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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6]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1(행 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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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777 2014.07.0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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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6]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1(행 24:1-27)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

바울은 고린도를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몇 날이 되지 않아서 체포되어 총 네 차례의 심문을 받았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직후 공회원들 앞에서 한번, 유대총독부가 있었던 가이사랴에 2년간 갇혀 있으면서 벨릭스 총독과 그의 후임자 베스도 총독, 그리고 아그립바 2세 왕에게 각각 한 번씩 심문을 받았다. 예수님도 갈릴리를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후 체포되어 공회에서 한번,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헤롯 안디바 왕에게 한번, 총 네 번의 심문을 받으셨다. 공교롭게도 바울과 예수님은 각각 사역하던 곳을 떠나서 예루살렘에 올라와 체포되어 공회에서 1회, 총독에게 2회, 왕에게 1회 총 네 차례씩 심문을 받았다. 이것은 바울의 삶이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져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첫째, 바울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험한 길을 따라 걸었다. 예수님처럼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였고, 그 길이 험한 길이고 박해의 길이고 죽음의 길이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쉬지 않고 기도하며 성령 충만함을 입어 끝까지 그 길을 완주하였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예루살렘은 성도들의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의 수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은 그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예수님과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불굴의 믿음과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완주해야 한다.

둘째, 예수님처럼 바울은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고, 불리한 재판을 받았다. 예수님은 신성모독죄, 민중선동죄, 반역죄, 성전모독죄, 조세(租稅)거부죄, 메시아참칭(僭稱)죄와 같은 억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변호인도 없었으며, 법적절차를 무시한 무리한 법적용과 잘못된 판결로 십자가형을 언도받으셨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이 죄도 없는 자신을 2년이나 가둬놓고 석방시키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로마시민의 자격으로 네로 황제에게 상소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술책과 바울에게 돈을 바라는 흑심 때문에 구류시켜놓고 있었다.

지난 2천 년간 유대인들이 겪었던 엄청난 불행이 예수님과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배척한데서 기인됐다는 것이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의 주장이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 “제4편 문명의 쇠퇴”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일시적인 자아를 우상화하는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례는 신약성경에 폭로된 유대인의 과오이다.... 이스라엘과 유대의 백성은 일신교의 종교사상에 도달함으로써, 그 주위에 사는 시리아 사회의 다른 민족들보다 단연 뛰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정신적 보물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당연하였으나, 그 정신적 성장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단계이기는 하였지만, 하나의 과도적인 단계에 불과한 것을 우상화하는 과오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은 확실히 무상(無上)의 정신적 통찰력을 타고난 민족이었지만,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진리를 발견한 후에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절반진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천부의 재능을 어리석게도 땅에 숨겨둠으로써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던 그들은 신이 나사렛 예수의 강림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제공한 한층 더 큰 보물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바울에게 덮어씌워진 죄목

바울이 가이사랴에 호송된 지 닷새 뒤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몇몇 장로와 더둘로라는 변호사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되었다. 먼저 더둘로가 고발하여 말하였다.

5-8절을 보면,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습니다. 총독님께서 친히 그를 신문하여 보시면, 우리가 그를 고발하는 이유를 다 아시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병을 퍼트리는 염병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더둘로는 세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는 소요죄였다. 바울은 온 천하에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자라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소요사건에 대해만큼은 신속하고도 잔인하게 처리했다. 총독 벨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는 동안 로마의 평화를 깨뜨리는 여러 소요 사건의 주동자들과 추종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잔인한 사람이었다. 소요죄는 반란음모죄와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자칫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였다. 따라서 더둘로는 이 점을 이용하여 종교적으로 불만이 있던 바울을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형을 받게 하려했던 것이다.

