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37]새 언약 백성의 새 땅과 새 나라2(행 18: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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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7]새 언약 백성의 새 땅과 새 나라2(행 18:18-28)
소아시아를 향한 진군
고린도에서의 1년 6개월간의 정착선교를 마치고 일행은 터키 소아시아도의 종교도시 에베소로 향했다. 복음으로 무장한 강력한 진군이었다. 그것은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위해서 마케도니아에서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로 진군했던 것과 같다. 그리스선교를 위해서 잠시 접어야했던 소아시아선교를 계획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동행하였다. 고린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야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 여행에 동행한 것은 시사 하는바가 크다.
첫째, 18절과 26절에서 로마인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유대인 아굴라의 이름보다 반복해서 앞에 나오고 있다. 아굴라는 흑해에 가까운 터키 북부 본도지역 출신의 유대인이었지만,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상류계층의 귀부인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다. 가부장제도의 전통을 깨고 여성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성인 아굴라의 이름보다 앞에 나오는 경우가 총 여섯 번 가운데 네 번이나 된다. 성경에 보면, 동생의 이름이 형들의 이름보다 언제나 앞에 놓여서 형과 동생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셈과 함과 야벳,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이삭과 이스마엘 및 모세와 아론이다. 셈은 함과 야벳의 동생이고, 아브라함은 나홀과 하란의 동생이며, 이삭은 이스마엘의 동생이고, 모세는 아론의 동생이지만, 이 동생들의 영향력 때문에 형들보다도 그들의 이름이 언제나 앞에 온다. 마찬가지로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인 아굴라보다 앞에 쓰인 경우가 많은 것은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 아굴라보다 훨씬 컸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단순히 사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의 일군으로서 소아시아도의 종교도시 에베소에 진출한 것이었다. 바울 일행의 정착선교를 위해서 반드시 그들이 함께 했어야했기 때문이다. 바울 일행이 파송교회인 안디옥교회와 사도들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여 선교보고를 하고 재정비하여 돌아올 때까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사업을 일구고 교회를 개척하여 선교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하였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를 떠난 후 에베소로 돌아와 이들 부부와 합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년 정도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서 2년 남직한 이 기간에 선교기반을 닦고 있었고, 바울 일행이 도착하면 언제라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수년 전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 일행보다 2년 남직 먼저 고린도에 이주해서 정착하고 있었다. 바울이 가는 곳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 체류한 것은 2년 3개월간이었다. 바울은 이 기간에 제3차 선교를 성공리에 마치고 로마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을 세웠는데, 로마서 16장 3-4절을 보면, 바울의 다음 선교지인 로마에 이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린도에서도 그랬고, 에베소에서도 그랬고, 로마에서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보다 먼저 다음 선교지에 가 있는 것을 본다.
바울의 서원
바울은 고린도 인근의 항구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하나님께 서원한바가 있어서 머리를 길렀고, 이제 그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배를 타기 직전에 머리를 밀었다. 어떤 서원이었는가? 나실인의 서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민 6:1-21). 바울은 이 기간에 음주, 삭발, 사체(死體)를 멀리 했을 것이다. 기간은 8일에서 한 달 또는 일생동안 할 수 있었으나, 서원의 기간이 고린도를 떠나기 직전까지였던 점으로 미뤄볼 때, 서원한 이유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복음전도에 방해받지 않으려는 것이었던 것으로 판단되므로 그 기간이 꽤 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원의 마감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이뤄졌다. 일시적인 나실인 서원일 경우, 만기 때에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장이 머리털을 밀고 제단에서 번제물과 함께 불살랐다. 그러나 멀리 사는 나실인은 만기 때 머리털을 밀고 보관하였다가 예루살렘성전 방문 때 번제와 함께 불사르도록 구전인 미쉬나에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가이사랴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그 짧은 기간에도 유대교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배로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한 바울은 도보로 100KM 떨어진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제2차 선교에 대한 결과보고를 위함이었다. 다른 하나는 겐그레아에서 깎은 머리털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 번제물과 함께 불사르기 위함이었다. 수년 후 제3차 선교결과를 예루살렘교회에 보고한 후에도 바울은 교회의 권유를 받아드려 유대인의 율법을 경시하지 않았다는 증표로 다른 사람들의 서원 규례 행사에 동참하여 그 비용을 대신 부담한 일이 있다. 바울의 이런 일련의 행위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반한 행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방인교회들의 승인과 관련이 있다. 바울의 행동은 이방인교회들과 유대인교회들과의 화목을 위한 것이었다. 결코 타협적인 태도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바울의 화합을 위한 노력의 절정은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친 직후 이방인교회들로부터 거금을 모아 예루살렘교회에 가져간 때였다. 아무튼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480KM 떨어진 안디옥으로 돌아갔으며, 22-23절은 바울이 이미 제3차 선교여행을 떠났음을 알려준다.
