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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7: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10(고전 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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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21 2015.03.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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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7: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10(고전 9:1-14)

바울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

바울은 그리스의 소돔이었던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다. 고린도교회는 구정물 속에서 핀 수련이나 다름없었다. 바울은 구정물 속에서 살아가는 고린도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복음전도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마음과 영혼에 낀 때와 더러움을 씻고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시민이 되었다. 하지만, 몸까지 구정물 세상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다. 성도라 할지라도 죽어서 하늘나라로 이주하기까지는 구정물 세상에 빠져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매일매시 기도와 성령 충만으로 자신을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또다시 때가 끼고 얼룩이 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요 자연의 법칙이다. 이 같은 원리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점차 마음과 영혼에 때가 끼고 얼룩졌다. 그 같은 것들에 파당과 분열(1장), 음행(5장), 소송사건(6장)이 있었고,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말하기 힘든 중립적인 즉 본질이 아닌 문제들(adiaphora)로 논쟁이 일었다. 그 같은 논제들에 결혼과 이혼, 독신과 재혼(7장),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8장)가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바울은 즉시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려고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다. 9장 1-14절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사랑의 법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사도의 자격으로 고린도교회로부터 자신이 누릴 자유와 교회에 요구할 권리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나열하였고, 자신은 그 같은 자유와 권리들을 왜 사용하지 않고, 포기했는지 그 동기와 목적을 자신의 순수성까지 의심하는 자들에게 설명하였다. 그것은 복음전도의 수월성을 앞세운 사랑의 법 때문이었다. 사랑은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의 손 내밀기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kosher_pig.jpg9장 1절에서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는 “모든 것이 가하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를 향한 것이고,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는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와 2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한 말씀은 고린도교회의 전 구성원을 향한 목소리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사도인 자신이 자유를 어떻게 제한했는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여 사도인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또 그 권리들을 왜 포기하고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였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사용하지 말도록 명령한 사랑 때문이었다.






고린도교회 일부 성도들의 비판

3절을 보면 고린도교회에 바울을 비판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누구였으며 무엇을 비판했는가? 또 바울은 그들로부터 왜 비판을 받았는가? 사도로서 혹은 전도자로서 바울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는 무엇이었는가?

영지주의에 편향된 헬라인들이 비판자였을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로서 그들은 바울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말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을 수 있다. 노예의 실상을 잘 아는 헬라인들로서 바울이 자신을 노예와 동일시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수 있다. 당시 노예들은 대부분 전쟁노예들이었다. 더러는 노예의 자식들, 강도나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상인에게 팔린 자들, 빚을 갚지 못해서 계약서를 쓰고 스스로 된 노예들, 빚을 탕감 받거나 굶주림을 면하려고 아버지들이 팔아넘긴 자식들도 있었다. 당시 노예들은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었다. 복종이 강요된 주인의 재산이었다. 그들은 노동과 폭력과 성적학대에 시달렸다. 그들이 주인에게 받은 얼굴의 낙인과 등의 채찍자국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흔적이었다. 노예들에겐 그 어떤 도덕심도 수치심도 남겨지지 않았다. 남녀 주인들이 남녀노예들을 애어른 가리지 않고 성 노리개로 마음껏 농락했기 때문이었다.

kosherkitchen.jpg 율법주의에 편향된 유대인들이 비판자였을 수 있다. 그들은 바울이 사도라고 말하는 것이 못마땅했을 수 있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니었다는 것과 바울이 한 때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받아들고 기독교를 탄압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옥에 가뒀던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은 바울이 모세의 율법이나 할례가 구원에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것과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등하고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 불만이 쌓였을 수 있다.





비판에 대한 바울의 변호

자신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 바울은 영적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식구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은 사도로서, 또 육신적으로는 로마시민권자로서, 베냐민지파에 속한 바리새파 출신의 랍비로서, 진정한 자유자요 사도요 주님을 본 자요, 고린도교회의 개척자임을 상기시켰다.

첫째,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며 자유를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에게 자신에게도 먹고 마실 자유와 권리가 있었음을 강조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복음전파의 수월성을 위해서 이 권리를 포기하였다고 변호하였다.

둘째,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결혼하여 가족을 거느릴 자유와 권리가 있었음을 강조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복음전파의 수월성을 위해서 이 자유와 권리마저 포기하였다고 변호하였다.

셋째,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여 성장시킨 전도자로서 고린도교회로부터 기본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었음을 강조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복음전파의 수월성을 위해서 자급자족하였다고 변호하였다.

kosher_mcdonald.jpg 넷째,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앞세우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실생활과 모세의 율법을 들어서 먹고 마실 자유와 권리, 가족을 거느릴 자유와 권리, 자비량 선교를 하지 않아도 될 자유와 권리가 있었음을 변호하였다. 실생활의 사례들로써 군인이 자비량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는 점, 포도원지기가 그 수확물로 먹고사는 점, 양치기가 양의 젖과 살코기와 가죽으로 인해 먹고사는 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한 점,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탈곡하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탈곡한다”는 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눈다”는 점, 주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다”는 점을 들어 자신에게도 기본생활을 보장받아야할 권리가 있었으나 그 권리를 쓰지 아니한 이유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 때문이었다고 설명하였다.

바울과 일행이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어려움을 참아낸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가면 그 유명한 ‘사랑노래’가 나온다. 그 노래의 서막이 바로 9장이다. 바울은 9장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당신을 위해 나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참 사랑은 자유와 권리를 남용하기보다 제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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