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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06: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2(고전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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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5,084 2015.01.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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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06: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2(고전 2:6)

세상의 지혜

plato_cave3.jpg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1-5절에서 매우 역설적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미련한 것이 똑똑한 것을 이기며,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다는 것을 역설한 후 6절에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시켜 설명하였다.

바울이 말한 세상의 지혜란 무엇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비유는 주전 400여 년 전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들려준 우화로써 플라톤이 쓴 <공화국> 또는 <국가론> 7권에 나온다.




classical_gk_philosophers2.jpg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동굴 속의 죄수들은 의식이 있기 전부터 손발이 족쇄에 묶인 채 뒤쪽이 막힌 공간에서 앞쪽 벽만 보고 살아갔다. 반면에 뒷벽 플랫폼에는 동굴거주자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했고, 모닥불도 피웠다. 이 모닥불 빛에 의해서 죄수들이 볼 수 있는 벽면에 온갖 형상의 그림자들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온갖 소리가 죄수들의 귀청을 울리기 때문에, 또 실상을 본 적이 없고, 불을 본 적이 없고, 동굴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따라서 태양빛이 만드는 파노라마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족쇄에 묶여 있기 때문에, 무덤 같은 동굴에 갇혀 있기 때문에, 어둠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죄수들은 벽면에 비친 그림자들과 소리들을 실상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세상의 지혜를 이 동굴 속의 죄수들의 무지와 동일시한다. 따라서 세상의 지혜는 흑암에 갇힌 것이고, 족쇄에 묶인 것이고, 동굴에 갇힌 것이고, 무덤에 갇힌 것이고,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고, 지혜로운 것 같으나 실상은 무지하다.

헬라인들의 영지(gnosis) 추구

plato_cave2.jpg 헬라인들이 추구한 지식은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를 풀어줄 열쇠, 곧 무지의 족쇄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진리 또는 지식 또는 지혜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을 어둠의 동굴에서 벗어나게 해줄, 그들을 빛의 세계로 인도해줄, 그들에게 그림자 혹은 모형이 아닌 실체를 보게 해줄 참 지식을 일컬어 ‘영지’(gnosis)라고 불렀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의 세계를 이 세상으로, 죄수들을 죄인들로, 죄인들의 족쇄를 풀어줄 열쇠를 복음, 곧 십자가의 도(道)라고 하였고, 이 복음을 깨닫게 하여 빛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분을 성령님이라고 설명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말하였다. 만일 지혜자의 말에 설득되어 족쇄에서 벗어난 죄수가 있다면, 그가 평생 알고 왔던 그림자들을 처음 접하는 실체들보다 더 참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가 불빛을 보는 순간, 어찌 눈에 통증이 없겠으며, 새롭게 보는 것들보다 이전에 보았던 것들이 더 참된 실체라고 믿으면서 통증이 없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가 빛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며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진다면, 태양빛이 만드는 파노라마의 세계를 즐기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그는 탈출을 주저했던 지난날들, 동굴 속에서의 무지와 어리석음, 여전히 무지의 족쇄에 묶인 채 살아가는 동료들을 회상하며, 지금 즐기고 있는 실체들에 대해서 동굴 속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깨달은 자의 이 행위를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 말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하였다. 반면에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헬라인들은 인간을 관념과 물질, 영과 육, 빛과 어둠으로 이원화시켜 영적인 것은 선하고 본질적이며 영원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고 피상적이며 일시적인데, 선한 것이 악한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무지와 고통이 따른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제어하는 금욕주의자와 육체적 가치를 무시하는 향락주의자로 나눠졌다. 이 향락주의가 고린도사회를 병들게 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교회에까지 얼룩을 남겼다.

통치자들의 지혜

diogenes_lamp.jpg 고린도사회가 이토록 어둡고 얼룩진 사회였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개처럼 살면서도 일광욕을 즐겼고, 밝은 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런 행위들은 모두 플라톤의 동굴처럼 고린도사회가 어둠과 무지에 갇힌 사회임을 질책하는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더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서달라고 말한 것을 폭력과 전쟁으로 세상을 어둡게 하지 말라는 충고로 받아드릴 수 있다.

디오게네스의 생활신조는 욕망을 작게 갖는 것(아스케시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아나이데이아), 자족하는 것(아우타르케이아)이었다. 그는 이런 신조 때문에 평생동안 한 벌의 옷과 한 개의 지팡이와 자루를 갖고 통 속에서 살았다. 그를 견유학파로 분류하는 이유는 개처럼 통속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주전 336년에 그리스 본토 도시국가의 왕들이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고린도에 모여 군사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20세에 불과한 젊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뽑혔다. 알렉산더는 고린도를 떠나기 전에 디오게네스를 꼭 만나보고 싶어 했다. 일광욕을 즐기던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를 보자 일어나 앉았다. 알렉산더가 먼저 말을 붙였다. “알: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내가 무섭지도 않은가?” “디: 나는 개 같은 디오게네스요. 그대는 선한가?” “알: 그렇다. 내가 두렵지 않은가?” “디: 선한 자를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겠는가?” “알: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 “디: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서주시오.”

diogenes_relief.jpg디오게네스의 “개 같은 인생”(Cynicos Bios)은 고린도인들의 삶 그 자체였다. 디오게네스가 개(cynos)처럼 통속에서 노숙을 했던 것은 뭔가 주면 꼬리치고, 거절하면 짖거나 무는 개 같은 인생, 개 같은 세상을 냉소한 것이었다. 영어 ‘cynical’은 ‘냉소적인’ 또는 ‘비꼬는’이란 뜻으로써 바로 이 ‘개’ 곧 ‘cynos’에서 나온 말이다. 개 같은 고린도 교회 인생들에게 바울은 1장 3절에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칭하였다. 개 같은 인생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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