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23: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2(고전 11: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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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3: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2(고전 11:17-34)
유대교축제와 주의 만찬
유대인들의 회당기도회는 주전 586년 바벨론 유배 때 제사예배가 끊긴 이후에 생겼다. 예루살렘성전만이 합법적이라 믿었기 때문에 유배지에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다.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대신에 성경읽기, 설교, 기도문 낭송이 포함된 기도회를 발전시켰다. 회당은 주전 516년 예루살렘성전재건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교육, 판결, 기도회 장소로 발전되어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오늘날의 유대교는 성전예배가 완전히 사라진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이후 랍비들이 토라의 613개 계명들을 보강하는 수많은 울타리 법들을 제정함으로써 형성되었다. 유대교인들이 하루 세 번 모이는 기도회 때 빠뜨리지 않고 바치는 ‘쉐모네 에스레이’라 불리는 18(19)개 기도문이 있는데, 이 기도문이 하루 세 번 바치던 성전제사를 대치한 것이다.
한편 주후 30-70년 사이의 그리스도인들은, 초기에는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으므로, 회당기도회의 대부분, 즉 성경읽기, 설교, 기도문 낭송, 헌금 등을 기독교예배에 전용하였으나 쉐모네 에스레이를 주기도문으로 바꿨고, 성전제사를 주의 만찬으로 대신하였다. 따라서 말씀과 기도로 구성된 회당기도회가 기독교예배에서는 1부 말씀예배와 2부 주의 만찬예배로 바꿨다.
주의 만찬은 18단계로 진행되는 유월절
식사와 무관하지 않다. 유월절 식사는 노예와 떠돌이였던 히브리민족에게 해방과 가나안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때의 영광을 회상하며,
고토를 잃고 노예와 떠돌이가 된 민족의 해방과 가나안땅회복을 기원하는 식사이다. 이 식사를 위해 오늘의 유대인들은 상황의 긴박함을 상징하는 세
개의 무교병을, 성별하여 구원하고 구속하여 선민으로 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출 6:6-7)을 상징하여 물을 희석한 넉 잔의 포도주를,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여 양의 정강이뼈를, 눈물과 땀과 홍해를 상징하여 소금물을, 벽돌을 굽던 노예생활을 상징하는 달콤한 반죽(하로셋)을, 노예생활의
비애와 슬픔을 상징하는 쓴 나물과 채소를, 구운 계란과 손 씻을 물과 예식서를 준비한다.
유월절 식사는 포도주에 대한 성별의 기도와 성별의 잔을 마심으로 시작되며, 유월절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는 말씀선포와 첫 번 할렐(시 113-14편)을 노래한 후에 선포의 잔을, 손을 씻고 먹는 본 식사 후에 감사의 잔을, 큰 할렐(시 115-18편 및 136편 후렴구) 후에 마시는 마지막 잔을 끝으로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를 외치고 폐회한다. 유월절 식사 중에 여러 차례 기도문을 암송한다. 여기서 주의 만찬의 모형은, 성별 또는 감사기도, 무교병 쪼갬, 말씀선포, 양의 희생, 감사의 잔, 할렐(찬양)뿐이다. 주의 만찬에서 무교병은 그리스도의 몸을,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이교축제와 주의 만찬
바울시대에 고린도에는 아폴론, 옥타비아(초대
로마황제의 누이), 제우스, 헤라, 튀케(운명의 여신), 포세이돈, 헤르메스 신전들이 있었고, 심지어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까지 있었다.
이밖에도 아크로고린도 기슭에 이시스와 세라피스, 파테스(Fates), 데메테르 등의 사당들이 있었고,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 이
많은 신전들에서 펼쳐지는 축제와 만찬에 참여하는 일은 고린도인들의 삶의
일부분이었다.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은 이 같은 이교문화와 축제에 젖어있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흐려놓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울이 기도나 예언을 하는 여성들에게 너울을 쓰라고 지시한 것도 이교축제와 관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스다롯,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축제 때 만찬에 참여한 자들이 먹고 취하여 너울을 쓰지 아니한 여성사제들과 더불어 광적이고 음란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자칫 주의 만찬이 이교축제에 젖어 살던 교인들에 의해서 변질될 위험이 있었다. 바울이 기도나 예언을 하는 여성들에게 너울로 머리를 덮어 몸가짐을 단정히 할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 질서를 갖춰하라고 권면한 것은 주의 만찬을 이교축제와 엄격하게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미 10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축제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면서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교축제에 참여하여 먹고 마신 자들이 멸망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례들을 상기시키면서 주의 만찬에 참여한 그리스도인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우상의 만찬에 참여하여 쾌락에 빠지는 행위가 과연 옳은지를 스스로 판단하라고 촉구하였다. 바울은 주의 만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듯이, 신의가 깃든 제물을 먹는 행위는 그 제단에 참여하는 행위이므로 그리스도의 식탁에 참여한 자가 우상들의 식탁에도 참여하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같은 위험한 행동들 때문에 바울은 17-19절에서 고린도교회가 위험에 처해지고 있다며 바른 길에 서있는 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견책하여 교회를 바로 잡아 줄 것을 기대하였다.
기독교축제로써의 주의 만찬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시행되는 주의 만찬이지만, 유교대축제와 이교축제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을 비롯해서 여러 인종들로 구성된 고린도교인들은 대다수가 주의 만찬을, 주후 168년에 순교한 저스틴이 150년경에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에게 쓴 <변증서>에 쓴 것처럼, “보통의 흠 없는 식사”로 여겼을 것이다. 이를 애찬이라고 불렀는데, 성도들이 저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주일 저녁에 집회소로 가져와 함께 나눠 먹고 마시며 친교를 나눴다. 이때는 일요일이 공휴일도 아니고, 성도들 중에는 낮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노예들도 있었으므로 1부 말씀예배는 주일 새벽에 이뤄졌다. 새벽예배 후 흩어졌다가 2부 주의 만찬예배를 위해서 저녁에 다시 모였다.
고린도교회의 문제점은 주일 저녁 주의 만찬예배 때 성도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고, 늦게
오는 사람들이나 가난하여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던 데에 있다. 21절에 언급된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고 취한
사람들은 넉넉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넉넉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22절의 말씀처럼,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었다. 음식준비는 고사하고, 온 종일 노동에 시달리며 먹지도 못하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교회로 달려온 가난한 신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남겨진 음식이 없는 것과 풍족한 음식을 싸들고 이른 시간에 교회로 달려와 먹고 취해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 그 비애감과 실망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23-34절은 주의 만찬의 제정사이다. 이 제정사는 최초의 것이자 가장 원시적인 행태로써 안디옥교회전통이 반영된 것이다.
애찬을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주의 만찬으로 발전시키는데 토대가 된 말씀이다. 바울은 이 제정사가 “주께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토대로 2부 주의 만찬예배의 틀이 만들어졌다: (1)인사와 평화의 입맞춤(16:20-24), (2)봉헌(“떡을 가지사”), (3)성만찬
설교(“가라사대”), (4)성만찬 기도(“축사하시고”, 10:16), (5)주의 기도(마 6:9-13), (6)성만찬에의 초대(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라나타.”), (7)분병례와 참여(“떼어 주시며”), (8)축도(16:23-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아멘.)
애찬이 주의 만찬으로 발전되면서 무교병과 물을 희석한 포도주를 썼다. 포도주에 물을 희석해서 마시는 습관은 지중해연안세계의 관습이었다. 순교자 저스틴도 주의 만찬 때 포도주에 물을 희석한다는 점을 밝혔고, 이 관행은 물과 피를 흘리신 주님에게도 적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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