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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1: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4(고전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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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925 2015.02.2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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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1: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4(고전 5:1-13)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

고린도가 그리스의 타락한 소돔성이 됐던 데에는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과 무관하지 않다. 고린도에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있었다면, 그녀의 배경에 아스다롯(Ashtoreth)이 있었기 때문이다. 풍요와 사랑의 여신이었던 아스다롯은 고대 근동세계에서 유사한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고,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각각 아프로디테와 비너스로 불렸다. 솔로몬이 주변국들과 결혼동맹을 맺고, 그들의 신들을 예루살렘에 불러들여 신당들을 제공하였고, 왕비들이 주관하는 신당축제들에 배석하였는데, 아스다롯 축제가 대표적이었다. 이로써 솔로몬의 결혼동맹정책은 남북분열의 여러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 북왕국 이스라엘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린 오므리는 왕자 아합을 바알과 아스다롯 숭배에 심취된 시돈 출신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맺게 함으로써 미모가 뛰어나고 두뇌회전이 빠른 이세벨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철저히 유린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되었다. 이 난세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고군분투하였다.

goddess_canaanan.jpg 여신 아스다롯의 신전에는 거의 대부분 사람의 머리, 사자의 몸통, 새의 날개를 단 스핑크스가 부조된 팔걸이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 여신의 축제는 봄, 초여름, 가을에 있었는데, 이 시기는 이스라엘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맞물려 있었다.

가나안의 최고신은 엘(El)이었다. 엘은 ‘산당’을 뜻하는 아세라(Asherah)한테서 바알(Baal)과 아스다롯과 아낫(Anath)을 낳았다. 풍요와 사랑의 여신 아스다롯과 전쟁의 여신 아낫은 자매로서 오빠인 바알의 부인들이었다. 바알은 ‘주인’ 또는 ‘소유주’를 의미하며, 하늘의 폭풍, 비, 기후를 다스리는 신이자, 척박한 근동에 비를 뿌리는 신이었다. 반면에 아스다롯은 바알로부터 비를 받아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신이었다. 이에 근거하여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이 성생활을 많이 할수록 비가 많이 오고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예배자들은 아스다롯 신전(산당)에서 사제(성창)들과 살을 섞곤 하였는데, 그것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자극하여 더 많은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금지와 음행의 맥락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믿었던 농경문화가 만든 음란한 우상숭배행위가 유목문화와 유일신 야훼를 믿었던 히브리인들의 삶을 자주 흔들어놓곤 하였다. 우상도 없고, 여신도 없고, 신화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단지 율법(계명)을 듣고 행하는 것만으로 야훼 하나님을 믿어야 했던 히브리인들에게 바알과 아스다롯의 숭배는 오늘의 홍등가처럼 매우 자극적이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서 유랑하다가 농경문화의 관문인 모양평지 싯딤에 이르러 발람의 꾐에 속아 브올지역의 바알 종교의식에 참가한 직후, 무려 2만 4천명이 염병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염병은 사제들로부터 옮긴, 적어도 히브리인들에게는 치명적이었을 성병으로 추정된다.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정착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바알과 아스다롯 의식에 유혹을 받았다.

신구약성서에서 우상숭배와 음행이 맥락을 같이하는 이유는 근동세계의 종교의식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십계명에서 제1-2 계명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와 “우상을 만들지 말라”인데, 성서 66권에서는 우상숭배를 음행과 동일하게 취급하였다. 그 이유가 예배자가 사제(성창)와 성관계를 맺는 근동의 종교의식 때문이었다.

고린도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음행문제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닷물 거품에서 태어나 조가비에 몸을 싣고 키프로스(구브로) 섬의 뭍으로 나왔다고 전해졌기 때문에 수도 바보가 아프로디테의 본산지였지만, 그리스 본토에서는 유일하게 주신으로 모셨던 고린도가 더 유명세를 탔다.

