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49]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4(행 2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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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49]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4(행 27:1-26)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바울
사도행전 27장은 사도 바울이 기대하고 기도했던 일들이 역설적이지만 환난 중에서 이뤄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장면을 보여 준다. 바울은 첫 선교를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키프로스) 섬과 터키 남 갈라디아 지역에서 했고, 두 번째 선교를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도 고린도에서 했으며, 세 번째 선교를 터키 소아시아주 에베소에서 행하였다. 바울이 행한 제1.2.3차 선교지역은 모두 헬라어문화권인 동방지역이었다. 세 번째 선교를 마치고 세운 네 번째 선교지역은 라틴어문화권인 서방지역 로마와 스페인이었다. 그런데 27장은, 비록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는 미결수의 몸이었지만, 계획하고 기도했던 서방선교의 문이 열린 것을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샤라에서 2년 조금 넘게, 이탈리아 로마에서 대략 2년간 도합 4년간의 미결수 신분의 옥살이를 했지만, 나름대로 한정된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바울에게 충분한 쉼과 학문적 성찰과 자기발전의 기회가 주어졌으리라고 믿는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환난과 역경의 순간에서도 우리의 기도와 계획이 이뤄지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신다.
이로써 우리는 막힘의 위기 속에 트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바울은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고전 10:13)고 말했고,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고후 4:17)고 말했다.
위기(crisis)란 말은 한자로 위태할 위(危)자와 틀 기(機)자의 두 문자로 이루어져있는데, ‘위’(危)자는 위험을 뜻하고 ‘기’(機)자는 기회를 뜻한다. 그래서 위기란 위기도 되지만, 기회도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는 인류문명의 흥망성쇠는 위기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위기가 너무 커도 망하고 위기가 없어도 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적당한 위기는 인류문화와 문명을 흥하게 하는 도전(challenge)이라고 했다. 여기서 ‘적당한 위기’란 위기에 반응(response)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강한 위기도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른 사람은 약한 위기에도 쓰러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전혀 없어도 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위기는 인간의 발전을 위한 쓴 약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도 망하고, 위기가 없어도 망한다는 말은 결국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위기를 만날 때에, 왜 때때로 하나님께서 위기를 막아주지 않고 침묵하시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분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위기를 허락하시는 경우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위기를 예측한 바울
바울의 로마여행은 수인의 몸으로 끌려가는 호송길이기보다는 차라리 제4차 전도여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여행길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겠다.
1절에서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은 가이샤라에 주둔한 황제 대대(the Augustan Cohort)에 소속된 백인대장으로써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로마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사람이다.
2절에서 ‘아드라뭇데노(Adramyttium)배’는 소아시아 북쪽 아드라뭇데노에서 온 상선으로써 바울과 그의 일행이 승선한 배였다. 이 상선은 터키와 수리아의 연안을 항해하는 무역선이었다. 율리오는 이 배를 타고 가다가 적당한 연안에서 로마로 가는 큰 배로 갈아탈 계획이었다.
이 배에 바울의 동역자들인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승하였다. 누가는 안디옥(혹은 드로아) 출신으로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들어갔고, 빌립보교회가 설립되는 전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보았으며, 바울이 에베소에서 제3차 선교와 그리스순방까지 모두 마치고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다시 합류하였다. 이후 누가는 바울과 쭉 함께하였다. 아리스다고는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 아데미 여신의 신봉자들이 에베소에서 난동을 일으켰을 때, 가이오와 함께 붙잡혀 극장에 끌려갔던 그리스도인이다(19:29). 아리스다고는 누가와 함께 바울시중과 동역을 위해서 자비부담으로 바울과 동행하였을 것이다.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제3차 선교와 그리스순방까지 모두 마치고 많은 기부금을 가지고 오순절에 맞춰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데살로니가교회 대표로서 동행했던 인물로서(20:4)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총독부로 이송되어 2년 넘게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누가와 함께 팔레스타인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9절의 “금식하는 절기”란 유대인들의 신년절기인 티쉬리(Tishri)월 1일부터 대속죄일(Yom Kippur)인 10일까지 열흘간 회개하여 죄를 씻고, 용서받고,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한 해를 복되게 보내기를 바라는 기간을 말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인들은 대속죄일 날 24시간 금식한다. 이 절기는 우리나라의 추석명절이 낀 음력 8월 1-10일 혹은 2-3년마다 한 번씩 음력 9월 1-10일에 닿는다. 주후 60년에 대속죄일은 양력 9월 23일이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9월 14일경부터 11월 11일 무렵까지가 항해하기에 위험한 시기였고, 11월 11일부터 3월 10일까지가 항해할 수 없는 시기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는 언급은 항해하기에 위험한 9월말이었다는 뜻이다, 이 무렵 배는 크레타 섬 남쪽 미항(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해 있었으나 겨울을 지낼만한 곳이 못되었다.
바울 일행이 가이사랴를 출발한 것은 9월초 무렵으로 추측된다. 배가 동방에서 서방으로 향하기 때문에 남동풍이 불어야 항해가 순조롭게 된다. 그러나 9월 중하순부터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불던 계절풍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바뀌기 때문에 배가 로마가 있는 북서쪽으로 향하지 않고, 남서쪽 즉 북아프리카 쪽으로 밀리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항해를 계속하게 되면 큰 위험이 따르게 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위기에서 빛난 바울
바울일행은 터키 남단의 무라항에서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호를 만나 옮겨 탔지만, 배는 이미 북동풍의 영향을 받아 여러 날 지체된 상태에서 남쪽으로 밀려 크레타 섬 남쪽 미항에 가까스로 정박했다. 이때 바울은 더 이상 가지 말고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야 안전이 보장된다고 충고했지만, 섬 서쪽으로 옮겨 뵈닉스에서 겨울을 나자는 선장과 선주의 주장에 밀려 항해는 지속되었다. 때마침 남풍이 불어와 닻을 올리고 크레타 해안에 바싹 붙어서 항해를 시작하였지만, 14절에서 보듯이, 출발한지 얼마 못되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부는 ‘유라굴로’(Euraquilo) 광풍이 일기 시작하였다. ‘유로’(euro)는 헬라어로 동풍이란 뜻이고, ‘구로’(aquilo)는 라틴어로 북풍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배는 해안을 끼고 돌지 못하고 해안에서 남서쪽으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배는 폭풍에 휘말려 손을 전혀 쓸 수 없게 되었고, 선원들은 화물과 장비마저 바다에 버렸다. 폭풍은 거센데, 낮밤가리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칠흑같이 어두웠다. 만일 순항이었다면, 에메랄드 빛 지중해를 수놓은 일출과 석양, 밤물결에 흔들리며 나날이 작아져가는 붉은 달과 총총한 별 그리고 별을 껴안고 지는 그믐달까지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갈 즈음에 바울이 21-26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분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어떤 섬으로 밀려가 닿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위대함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첫째, 바울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둘째, 백부장이 임무수행을 우선하고, 선장과 선주가 경제적인 손실을 염려하는 동안 바울은 인명손실을 걱정하며 항해중단을 요구했었다.
셋째,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가 자신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잘못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하였지만,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기보다 오히려 위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하였다.
넷째, 바울은 모두가 삶의 희망을 포기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주도권을 쥐었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상황을 통제하였다.
다섯째, 바울은 극한 상황에서조차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었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죽음에 직면하여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전했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라고 권면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눅 18:27). 바울은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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