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40]새 언약 백성의 새 땅과 새 나라5(행 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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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0]새 언약 백성의 새 땅과 새 나라5(행 20:1-12)
에베소에서의 환란
사도행전에서는 에베소에서의 환란에 대해서 자세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다. 이는 누가가 에베소 정착사역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자신이 팀에 합류했을 경우에 “우리가”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암시하곤 하였다. 사례들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가는 소아시아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들어갈 때 함께하였다(16:10-11)
둘째, 누가는 빌립보교회가 설립되는 전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16:13,15-17). 혹자는 누가가 이곳에 남아 빌립보교회를 섬겼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셋째, 누가는 언급이 끊겠다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제3차 선교와 그리스순방까지 모두 마치고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합류하였다(20:5-6).
넷째, 누가는 이후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까지 동행하였고,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옥살이를 한 직후 네로에게 재판받기 위해서 로마로 이송될 때 로마까지 같은 배로 바울과 동행하였다(21:17; 27:1; 28:16). 누가도 바울과 함께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겪었던 환란에 관해서는 바울 자신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몇 가지 진술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린도전서 4장 9절에서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전쟁에 패하여 노예로 사로잡힌 자들이 차꼬에 묶인 채 개선행렬 끄트머리에 서서 아레나를 가득 메운 군중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비유로 말한 것이다.
둘째,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서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만일 부활이 없다면, 자신의 처절한 싸움이 마치 검투사가 아레나에서 맹수를 무찌른 것같다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이것은 에베소에서 겪었던 적들과의 처절한 싸움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셋째,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말씀은 에베소에서 실제로 겪은 고난을 설명한 것이다. 아레나에서 실제로 이뤄지던 당대의 사건들, 즉 개선식에 끌려나와 조롱거리가 된 전쟁노예들,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맹수와 싸우는 검투사에 대한 비유는,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바울이 에베소에서 겪었던 고난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었는가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다.
넷째, 고린도전서 16장 8-9절에서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는 말씀은 에베소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리스교회들 순방
바울은 주후 57년 중반에 에베소에서의 선교를 마치고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교회들의 순방에 나섰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들 교회들에게 은혜를 끼치려 함이었고, 둘째는 이들 교회들이 가난한 예루살렘교회에 기부할 헌금을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교회들을 순방하겠다는 바울의 계획은 이미 고린도교회에 통보되었다. 그 내용을 고린도전서 16장 1-9절과 고린도후서 1장 15-16절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 16:1-9).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고후 1:15-16).
고린도전서 16장과 후서 1장의 내용으로 볼 때, 고린도전후서는 에베소에서의 제3차 정착선교를 마무리할 무렵에 쓰였다. 16장 8-9절,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 한 말씀은 고린도전서가 주후 57년 초에 기록되었을 말해 준다. 오순절 절기는 보통 5월 중순부터 6월 초순에 닿기 때문이다. 바울은 57년 여름 전까지 에베소에서의 정착선교를 마치고,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그해 11월말쯤에 고린도에 도착하였을 것이며, 고린도에서 57년 12월경부터 58년 2월경까지 3개월간 과동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바울은 해동과 더불어 고린도를 떠나 3월말부터 4월초 사이에 닿는 유월절 명절을 빌립보에서 보냈기 때문이다(행 20:6). 이렇게 볼 때 고린도후서는 전서를 전달받은 고린도교회의 부정적인 반응이 표출된 직후부터 57년 전반기 중에 쓰인 여러 개의 편지들을 모은 것일 수 있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3개월간 과동하는 동안에 저술되었다. 바울은 주후 58년 3월 중에 고린도를 출발해서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보냈고,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고 싶어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감옥에 2년간 투옥되었을 때,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했는데, 그 때가 주후 60년이었다. 같은 해에 바울은 네로에게 재판을 신청하였고, 로마로 이송되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8개월간 머문 때를 주후 51-52년 사이로 보는 것은 이 시기에 갈리오가 고린도에 총독으로 부임하였기 때문이며, 바울이 로마에 이송될 당시를 주후 60년으로 보는 이유는 베스도가 같은 해에 유대총독으로 부임하였기 때문이다.
일요일 예배와 내용
2절의 “헬라”는 아가야도의 명칭이다. 그곳의 수도는 고린도였다. 해동이 되자 바울은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케도니아로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3절). 이때 소아시아 드로아에 먼저 가서 기다린 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이름이 4절에 실렸다.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다. 이들은 예루살렘까지 헌금을 운반할 각 지역교회들의 사절들이었다. 그들의 이름 앞에 지역명이 나온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들은 예루살렘교회 앞에서 이방인교회들의 현황을 보고할 각 지역교회들의 대표들이었다. 바울 일행은 유월절이 지난 후 누가와 더불어 빌립보에서 배로 출발하여 5일 만에 드로아에 도착하여 먼저 도착한 지역대표들과 합류하였고,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6절).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드로아에서 제2차 선교 때 바울 일행을 만나 함께 마케도니아로 건너갔고, 빌립보교회가 설립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후 언급이 끊겠다가 바울과 헤어진 지 6-7년 만에 빌립보에서 재회하여 예루살렘과 로마까지 동행하였다.
예루살렘에 갈 일행은 가이사랴행 배를 기다리며 한 주간을 드로아에서 지냈다. 여기서 누가는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는데, 그것은 드로아 교회가 주의 만찬을 행하려고 일요일에 모였다는 것이다. 주일예배와 내용에 관한 중요한 정보이다. 이때가 주후 58년 4월경이고, 예루살렘교회 창립 28주년을 5주 정도 앞둔 때였다. 이들이 모인 시간은 안식일이 끝난 토요일 해진 후, 즉 일과가 끝난 저녁시간이자 유대인들에게는 일요일의 시작이었다. 바울의 강론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주의 만찬식이 있었으며, 이후에도 날이 새기까지 강론이 이어졌다. 창에 걸터앉았던 청년 유두고가 졸았던 것은 종일 노동으로 피곤하기도 했겠지만, 켜놓은 등불들이 내뿜는 일산화탄소가 창 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3층에서 떨어졌는데도 다행히 무사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모임이 주는 중요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7절의 “안식 후 첫날” 혹은 “주간의 첫날”은 요일명이 없었던 유대인식 표현으로써 일요일을 말한다. 교회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 혹은 이를 줄여서 주일이라고 불렀다. 드로아에서의 집회는 초기 교회가 주님이 부활하신 일요일 곧 주일에 모여 예배드렸고, 예배의 내용으로 주의 만찬을 거행했다는 증거이다. 이보다 앞서 기록된 고린도전서 16장 1-2절,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는 주일에 예배를 드렸고, 예배의 내용으로 헌금을 드렸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 일이 있고서 50년쯤 후인 112년경에 플리니(Pliny the Younger)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터키 북서부 비두니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정한 날(주일) 새벽에 모여 연도형식의 찬송을 부르고 서약(십계명)하였으며, 흩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모여 “보통의 흠 없는 음식에 참여했다”고 보고하였다. 일요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고, 기독교집회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새벽에 모여 1부 말씀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고, 저녁에 다시 모여 2부 주의 만찬 예배와 헌금을 드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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