고린도에서 아프로디테 신전은 그리스 반도를 조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한 덩어리 바위산 아크로고린도에 세워졌었고, 1천여 명의 여사제들 곧 신전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매우 부유하였다. 이뿐 아니라, 지중해 연안세계에서 고린도는 성을 사고파는 도시로써 주전 수백 년 전부터 그 악명을 떨쳤는데, 아프로디테 신전의 변질에는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의 영향이 컸다.

goddess_aprodite_athena.jpg고린도를 상징하는 명물에는 천마 페가소스가 있었다. 따라서 고린도 주화에는 어김없이 페가소스가 등장한다. 헬라제국시대에 만들어진 주전 300년대의 드라크마를 보면, 페가소스와 함께 여신 아테나와 아프로디테가 새겨져 있는데, 주목해서 봐야할 것이 여신들의 모양새이다. 아프로디테는 리본으로 머리를 여미고, 끝을 묶어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에 귀걸이와 목걸이를 착용하였다. 아프로디테의 이 꾸밈새는 당대의 그리스 여성들, 특히 고린도 여성들과 성창들의 대표적인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늘 고린도의 헬멧을 착용한 모습으로 새겨져 대조를 이뤘는데, 이는 고린도인들이, 아테네인들처럼, 여신 아테나를 도시의 수호신으로 여긴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홍등가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음행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또 우려했던 문제가 실제로 일어났고, 바울은 음행으로 더럽혀진 교회의 얼룩을 신속히 지우려고 하였다.

바울의 귀에 교인 중에 계모를 취한 자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교회는 그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그 일을 통탄스럽게 생각지도 않았으며, 그자와 교제를 끊거나 출교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그를 그대로 뒀다가는 음행이 교회 공동체에 누룩처럼 번질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강한 어조로 그를 출교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4-5절,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는, 가상이지만, 바울이 교회의 공동의회에 영으로 참석하여 음행한 자를 출교시키는 일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뜻이며, 그만큼 사안이 엄중했다는 뜻이다. 출교는 공적 예배와 성찬 예식에서 배제되는 것을 뜻한다. 교회는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와 가족이기 때문에 출교는 교인을 사탄의 나라와 사탄의 식구에게로 복귀시키는 징계였다. 실제로 출교의 엄격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밀라노에서 있었다.

주후 390년에 데살로니가에서 주민반란이 일어났고, 진압과정에서 7천여 명의 양민이 학살당하였다. 이 무렵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밀라노에 머물고 있었고, 밀라노의 주교는 암브로시우스였다. 주교는 이 천인공노할 도륙의 책임을 황제에게 물어 공적 예배와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였다. 부활주일에 황제가 예배당에 들어서려고 하자 암브로시우스는 출입구를 가로막고 서서, 황제가 참회하기까지는 예배에 참석할 수 없노라고 하였다. 이후 다시 황제가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려고 하자, 암브로시우스는 다시 출입구를 가로막고 서서 참회하지 않으면 예배에 참석할 수 없노라고 완강하게 막아섰다. 이 사건은 결국 황제가 주교에게 굴복하여 참회함으로써 매듭짓게 되었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는 2년 후인 392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사례에서 보듯이, 출교가 엄격한 징계인 것은 사실이나 회개의 기회조차 빼앗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5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한 말씀은 징계를 통해서 죄를 범한 교인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고, 또 교회가 얼룩지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 바울은 6-8절에서 교회가 만일 교인의 악행을 덮어버린다면, 악행은 묵은 누룩처럼 빠르게 공동체를 썩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면서, 히브리인들이 유월절 때 누룩 없는 빵을 먹듯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유월절 속죄양이 되셨으므로,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의 덩어리 빵처럼, 분열의 누룩, 음행의 누룩을 제거하여 순전하고 진실한 한 몸 교회가 되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9-13절에서 바울은 교회에 세상을 심판할 권한은 없지만, 교인은 치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더라도 사생활권과 인권의 보장이 한층 강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교회가 교인들을 권면할 때에 형법과 민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속국가는 교회법을 형법과 민법의 하위법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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