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24: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3(고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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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4: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3(고전 12:1-3)
바울의 손 내밀기
바울은 주후 50년대 초반에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여 성별된 공동체로 세우려고 1년 반 동안 밤낮없이
섬겼다. 50년대 중반에 에베소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던 중에 고린도교회에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이에 바울은 지체
없이 서신을 보내 제기된 문제들이 해결되도록 하였다.
고린도전서는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책들에 포함된다. 이때는 아직 기독교 신학과 윤리가 정립되어있지 않았다. 고린도전서에서 다뤄진 문제들은 시기와 분쟁, 지혜와 능력, 신비 혹은 비밀, 영적 성숙과 미성숙, 우상숭배와 음행, 송사, 자유와 절제, 독신과 금욕, 결혼과 이혼 또는 재혼, 우상의 제물, 이교축제와 주의 만찬, 타고난 은사와 신령한 은사, 사랑, 부활과 승천이며, 그리스-로마사회의 종교문화와 관습, 신화와 철학에 얽힌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고린도전서는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만든 일, 곧 유대교를 비롯한 타종교들과 차별화하는데 공헌하였다. 영국 사학자들인 깁본(Edward Gibbon)과 도즈(Eric R. Dodds)는 초기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에 높은 수준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과 평등주의가 있다고 하였다.
당대의 그리스-로마사회의 문화와
관습은 신화에 기초한 종교와 철학에 깊은 관계가 있었다. 사람들은 3만이 넘는 신들을 받아들었고, 신전이나 사당에 모셔져 예배를 받았던 신들도
수없이 많았다. 또 각 신전과 사당들에서는 매년 수차례씩 축제가 열렸다. 이들 축제들은 대개가 우상숭배와 음복과 음행이 수반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혹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또 플라톤의 이데아론(동굴의 비유), 스토아철학의 숙명론과 금욕주의, 에피큐로스철학의 쾌락주의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가 교회에 침투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에 도전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하였다.
유대교의 신비주의
구약시대에도 능력 행함과 여러 은사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주어졌다. 모세, 엘리야, 엘리사, 삼손과 같은 사사들은 히브리민족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을 행한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모세시대의 70인 장로와 유사들(민 11장), 사무엘의 선지생도들, 사울 왕, 심지어 바알선지자 발람조차도 예언과 방언을 하였다(민 22-24장, 삼상 19:18-24). 오순절 성령강림직전시대인 예수님 때에도 신유, 예언, 방언, 귀신축출과 같은 신령한 은사가 있었고, 제자들도 이 같은 체험들을 하였다. 다만 이 같은 은사들은 대부분 주의 종들에게 능력을 덧입히기 위해서 외적으로 증거적으로 공적으로 제한적으로 일시적으로 주어졌다.
예수님 당시 엣세네파라 불린 유대교 종파가 있었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주전 1세기경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 사해 근처 쿰란 폐허(Khirbet
Qumran)에서 4천 명가량이 모여 살았다. 그들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47년부터 쿰란 계곡의 11개 동굴에서 ‘사해 두루마리’로 명명된
구약성서와 쿰란 공동체의 문서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주후 66-73년 사이에 있었던 유대-로마전쟁 때 거주지가 폐허로 변하기 직전에
엣세네인들이 후일을 기약하며 사용하던 문서들을 항아리들에 넣어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계곡 동굴들에 숨겨놓았지만, 그로부터 1878년간 고토는
회복되지 않았고, 숨겨진 책들도 그 긴 세월동안 바싹 마른 상태로 동굴 속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엣세네파는 결혼을 피하고 금욕을 실천한 공산주의식 공동체였다. 엣세네파는 토라연구와 필사에 힘을 쏟았으나 예루살렘 성전제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3년의 수습기간을 통과하고 비밀유지에 서약한 사람만이 회원으로 받아드려졌다. 천사를 숭배하는 비밀의식이 있었고, 별점도 쳤다. 엣세네파의 신비주의는 바리새인들의 귀신축출의식(마 12:27)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 랍비문헌에 엣세네파가 간헐적으로 언급된 것을 보아 중세기에 발전된 카발라(Kabbalah)라 불리는 유대교 신비주의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엣세네파와 같은 유대교의 신비주의가 기독교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교의 신비주의
고린도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델포이와 에피다우로스는 뱀과 연관된 신비주의, 곧 예언과 병 고침이 성행한 이교의 본산지들이었다. 에피다우로스에는 아폴론이 인간 코로니스에게서 낳은 아들이자, 아버지 아폴론으로부터 의술을 물려받은 아스클레피오스와 그의 딸 히기에이아(Hygieia, 위생)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에 하루만 머물러도 온갖 병이 다 낫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원근각지에서 병자들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몰려든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각종 편의시설들, 즉 신전들, 사당들, 여관들, 운동경기장, 대중탕, 극장 등이 있었다. 극장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또 델포이(Delphi)에서는 여사제 퓌티아가 손에 성수가 담긴 접시와 올리브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세
다리 의자(Tripous)에 앉아 아디톤(adyton) 성소 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올라오는 에틸렌 가스에 취해(퓌톤 영에 접신하여) 신탁을
전하였다. 신화에 따르면, 퓌티아는 왕뱀 퓌톤의 부인이었으나 아폴론이 퓌톤을 활을 쏴 죽이고 퓌티아를 제니로 만들어 자신이 맡겨놓은 뜻(신탁,
Oracle) 곧 인간들의 운명을 방언을 통해서 예언토록 하였다. 접신한 퓌티아가 무아지경에서 지껄이는 방언을 옆에선 시인이나 제사장이 통역하여
신탁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전하였다.
플라톤은 저서 <파이드로스>(Phaidros)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신들림을 ‘신성한 광기’라고 부르면서 예언적 광기가 아폴론에게서 온다고 하였다. 그밖에도 비의(秘儀)적 광기는 디오니소스, 시적 광기는 뮤즈, 사랑의 광기는 에로스에게서 온다고 하였다. 여기서 광기는 신의 영감 혹은 신의 선물 곧 은사를 뜻한다. 델포이는 이 예언적 광기가 충만한 대표적 신탁소여서 퓌티아의 예언에 따라 국가의 중대사가 결정되곤 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광기를 바로 잡고자 하였다. 바울은 1절에서 진짜로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2절에서는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는 델포이 신전의 퓌티아(Pythia)의 광기나 바쿠스(디오니소스) 여사제(Maenad)들의 광기는 “말 못하는 우상들”에 의한 거짓 것들임을 암시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광기가 접신을 시도하는 박수나 무녀들뿐 아니라, 은사를 추구하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있어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광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우상으로부터 왔는지를 분별하는 잣대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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