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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8]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3(행 2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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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43 2014.07.0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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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8]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3(행 26:1-32)

바울의 부활신앙

바울은 베스도의 주선으로 아그립바 2세 앞에 서게 되었다. 이때 아그립바 2세의 나이는 33살이었다. 그의 몸에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유대인의 풍속과 쟁점들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밖의 유력한 인사들에 대해 예의를 갖춰 수려한 언어로 그가 왜 유대인들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유대인들은 바울이 엄격한 바리새인으로서 유대교를 위해 충성스럽게 살아온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인정할 것이다.

둘째, 바울이 고발당한 것은 유대민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이다. 바울의 소망은 부활을 말한다(24:14-15).

셋째, 바울은 대제사장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 당연하게 여겼다.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까지 박해의 손길을 뻗혔다.

넷째, 그랬던 바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자신이 박해하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드리기 위해서 이웃나라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강렬한 빛을 받아 모두 거꾸러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는 음성이 들렸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고,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백성과 이방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사람들에게로 보낸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다.”(14-18절)라고 말씀하셨다.

다섯째,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즉시 다메섹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이방나라들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 복음전파 때문에,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하였다.

여섯째, 바울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활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에게 구원의 빛을 선포하실 분이시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체포되어 최종적으로 왕 아그립바 2세 앞에 서기까지 사람들에게 일관되게 선포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었다. 안토니아 요새로 올라가는 계단에서(22:7-8), 공회에서(23:6), 총독 벨릭스 앞에서(24:14-15), 총독 베스도 앞에서(25:19) 그리고 왕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일관되게 선포한 것은 부활이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 의인과 악인 모두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었다.

바울의 열정

바울은 기회만 주어지면 예수님을 전하는 끈질긴 모습을 보였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이후 심문을 받을 때마다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순간을 복음증거의 기회로 삼았다. 이미 네로 황제에게 상소한 바울은 왕 아그립바 2세 앞에 서는 불편함을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기회를 지체 높은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았다.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말하였는데, 이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왕 아그립바 2세에게 하나님이 죽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다.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을 왜 못 믿느냐는 것이었다. 바울은 8절에서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고 물었다. 이어서 자신이 체험한 것을 말하였다. 한 때 바울은 자기 자신도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지 못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실을 9-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사실, 나도 한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데에,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예루살렘에서 하였습니다. 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그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그리고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그들을 형벌하면서,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다다랐으므로, 심지어 외국의 여러 도시에까지 박해의 손을 뻗쳤습니다. 한번은 내가 이런 일로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삐뚤어진 것이었지만, 율법에 대한 열정, 유대교에 대한 열정, 더 나아가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대단했었다는 점이다. 이 열정은 거짓이 없는 믿음과 깨끗한 양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인의 출세와 가문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시지 않았을 것이다. 삐뚤어지고 왜곡된 것이었지만, 잘못 알고 행한 것이었기에, 하나님께서 바울의 열정을 바로 잡으시고 천국복음전파를 위한 큰 그릇으로 쓰셨다. 그래서 순수한 열정이 중요하다. 열정이 순수하면 그 방법과 결과가 나빴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고, 고침 받고 더욱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지만,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데다가 과오까지 범하게 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사람들에게까지 버림을 당한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하지 못하고, 사랑으로 하지 못하고, 소망 중에 하지 못한 일들은 작은 결과만 나타나도 크게 공치사를 하게 되고,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분을 품게 된다. 디모데전서 1장 5절의 말씀대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행한 일들은 공치사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 행한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맙게 여기면서 머리를 숙인다. 바울의 열정이, 비록 삐뚤어지고 왜곡된 것이었지만,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행한 일이었기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에 그를 만나주셨던 것이다.

