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18: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11(고전 9: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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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8: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11(고전 9:15-27)
하나님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신 몸의 흔적
세계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신 흔적이다. 완전하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부족하여 죄와 허물을 피할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을 만들어 굳이 당신의 거룩하심을 훼손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시고 인간을 만드셨고, 만물을 그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는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몸의 흔적이다.
고린도전서에는 세 가지 세계관이 나타나 있다. 첫 번째가 세계의 절반을 부정하게(treyf) 보고
그것들을 율법과 규례로 막고자 한 것이었다. 율법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었는데, 피해자들은 항상 약자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모세의
율법에 편향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세리와 창녀, 특히 이방인을 부정하게 보았고,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들과의 교제를 차단시켰다. 그들은 율법과 규례가 정한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도 먹지도 않는다. 그것이 우상의 제물, 돼지고기,
치즈버거를 먹지 않는 이유이다. 치즈버거를 먹지 않는 이유는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섞거나 함께 씻거나 함께 조리하거나 함께 보관하거나 함께
먹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계를 악하게 보고 남용해도 좋다고 본 것이었다. 그 무엇도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지 못한다는 자유지상주의였는데, 이때도 피해자는 항상 약자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쾌락주의에 편향된 영지주의 헬라인들이었다. 그들은 약자들을 멸시하고 착취하고 지배하였으며,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 희생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세계를 만든 창조주는 저급한 신이고, 참 신이 악한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될 수 없다며 성육신을 부정하였다.
세 번째는 세계를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것으로 본 것이었다.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사용하는 동기, 목적, 방법에 따라서 그것들이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는데 그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고 보았다. 사랑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혜택이 항상 약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예수님, 바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 나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 몸의 흔적
바울은 고린도서를 쓸 무렵이나 그 직후에 갈라디아서를 썼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바울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하였다. 여기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 곧 바울의 몸의 흔적은 무엇인가?
바울을 괴롭게 하는 자들은 고린도교회뿐 아니라 갈라디아교회에도 있었다. 그들은 초기 영지주의에 편향된
헬라인 그리스도인들과 모세율법에 편향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 중 유대인들은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할례의 흔적은 유일신 하나님이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랑의 표시였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이 할례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또 바울은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학자들은 바울이 말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에 대해서 네 가지 정도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 첫째는 빈번한 박해와 고문으로 인해서 몸에 생긴 흉터를 말한다는 주장, 둘째는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가 갖고 있었다는 ‘성흔’(聖痕)이 바울에게도 있었다는 주장, 셋째는 이교도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헌신을 맹세할 때 몸에 만드는 제의적인 흔적이 바울에게도 있었다는 주장, 넷째, 점진적인 성화를 통해서 점차 명확하게 마음에 새겨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들 가운데 첫 번째인 빈번한 박해와 고문으로 인해서 몸에 생긴 흉터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자주 강조하였다. 신학자 케제만은 바울이 즐겨 쓴 ‘그리스도의 노예’란 표현을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운명적 사랑”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당시 노예들의 몸에는 이마에 새긴 화인(火印:“F”=Fugitivus)을 비롯해서 채찍에 맞아 생긴 흉터들을 갖고 있었다. 바울의 몸에도 그가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살았던 고난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9장 15-27절은 바울이 어떤 경우에도 주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노예처럼 온몸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자기인식’ 또는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요, 예수님의 몸에 생긴 채찍자국, 못 박힌 자국, 창에 찔린 자국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인 것처럼, 바울의 몸에 생긴 흉터들 또한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 몸의 흔적이다.
본질이 아닌 중립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린도교회의 얼룩의 근본은 파당과 분열(1장)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음행(5장), 소송(6장), 결혼과 이혼, 독신과 재혼(7장), 우상의 제물(8장)의 문제들도 파당과 분열에 연결되고, 그것들은 또 유대인과
헬라인, 율법주의와 영지주의,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과 같은 민족, 문화, 관습, 종교에 연결된다. 유대인들의 다수는 모든 것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눠 부정한 것을 엄금(嚴禁)하였고, 헬라인들의 일부는 모든 것이 가하다며 남용(濫用)하였다. 고린도교인들의 문제들은 그들의
이전 뿌리 즉 민족, 문화, 관습, 종교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음행과 우상숭배는 본질의 문제로써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던 반면, 소송,
결혼, 이혼, 독신, 재혼,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비본질의 문제로써 사랑이 제한해야할 사안들이었다. 바울은 비본질의
문제들(adiaphora)을 사랑의 법으로 해결할 것을 권고하였고, 고린도전서 9장 15-27절은 사랑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제한시켰고
훈련시켰는가를 설명한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난 3세기에 걸쳐 본질에서 일치하고, 비본질에서 견해차를 허용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자고 외쳐왔는데, 이 원칙이 분열을 막지는 못하였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본질이 아닌지를 놓고 의견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성서가 말하는 것은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것은 침묵하자고 2백년 넘게 외쳐왔는데, 이 원칙도 역시 분열을 막지는 못하였다. 성서가 침묵한 것을 허용으로 볼 것인지 혹은 금지로 볼 것인지를 놓고 의견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상반된 관점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법에 따라 비방의 손가락질을 멈추고 형제애의 손 내밀기가 있었던 때에는 견해차이가 분명한 곳에서도 연합이 유지되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할지 먹지 말아야할지의 판단은 사랑의 법이 한다고 보았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지 말아야할지의 판단도 사랑의 법이 한다고 보았다.
바울은 형제를 위해서라면, 고기도 먹지 않았고, 자유와 권리도 쓰지 않았으며,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자유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다.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아래 있는 자가 되었고,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가 되었으며,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와 같이
되었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 또 바울은 스포츠 경기에 출전한 사람들이 월계관을 쓰기 위해서 목표를 정해놓고 자기를 절제하고
훈련하는 것처럼,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도 목표를 세워놓고 정진해야한다고 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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