절이 암시하듯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숙식에 대해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천막을 만들어 팔고 있었고, 바울도 그 분야의 기술자여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그 일에 뛰어들 수 있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졌다. 고린도 인근에서는 큰 대회들이 열리고 있었다. 가까운 이스트미아의 포세이돈 신전에서 2년마다, 서쪽 네메아에서 2년마다, 북쪽 델포이에서 4년마다, 남서쪽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열렸다. 가장 큰 대회인 올림피아드를 기준으로 2년째와 4년째 해에 네메아대회와 이스트미아대회가 열리고, 3년째 해에 델포이 대회가 열렸다. 이 때문에 천막수요가 아주 많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후원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와 같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신생교회들이고 가난해서 선교지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그들은 혼신을 다해서 바울 일행을 후원하였다. 5절에서 보듯이, 실라와 데모데가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이 보내온 헌금보따리를 풀자, 바울은 당장 일을 그만두고 복음전도에 나섰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기 전까지 천막을 제조하면서, 4절에서 보듯이,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가 유대인들과 헬라인 문의 개종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한 이후로는 생업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였는데”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비방하였다.

5절의 “붙잡혀”에서 보듯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반면, 유대인들은 율법에 붙잡혔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한 반면,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하여 비방”(6절)하고, 법정에 끌고 가서,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12-13절)라고 고소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무죄 방면된 반면, 고소자들의 대표인 소스데네는 이방인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누구에게 또 무엇에 붙잡혀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말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교회를 세우고 1년 6개월간 정착하면서부터 대적과 비방을 일삼는 유대인 선교를 접고, 거처를 회당 옆에 사는 헬라인 문의 개종자 디도 유스도(가이오)의 집으로 옮긴 후 이방인 선교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다.” 그렇지만, 바울이 직접 침례를 베푼 사람은 유스도와 그리스보 뿐이었다(고전 1:14). 그만큼 그들의 역할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의 정치적 변증

갈리오 총독은 음유시인이었던 원로원의 원로 세네카의 아들이자 네로의 가정교사였던 철학자 세네카의 형제였다. 본명은 마르쿠스 안나에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였으나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어 갈리오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주후 51년 말부터 52년 8월 사이에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발표한 포고문을 기록한 델포이 신전의 비문은 갈리오가 주후 51년 혹은 52년 7월 1일에 총독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밝히고 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죄목은 불법종교를 전파한다는 것이었다. 로마는 속주민들의 종교를 합법으로 인정하였으나, 신생 종교만큼은 제국의 질서유지 차원에서 불법으로 다스렸다. 유대인들은 이 점을 악용하여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유대교와 무관한 불법이라고 고소하였다. 만일 총독이 유죄판결을 내린다면, 그의 판결은 판례로 남아 다른 재판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행히 총독은 유대인들의 고소를 묵살하였고, 반 유대적 감정을 가진 이방인들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잡아 갈리오의 면전에서 구타하였다. 소스데네는 예수님을 믿고 회당장직을 사임한 그리스보의 후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담겨 있다.

첫째, 이 사건은 9-10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증거사례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 사건은 기독교를 변증할 목적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은 로마관리들이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던 선례들을 많이 밝히고 있고, 기독교와 유대교의 근접한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당대의 유대교가 누렸던 공인종교(religio licita)의 혜택을 기독교가 받아 마땅하다는 암시를 준다.

셋째, 이 사건은 유대인을 향해서, 바울을 비롯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충실하게 율법을 준수하였고, 예수님은 성서가 장차 오실 자로 예언한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 곧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단절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회당에서 몰아낸 유대인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예수님이 당한 박해나 초대교회가 당한 박해는 대부분 유대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넷째, 이 사건은 로마당국을 향해서,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에 대해서 무죄를 확인했고, 선언했으며, 석방하려고 했듯이, 갈리오 총독은 바울의 활동에 대해서 무죄 방면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백부장 고넬료와 서기오 총독과 같은 로마관리들은 바울과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로마당국자들의 호의적인 사례들의 열거는 예수님과 바울의 정치적 무죄를 밝히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무해한 것임을 밝히려는데 있었다. 이것은 로마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리는 한편, 적대감을 제거시킴으로써 세계선교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고린도 서신들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예루살렘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지 20년쯤 지난 주후 51년경이었다. 그로부터 5-6년쯤 후인 57년 전반기 중에 고린도 서신들이 쓰였다.

고린도전서는 교회 안에서 발생된 문제들에 대한 권면과 교인들이 직접 물어온 여러 질문들에 대한 해답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핵심주제를 간략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전체 내용을 보면, 1장부터 4장까지는 파벌문제를 다루고 있고, 5장은 성적인 타락, 6장은 소송문제와 방종, 7장은 결혼과 독신, 8장부터 10장까지는 우상숭배, 11장은 예배, 12장부터 14장까지는 성령의 은사, 15장은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16장은 헌금에 관한 내용과 문안인사로 되어 있다.

고린도후서는 교리나 실천적인 내용보다는 바울 자신과 관련된 자전적 서신으로써 눈물과 화해와 변호와 반대와 호소와 질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7장까지는 오해와 해명의 글로써, 여기서 바울은 사도직의 진실성과 사도직의 본질을 논하고 있다. 8-9장까지는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모금을 요청하는 글이다. 10-13장까지는 대적자들을 반박하는 글이다.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대적자들이 끼어들었고, 이들은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열광주의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공격은 대체적으로 바울의 외모와 언변과 권위와 교훈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고린도교회에 바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들 불만은 앞서 보낸 편지에 대한 오해, 복음의 모호성에 대한 불만, 헌금 호소에 대한 냉담한 반응,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여전한 의심, 바울의 행동이 불투명하다는 의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고 교회를 해롭게 한다는 오해, 멀리 있을 때에는 담대하다는 비난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비난과 오해에 대한 바울의 대응은 고린도후서에서 눈물과 화해와 변호의 글로 나타나 있다.

떠돌이와 노예였던 당대의 유대인들은 민족의 절박한 희망을 성취시킬 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행할 자라고 믿고 있었다. 모세와 같은 영웅적인 메시아를 고대했던 것이다. 반면에 보이는 현상세계를 보이지 않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로 여겼던 헬라인들은 참되고 영원한 빛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지혜(영지)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유대인들은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 능력에 있다고 보았고, 헬라인들은 지혜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능력도 지혜도 아닌 “십자가의 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이 “십자가의 도”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만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25절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선포하였다. 새 언약 백성을 위한 새 땅과 새 나라는 여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약해 복이고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도”로써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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