바울의 거짓 없는 믿음

바울은 자기와 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정오의 태양보다 더 강열한 빛으로 찾아오셔서 사명을 주셨음을 14-18절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백성과 이방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사람들에게로 보낸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 속에 예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여 부르신 목적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 목적은 흑암에 사는 자들의 눈을 열어 주고, 그들이 어둠에서 빛에로, 사단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또 그들이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거룩하게 된 사람들의 신앙공동체에 가입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시고 구원을 주신 성도들에게는 이 전도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바울은 왕 아그립바 2세에게 감히 말하기를,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29절)라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바울의 증거에 대한 베스도 총독의 반응은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24절)로 나타났다. 또 아그립바 왕의 반응은,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28절)로 나타났다. 이 두 사람의 반응은 바울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해준다. 짧든지 길든지 말할 기회만 주어지면, 사람을 설득시켜 예수님을 믿게 하려했던 바울, 그런 바울이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에 미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님에게 미칠 수는 없는 것인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입에서 예수 믿어야 산다는 말을 토해낼 수는 없는 것인지, 순간순간 답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바울은 자신의 변호보다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힘썼기 때문에, 바울을 심문했던 왕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 또 총독 베스도에게,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소.... 그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으면,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31-32절)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자신의 무죄를 변명하는데 급급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자기 사명에 충실했을 때, 바울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무흠하다는 정당한 판단을 받을 수 있었다. 바울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나갔을 때, 바울을 죽이려는 수많은 원수들 앞에서조차도 무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가 무흠해야 전망이 밝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26장의 부활창조신앙과 평등생명사상

1. 부활신앙 - 누가문서는 탄생으로 시작해서 재탄생으로 끝맺는다. 예수님의 삶에서 보듯이, 그분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죽음이란 없다,’ ‘실패란 없다,’ ‘절망이란 없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뚜렷이 담겨 있다. 바울은 죽음의 위기에서, 감옥과 차고에 채인 절망에서, 부활을 강조하고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메시지에는 새로운 탄생, 새로운 시작, 새로운 미션에 대한 자신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우리 모두에게 재탄생의 의미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 성탄절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어둠의 세력에 벼랑 끝까지 밀리던 빛의 세력이 반격을 시작하는 시점에 지켜지게 된 것은 부활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축복이다. 빛과 생명이,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재탄생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기 때문이다.

2. 창조신앙 - 바울이 사울이었을 적에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한 것은 대제사장의 권한과 위임을 받아 한 것이었다. 그는 단지 적그리스도였던 대제사장의 하수 즉 거짓선지자였던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로 대표되는 어둠의 세력은 모든 시대, 모든 곳에 존재한다. 거짓이 참을, 불의가 정의를, 싸움이 평화를, 악이 선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현상은 자연의 현상이요, 법칙이다. 이것을 뒤집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였다. 그래서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었다. 이것을 행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삶의 방식에 잇대어 사는 것이 창조신앙의 삶이요, 부활신앙의 삶이다.

3. 평등사상 -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이방 민족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나 이방 민족에게나 조금치도 차별이 없다. 사도행전 26장 17절과 23절이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에게 차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에게는 민족의 차별, 남녀의 차별, 색깔의 차별, 신분의 차별, 빈부의 차별, 학벌의 차별, 노소의 차별, 그 어떤 차별도 없으시다. 다만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자는,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황금고삐를 얻어 천마를 부릴 수 있고, 차가운 석상에 따스한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자는, 자기를 우상으로 만들지 않고, 언제나 성령님께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겸손한 믿음을 가진 자이다. 디모데전서 1장 5절의 말씀대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진 자이다.

4. 생명사상 - 사도행전 26장 18절은 선교의 목적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 귀를 열게 하는 것, 말문을 열게 하는 것이고, 어둠이 빛이 되게, 혼돈이 질서가 되게,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성도의 무리에 끼여, 하늘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눈을 뜨고 있고, 참으로 귀가 열려 있고, 참으로 말문이 열려 있으면, 참으로 빛과 질서와 생명으로 어둠과 혼돈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있으면, 그래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면서 손을 내밀어 생명을 살리는 선교의 일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 반대라면, 우리는 여전히 남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야할 선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앉은뱅이가 되어 남의 도움을 기다리기보다는 앉은뱅이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잡아 일으켜 세우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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