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10: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3(고전 4:1-21)
본문
손 내밀기10: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3(고전 4:1-21)
사도들의 역할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흙탕물 같은 고린도에 핀 수련 같은 하나님의 교회가 분열과 파당으로 얼룩지자, 이를 제거하는데 힘을 쏟았다. 파당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교 율법주의에 편향된 그리스도인들과 실체의 세계로 인도할 지혜를 찾는 초기 영지주의에 편향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에 바울은 인간을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임을 천명하였고, 이 지극히 약하고 어리석은 것이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터(기초)라고 말하면서 이 터를 파괴하는 자를 하나님이 파괴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바울은 또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파당의 우두머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군들로서 하나님의 비밀(‘뮈스테리온’, mysterion)을 전달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일군”은 헬라어로
‘휘페레테스’(hyperetes)로써 배 밑에서 노를 젓던 노예를 지칭한 말이다. 또한 “맡은 자”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oikonomos)로써 청지기 또는 나눠주는 자란 뜻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눠줘야 할 것은 하나님의 비밀이다. 여기서
비밀은 신비한 것으로써 남녀노소빈부귀천 민족색깔의 차별 없이 값없이 은혜로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 받으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식구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기독교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비밀을 전달하는 일군으로 알 것과 2절에서 일군들은 맡은 일에
신실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신실함이란 주인의 믿음 또는 주인의 신뢰를 실망시키지 않는 믿을만한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3-5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도움의 손길이지, 비방의 손가락질이 아니라고 하였다. “심판하실 이는 주시다”라면서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상벌을 내리실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지, 피조물인 인간이 아니므로 사람에게 칭찬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되라고 당부하였다.
사도들의 전통
고린도전서 4장 6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에서 “본을 보였다”는 ‘적용하였다’는 뜻이다.
바울은 3장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일군들에 대해서, 농사군의 비유를 들어서, 바울은 자신이 밭을 개간하고 씨를 뿌린 일군이었다면, 아볼로는 물과 거름을 준 일군이었으며, 역할은 달랐지만, 동일한 하나님의 일이었다고 천명한 바가 있다. 또 지혜로운 건축자의 비유를 들어서, 자신이 기독교의 터 또는 교회의 기초를 놓은 일군이었다면, 아볼로는 그 터 위에 건물을 세운자로 언급하였다. 지혜로운 건축자라면, 바울이 놓은 터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고, 그 위에 집을 세울 때 어떤 좋은 재료를 써서 세울 것인지를 신중히 생각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훗날 에베소서 2장 19-22절에서, 하나님의 비밀에 따라 이방인들조차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과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다고 하였다. 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가정은 교회를 말한 것으로써 예수님이 그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셨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놓으신 네 개의 모퉁잇돌 사이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은 터 위에 세워져 가는 성전이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6절에서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우라”고 한 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놓은 교회의 모퉁잇돌과 터의 범위를 넘지 아니한 바울과 아볼로를 본받으라는 뜻이다. 따라서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넘지 말라”는, 신약성서가 없었던 때라고 해서 구약성서의 범위를 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구약성서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의 범위를 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세워지면, 파당을 지어 서로를 얕보면서 선민의식과 배타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파당을 정죄하고 배척하는 일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뜻이다(7-8절).
고린도전서 4장 6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도들의 가르침 곧 신약성서의 말씀 밖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약성서를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약성서를 이해한 사도들의 전통을 따랐다면, 신약성서가 해석한 방식으로 구약성서를 해석하고, 신약성서 안에서 구약성서를 이해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분열, 곧 수백 개가 넘는 개신교의 파당들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신약성서교회의 중요성과 복원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사도들의 헌신

고린도전서 4장 9절은 바울과 그 일행의 처지가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여기서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는 대중 앞에서 공개처형하기로 결정된 죄수나 노예 또는 검투사 등을 말한다. “끄트머리에 두셨다”는 개선행렬의 맨 끝을 말한 것으로써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전쟁노예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또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온 우주를 하나의 원형경기장에 비유한 것으로써 행렬이 원형경기장에 입장했을 때, 피를 요구하는 대중의 구경거리 또는 조롱거리가 된 것 같은 자신들의 처지를 말한다. 10-13절은 이처럼 그리스도 때문에 그들은 어리석게 되고, 약하게 되고, 비천하게 되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며, 파당을 지어 상대방을 얕잡아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오만한 교인들과 촛불처럼 제 몸을 불사르는 자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줌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었다. 또 바울은 복음으로써 낳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심정으로 자신을 본받을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자만의 극치에 이른 일부 교인들은 회개는커녕 강하게 바울에게 반발하였다. 고린도후서에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은 그들에게 눈물로 쓴 편지를 보냈고, 나중에는 화해의 편지까지 썼다. 바울이 끝까지 내민 것은 도움의 손이었지만,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이 내민 것은 비난의 손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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