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02: 하나님의 교회의 얼룩지우기(고전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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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02: 하나님의 교회의 얼룩지우기(고전 1:10-17)
흙탕물의 영향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고린도는 흙탕물 같은 곳이었다. 따라서 흙탕물 같은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었다. 반면에 하나님의 교회가
흙탕물 같은 고린도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도 기적이었다. 순결한 하나님의 교회가 소돔 같은 고린도에 세워진 것은 순결한 흰옷을 입고 흙탕물속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가 흙탕물속에서 핀 수련처럼 아무리 그 자태를 고고하게 뽐내었다할지라도 흙탕물에 있으면서 그 흙탕물에
얼룩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얼룩의 하나가 분열이요 파벌이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풍족하여져 순결한 수련처럼 성도라, 거룩한 자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문자적으로 순결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없는 은혜로 그들을 그렇게 간주해 주셨기 때문이다.
일치와 분열의 양면성
일치와 분열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일치는 선교의 목표이자 이상이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하나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가 기독교가 추구하는 구원이요, 선교의 목표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창세기에서 보듯이 인류역사는 그 자체가 분열사이다. 분열은 아픔과 고통이지만, 성장과 발전의 길이기도 하다. 분열이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은 경쟁 때문이다. 그러나 심한 경쟁은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요인의 하나이다. 인간의 특성은 본능과 이성에 있다. 인간의 본능은 일치를 원하지 않는다. 본능은 버려두면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자연법칙에 지배받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분열은 자연현상이다. 그리고 이 자연현상에 거슬려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법칙이요, 인간의 실천이성이다. 그러나 이성보다는 본능의 지배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분열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일치운동과 신약교회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를 일컬어 스톤-캠벨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3세기에 걸친 스톤-캠벨운동은 그 역사에서 늘 분열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치의 방법으로 본질적인 것에서 일치하고, 비본질적인 것에서 견해차를 허용하며, 모든 것에서 사랑으로 행하자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이 구호가 분열을 막지는 못하였다.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비본질적인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성서가 말하는 것만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것은 다 함께 침묵하자라고 외쳐왔지만, 이 구호도 역시 분열을 막지는 못하였다. 침묵한다는 것이 허용한다는 뜻인지 혹은 금지한다는 뜻인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연합을 위해 상호노력하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연합이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선교 사업에 협력하기 위하여 연대 또는 연합하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교회는 세워진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파벌이 있다는 소문이 바울의 귀에 들려왔다. 순결해야할 교회 안에 도시의 얼룩인 정치가 끼어든 것이다. 교인들이 저마다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라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울, 아볼로, 게바(베드로), 그리스도는 모두 유대인들이다. 이 파벌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 존재했었다면, 어느 정도로 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0절에서 바울이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한 말에서 유추해볼 때,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을 수 없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무엇인가가 혹 바울이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을 거둬 모아둘 것을 부탁한 것 때문일 수 있고, 혹은 그리스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시장에서 사먹는 문제나 누구한테서 침례를 받았느냐와 같은 문제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다룬 음행, 재혼, 주의 만찬, 신령한 은사들, 부활과 같은 문제들 중에서 다툼의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바울이 13-17절에서 침례를 언급하고 있는 것에서 유추해 볼 때, 파벌의 근원이 침례를 누구한테 받았느냐, 누구한테 받은 침례가 더 권위가 크냐와 같은 논쟁이 있었을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바울은 교회발전에 저해가 되는 분열을 책망하였다.
고린도는 다인종 사회였다. 당연히 고린도교회는 여러 인종들, 곧 유대인, 헬라인, 동방인, 다양한 신분들, 곧 군인, 평민, 빈민, 해방노예, 노예 등 다양한 인종과 신분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가운데 바울파를 자처한 자들은 아마도 바울과 그의 동료들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고 믿고 침례를 받았던 선임 교인들일 수 있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를 떠난 이후 고린도에서 사역한 인물은 아볼로였다. 아볼로는 철학과 수사학과 구약해석이 뛰어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그로부터 기독교복음을 듣고 믿고 침례를 받았던 교인들이라면, 아볼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남달랐을 것이고, 아볼로파로 불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이 게바 즉 베드로인데, 권능이 많은 예수님의 수제자요, 천국의 열쇠를 손에 쥔 당대 최고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주후 44년부터 떠돌이 목회자로 사역한 베드로가 언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사역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게바파라고 주장한 교인들이 있었던 것을 볼 때, 고린도에 베드로의 영향을 받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들을 게바파로 분류하여 뽐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파는 무당파 즉 그리스도께만 속한다는 중도파 또는 독립파들이다.
바울이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한 말에서 보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 몸은
하나이다. 따라서 파벌은 하나인 몸이 나뉜 것과 같다. 그래서 바울은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하다”(고전 12:12)고
하였고,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그 지체의 기능도 각각 다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수효는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각각 서로 서로의 지체 구실을 하고 있다”(롬 12:4-5)고 하였다. 몸의 지체들은 하나님께서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하고”(고전 12:24), “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가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는가?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는가?”(고전 12:25-26)라고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본문 10절에서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말로 격려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우들의 다양성을 피차 존중하면서 선한 사업에 연합하고 연대하여야 한다. 손 내밀기는 분열을 막기도 하고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도움의 손(a helping hand)을 내밀면, 살림의 일, 생명의 일, 창조의 일이 일어나지만, 비난의 손(the finger of blame)을 뻗으면, 분열의 일, 죽임의 일, 저주의 일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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