둘째,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라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나사렛당(Notzrim)이라 불렀다. 나사렛이란 예수님의 출신지를 가리킨 말로써 나사렛 출신이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이 인정한 합법종교는 유대교뿐이었다. 이스라엘에 거짓메시아들이 종종 출몰하였는데, 이 거짓메시아는 제국의 질서와 안녕을 해칠 뿐 아니라, 심중팔구 반란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당국으로써는 단호하게 처단할 수밖에 없었다. 5장에서 언급된 드다란 사람과 갈릴리 사람 유다가 각각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고, 21장에서 언급된 사천 명의 자객을 광야로 끌고 나가 반란을 일으킨 이집트출신도 있었다. 바울이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라면 중죄인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더둘로가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셋째, 성전모독죄였다. 성전모독죄는 로마가 허용한 유대법에 저촉되는 행위로써 로마총독의 제가 없이도 즉결처벌 할 수 있었으므로 성전에서 체포된 바울을 천부장 루시아가 가이사랴로 송치한 것은 부당한 처사임을 주장한 것이다. 공인 사본에는 6절 하반절부터 8절 상반절까지에 “그래서 우리의 율법대로 재판하려고 했지만, 천부장 루시아가 와서 그를 우리 손에서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총독님께 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라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이렇게 더둘로는 바울이 로마법상으로 보나 유대법상으로 보나 반드시 처형되어야할 염병과 같은 존재요, 중죄인임을 고소하였다. 더둘로가 바울을 염병에 비교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 33절에서 천국을 누룩에 비교하셨는데, 복음의 엄청난 전파력 때문에 반대자들이 천국복음의 능력을 염병과 같다고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천국복음의 전파력은 기독교가 392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됨으로써 입증되었다.

바울의 변호

복음의 전파력은 조선에서도 입증되었다. 1800년 정조대왕이 죽자 북인 벽파의 무리가 홍낙안을 앞세워 교회를 박멸하고자할 때에 붙인 죄목들은 비인간성과 비국민성 그리고 체제도전이었다. 기독교인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임금의 명령이나 국법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제사를 배척함으로 유교적 질서를 거부하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무리요, 비밀집회를 통해서 나라안전을 위협하며, 천국신앙으로 사회개혁을 꾀하고, 서로를 교우라고 부르며, 양반과 상놈의 신분타파로 반상체제를 위협하는 국가의 원수 집단이며, 인륜과 충의를 저버린 짐승의 무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씨까지도 제거해 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그들이 보기에도 널리 번져버린 염병을 제거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전파력이 강한 복음의 씨앗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었다.

더둘로의 거짓 증거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변호하였다.

첫째,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가 열이틀밖에 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예루살렘 방문목적이 정치적인데 있지 않고 종교적인데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또 열이틀 중에 나흘간은 붙잡혀 있었고, 칠일간은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서 선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둘째, 아무도 자신이 성전에서 사람들과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셋째, 종교적으로도 흠 잡힐 것 하나 없는 사람으로서 체포 후 공회원들 앞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실제로 바울은 예수님에 삶에 잇대어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전통에 충실하였고, 잘못된 가르침이 아닌 한 율법과 회당예배와 구약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넷째, 예루살렘 방문 목적 가운데는 가난한 동족의 구제와 성전에 예물을 바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하였다. 이 언급 때문에 벨릭스는 바울을 돈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다섯째,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썼다”(16절)고 진술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울은 참으로 담대하게도 벨릭스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약간의 기회만 주어져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던 반면, 총독 벨릭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들을 머뭇거리고 결단을 미룸으로써 크고 중요한 복들을 놓치고 말았다. 벨릭스는 회개와 결단의 기회를 연기함으로써 크고 위대한 영생의 복을 차버렸고, 바울의 무죄를 알면서도 석방을 무기한 지연시켰다. 그는 영생의 복을 얻는 대신에 몇 푼의 돈을 바울로부터 받을까 해서 석방을 지연시켰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하기보다는 악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였다. 그나마 다행했던 것은 벨릭스가, 빌라도가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손에 넘긴 것처럼, 로마시민권자였던 바울을 유대인의 손에 넘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수일 후에 자기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청하여 복음을 들었으나 결단의 시기를 미룸으로써 생애 가장 큰 실수를 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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