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14: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7(고전 7:1-9,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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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4: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7(고전 7:1-9, 25-40)
독신과 금욕의 목적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과 관련해서 고린도전서 7장의 주제는 결혼과 독신이다. 고린도교회에 영지주의와 철학 사조들로 인해 향락주의와 금욕주의에 경도된 자들이 있었다. 5-6장에서 음행의 문제가 거론된 직후에 7장에서 결혼과 독신의 문제가 거론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향락주의는 천명이 넘는 노예성창을 거느렸던 아프로디테신전, “모든 것이 가하다”며 육체를 남용한 영지주의 및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긴 에피쿠로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반면에 금욕주의는 육체를 억제하는 영지주의 및 자기부정의 금욕주의를 추구한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스토아 철학은 노예, 매춘부, 빈민처럼 힘겹게 목숨을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선악과 행불행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은 독신자였을 뿐 아니라, 독신과 금욕에 경도된 측면이 있었다. 바울은 1, 7, 8, 26,
38, 40절에서 6차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다.”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 그렇다고 바울이 결혼과 부부생활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7절에서 금욕을 은사로 간주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한다고
누구나 원초적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은사가 없다면, 불같은 정욕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9절에서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권고하였다.
바울은 금욕과 독신의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32절에서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한다”고한 말씀에서 보듯이, 금욕의 목적은 주의 일에 전념함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8-29절에서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 하였다. 가족에 매이면 주의 일에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 바울은 결혼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금욕과 독신을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에 포함시킬 수 있다.
둘째는 26절과 28절에서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을 것이다”고한 말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칠 고난 때문이었다. 가족에 묶이면 마음이 약해져 배교할 위험이 있다.
결혼의 목적
바울은 결혼의 목적을 창조적 질서에 두기보다는 음행을 피하는데 두었다. 2절에서 바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하였다. 28절에서는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결혼, 재혼, 부부의 합방, 부부의 합의의 목적도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데다 두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3-4절에서 남편은 아내의 욕구, 또 부인은 남편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충고하였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한다”고 하였다. 동일한 맥락에서 바울은 5절에서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충고하였고, 부부사이의 합의를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분방을 해놓고 서로 절제하지 못한다면, 사탄의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울과 동시대를 살았던 로마인들은 일부일처제와 부부사이의 정절을 중요시하였다.
남편 아우렐리우스 헤르미아와 부인 아우렐리아 필레마티오의 결혼생활이 기술된 주전 80년경의 묘비명을 보면, 해방노예였던 남편은 정육점을
운영하였고, 부인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으며, 부인의 헌신덕분에 매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적었다. 역시 해방노예였던 부인도 7살에 남편을 만나
40년간 행복하게 사는 동안 남편에게 충실하고 헌신적이었으며, 정숙하고 겸손하였으며, 남자들의 추파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새겼다. 이
묘비명에서 보듯이, 정절은 아내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충실해야 했고, 남편을 유혹할 수 있어야 했다. 반면에 남자들은
부부생활의 목적이 출산에 있다는 철학적 관점을 거부하였다. 정절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남자들끼리의 관계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고, 매춘부를 찾는 행위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바울의 남녀평등주의
동시대를 살았던 바울과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크(Plutarch, AD 45-120)의 결혼과 부부생활에 관한 견해를 보면, 바울의 사상이 얼마나 파격적인가를 알 수 있다. 플루타르크는 남편을 부인의 결정권자와 통치자로 부각하였고, 부인은 남편에게 상냥하고 순종적이어야 하며, 부부생활에서 부인이 여주인처럼 남편을 주도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반면에 바울은 남녀평등주의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였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의 남녀평등주의는 세 가지로 나타나 있다.
첫째, 바울은
3-4절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부인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부부생활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써 동시대의 플루타르크와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바울은 5절에서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말함으로써 부부의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셋째, 바울은 33-34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우선해야 옳지만, 인간적으로 남편은 부인을 어떻게 기쁘게 할까, 또 부인은 남편을 어떻게 기쁘게 할까를 염려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6절에서 부부는 일심동체임을 강조한바가 있다. 따라서 성서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부부가 결혼생활에서든 부부생활에서든 상호의존적이고 동등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음행은 부도덕하고 불신실한 것이다. 반면에 플루타르크는 부인이 남편을 기쁘게 해야 할 의무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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