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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3: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6(고전 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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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172 2015.03.0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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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3: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6(고전 6:12-20)

자유지상주의

고린도전서 6장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한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 곧 절제를 말한 것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 주장한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헬라인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눠 영혼은 선한 본질이지만, 육체는 이 영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육체를 억제하는 금욕주의자와 육체를 남용하는 향락주의자로 나뉘었다. 그리고 육체를 남용하는 향락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모든 것이 가하다고 주장하였다. 향락주의는 그리스의 소돔이었던 고린도에서 특히 악명이 높았다. 당대의 헬라인들이 음란한 사람들을 향해서 “고린도인처럼 행동한다”(corinthiajo)고 하였고, 창남들을 “고린도의 친구들”(corinthiai hetarai), 창녀들을 “고린도의 아가씨들”(corinthiai corai)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zeno_epcurus_raffaello.jpg 사도행전 17장 18절에 보면,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이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플라톤보다 한 세대 뒤에 제논(주전 330-265년)과 에피쿠로스(주전 342-270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스토아 철학이 자기부정의 금욕주의를 추구한 반면, 에피쿠로스 철학은 쾌락을 추구하였다. 이런 점에서 스토아 철학은 금욕주의 영지주의자들의 원조가 되었고, 에피쿠로스 철학은 향락주의 영지주의자들의 원조가 되었다.

이 가운데 에피쿠로스 철학은 근대 공리주의의 원조가 된다. 공리주의는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것이 정의요 선이라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맥락을 이어갔던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자유론>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된다며 자유지상주의를 주창하였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개인이 타인의 행복, 즉 공동체를 위한 행복의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오직 내게만 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내가 자살을 하든, 낙태를 하든, 마약을 하든, 매춘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콩팥을 떼어 팔든, 대리모를 사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내 몸의 결정권은 내가 가졌다는 주장이다.

무신론

johnstuartmill.jpg 존 스튜어트 밀이 19세기 인물인 것에서 보듯이, 18-19세기는 기독교신앙에의 도전과 배도의 세기들이었다.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자유주의 이론가였던 존 로크(1632-1704), 공리주의를 표방한 제러미 벤담(1748-1832), 공리주의에 반기를 든 임마누엘 칸트(1724-1804), 신의 죽음을 선포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죄와 벌(1866)>과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1880)>를 발표한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등이 활동했던 시대였다. 이 시대는 신의 죽음과 인간의 자유를 입에 올리던 무신론의 시대였다. 또한 이 시대는 자연신론과 계몽주의 사조가 기독교신학을 지배하여 계시, 기적, 예언,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등을 부정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신이 죽었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곧 신이나 다름없다. 신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그에게는 살인이 죄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죽인 것은 자신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지, 자신이 초인인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접근하려 했던 행동을 죄라고 불렀다. 같은 관점에서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이복동생 스메르자코프에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살인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반의 이 말에 현혹된 스메르자코프는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하고 만다.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 말은 또한 가상적인 게임에서든 실제 상황에서든 암살단의 구호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구호를 외친다. 신이 없다는 이 위험한 사상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자유의 제한

everythingispermitted.JPG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거나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신앙문제가 아니더라도, 개인에게든 공동체에게든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법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악한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락된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본능에 이끌러 그것들을 악용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 해악을 끼친다는데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나 허락하신 것들이 본래 악하지 않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인간들에 의해서 그것들이 선하게 되기도 하고, 악하게 되기도 한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다. 법은 결국 그 책임을 묻기 위해 공동체가 합의한 계약이다. 인간에게 허용되는 자유의 범위는 공동체의 성숙도에 따라 다르다. 개인에게 허용할 자유의 폭을 놓고 지금도 나라마다 진보와 보수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또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고 허용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의 법말고도, 하나님의 법이 있다. 세상의 법에는 하나님의 법과 상충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의 법과 관습보다는 하나님의 법과 신앙양심이 훨씬 더 높은 도덕성과 윤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자기가 속한 세상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한다.

13절,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는 죽음을 말한 것이다. 음식과 육체는 영원하지 않고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14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시 살려 부활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15-20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와 한 몸이 되었는가, 누구의 신부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구성원)들이고, 그리스도와 합한 자들이며, 성령님의 성전인데, 창녀와 한 몸이 된다면, 이는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부생활을 뜻한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창녀와 몸을 섞는다면, 그는 창녀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자가 이를 버리고 다시 창녀와 한 몸을 이룬다면, 이것은 자기 몸에다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가하다고해서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참 자유 곧 절제이다. 그리스도인의 절제는 금욕도 향락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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