서원과 관련하여 바울의 평소 신념과 태도를 고린도전서 9장 19-2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전도자 아볼로
신약성경에 전도자 ‘아볼로’의 이름이 11번 나온다. 사도행전에 3번, 디도서에 1번, 나머지 7번은 고린도전서에 나온다. 아볼로의 등장 시기와 장소는 주후 53-4년경 에베소이다. 바울 일행이 떠나온 뒤 고린도에 파송된 전도자였다. 얼마 후 고린도를 떠나온 아볼로는 자기로 인해서 고린도교회에 파벌이 형성된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바울의 많은 권유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로 돌아가기를 주저하였다(고전 16:12). 전설에 의하면, 아볼로는 나중에 고린도교회의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아볼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의 헬라파유대인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가 주전 332년에 세운 지중해연안 항구도시로써 인구 1백만이 거주하던 대도시였다.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고, 헬라 철학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유대인이 40만 명 정도 거주하였고, 히브리대학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헬라어 구약성경 70인역(LXX)을 만들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필로라는 유대교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구약성서를 알레고리로 해석하였다. 알레고리란 성경의 문자 이면에 감춰진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고 해석하는 영해(靈解)를 말한다. 필로가 남긴 대표적인 알레고리는 그가 쓴 <특별한 법>(De specialibus legibus)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말씀이며, 세상은 그 말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I,81)는 해석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고 교육을 받았던, 어쩌면 필로의 제자였을지도 모를,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24절) 곧 구약성경을 알레고리로 해석하는데 능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추측하건데, 아볼로는 구약성경을 알레고리하기보다는 모든 신약성서 저자들의 취했던 방법, 즉 구약의 것을 신약의 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로 보는 모형론에 능통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눈여겨 볼 것은 아볼로가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유대인회당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전하고 있었지만, 요한의 침례만 알고 그리스도인의 침례와 기독교와 성령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25절). 에베소에 이런 형제들이 다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들이 아마 아볼로의 제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오실 자 메시아로 믿었던 유대교인이었다.
아볼로를 개종시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일군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였다. 이 일은 바울 일행이 제3차 정착선교를 막 시작하려던 때에 생겼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아볼로는 형제들의 추천을 받아 고린도에 건너가 사역하였다. 그의 고린도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아볼로파가 생길 정도였으며, 이에 바울은 자신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준 사람,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고전 3:6)이라고 설명해야할 정도였다.
아볼로의 능통한 수사적 설교에 고린도 교인들이 열광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3개의 바울서신서 전체에 사용된 “지혜”란 말의 절반가량이 아볼로의 이름이 언급된 고린도전서 1-4장에 집중되어 있는데 헬라인들은 그들을 이데아세계로 인도해줄 지혜(지식)를 찾던 사람들이었다. 아볼로의 알레고리 또는 모형론의 수사능력이 이 부분의 욕구를 채워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모든 것에 더해서 아볼로는 바울과 동역한 신실한 일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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