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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05: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1(고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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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792 2015.01.2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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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05: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1(고전 2:1-5)

하나님의 증거

1절의 “네가 너희에게 나아가”와 2절의 “내가 너희 중에서”는 주후 52년을 전후로 1년 6개월간 체류한 제2차 선교 때를 말한다. 1절의 “하나님의 증거”는 7절의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비밀을 말한다. 가장 오래된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Chester Beatty Papyri, P45-47, 200년경)와 시내산 코덱스(Codex Sinaiticus, 340년경)와 같은 신약성서 사본들에서는 “증거”란 말이 “비밀”로 되어 있다.

p46_2cor11c33v-12c9v.jpg 여기서 “비밀”이란 2절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5절의 “너희 믿음”을 말한다. “너희 믿음”이란 이방인의 믿음, 곧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동등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골 1:14, 엡 1:7), 하나님의 식구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엡 2:19)을 말한다. 이 엄청난 복이 1절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나 4절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된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꺼리는 것과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것, 곧 2절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라 일컬었는데, 이 도(道)가 곧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여,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어림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고, 이상세계로 인도할 지혜(지식)를 찾는 헬라인들은 어리석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실상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다. 바울이 고린도에 들어가 이 복음을 전할 때, 3절의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던 것”은 아테네에서 범했던 실수, 곧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과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써 4-5절의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막지 않을까 하는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 때문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철저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만 복음을 전함으로써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zeus_jesus.jpg유대인들은 아주 오랜 기간 제2의 모세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렸다. 그 모세는 시시한 기적이 아닌, 하늘로부터 내리는 기적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말이 좋아 메시아사상이지, 유대인들은 늘 마음속에 혁명을 꿈꿔왔고, 알렉산더 대왕이나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이 나타나 주기만을 바랐다. 그런 그들의 기대를 미완성이었지만 부응했던 인물이 있었다. 주전 164년에 ‘망치’(마카비)라는 별명을 가진 유다가 유대인들에게 헬라제국으로부터 짜릿한 해방의 맛을 주전 164년부터 64년까지 100년간 맛보게 해주었다. 이제 또다시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을 뛰어넘어 독자적으로 서려면 마카비보다 몇 배나 더 뛰어난 알렉산더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폭력을 낳을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시각이었다. 세상에 필요한 진정한 구원은 속죄제나 속건제 때 바치는 숫양과 같은 희생과 약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세계사가 말해 주듯이, 폭력을 쓰는 나라는, 아무리 강하더라도, 또 다른 더 강한 폭력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리아가 앗수리아에, 앗수리아는 바벨론에,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근동과 소아시아 및 그리스 일부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통치했던 페르시아조차도 헬라(그리스)에 무너졌고, 헬라는 로마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로마는 예수님과 바울이 확신한 바대로, 비폭력, 평화, 용서, 화해,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수중에 넘어갔다. 비폭력이 승리한 사례는 근대에도 있다. 간디는 비폭력으로 인도를 영국에서 독립시켰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시 미국의 흑인들의 인권을 회복시켰으며, 넬슨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의 정치로 남아프리카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약한 것이다. 왕관대신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랑의 예수님이 머리에 뿔이 난 율법의 상징인 모세와 역시 머리에 뿔이 난 폭력과 전쟁을 신격화한 제우스보다 구원에 있어서 더 완벽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란 것을 계시록 5장 6절은 일곱 머리 일곱 눈을 가진 어린양을 통해서 보여준다.

짐승의 능력

alexander_Battleofissus_two.jpg 계시록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일컬어 짐승이라고 묘사하였다. 여기서 짐승은 뿔로 묘사된 세상권세를 말한다. 여기에 제우스-암몬과 알렉산더를 비롯한 황제들이 포함된다. 알렉산더가 제우스-암몬의 아들이라며 제사를 바치도록 하였듯이, 헬라제국의 셀레우코스왕조의 왕들과 로마의 황제들도 자칭 신들로서 백성에게 숭배를 강요하였다. 바울이 머물렀던 고린도에는 초대 로마황제의 누이 옥타비아를 숭배하는 신전이 아고라(시장) 서편 길 건너에 있었다. 이들의 신성이 암몬(산양)의 뿔 또는 황소의 뿔로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계시록이 이들을 짐승으로 묘사한 것은 전혀 비밀스런 것이 아니었다.

이들 짐승이 참신이 아닌 우상이란 점과 폭력과 전쟁으로 권력을 쟁취한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것을 잘 묘사한 그림이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알렉산더와 애마 부케팔로스를 새긴 그림이다. 알렉산더에게 암몬의 뿔이 있었듯이 그의 애마의 머리에도 뿔을 넣어 신격화시켰다. 알렉산더의 심복 셀레우코스 1세가 만든 금화에도 부케팔로스의 머리에 소뿔이 새겨져 있다. 부케팔로스는 헬라어로 ‘소머리’라는 뜻이다. 자칭 신이었던 알렉산더와 부케팔로스는 폭력과 전쟁의 상징이다.

 

 

 

 





 

entry_Jr.jpg반면에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평화와 용서와 화해의 상징이다. 알렉산더는 폭력과 전쟁, 파괴와 죽임을 위해 팔을 뻗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평화와 용서, 화해와 구원을 위해 팔을 벌리셨다. 예수님의 이 팔 벌림이 짐승의 능력에 상반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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