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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7: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6(고전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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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61 2015.05.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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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7: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6(고전 14:1)

이교들의 예언

만일 예언이 점과 동일하고, 예언과 점이 가능해지려면, 먼저 예정된 운명이 있어야 된다. 만일 예정된 운명이 없다면, 예언과 점은 예견이나 선견에 불과하게 된다.

운명론을 주장한 스토아철학이 주전 2세기부터 주후 2세기경까지 그리스-로마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은 예언을 받거나 점을 쳐서 운명을 알고자 했고,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노력해서 바뀔 운명이면, 혹은 예언자나 점쟁이가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 비법을 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운명이 아닌 게 된다. 정말로 예정된 운명이라면, 그것을 알아내고, 피하려는 행동조차 운명에 포함되었을 것이고, 반드시 예정대로 성취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나 점쟁이의 신통력이란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예언과 신탁은 교훈적일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아무 유익도 없는 육신에 속한 것에 불과하였다.

calchas_tiresias.jpg 고대 그리스에 유명한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맹인이었던 테이레시아스는 새소리를 듣고, 칼카스는 새가 나는 것을 보고 점을 쳤다고 한다. 칼카스는 트로이에 원정한 그리스군의 예언자로서 트로이전쟁이 10년간 지속된다는 것, 그리스군의 승리에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목마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인물이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신(아테나 혹은 헤라)으로부터 육신의 눈을 빼앗기고, 마음의 눈을 얻은 자로 알려졌다. 그로 인해서 “신들은 앞문을 닫을 때 반드시 뒷문을 여신다.”는 격언이 생겼다. 테이레시아스는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죽게 된다는 것, 오이디푸스에게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것, 암피트리온에게 알크메네의 연인이 제우스라는 것을 알려준 자였다.



dodona_oracle.jpg바울 당시 이름을 날린 신탁소들에 델포이, 도도나, 암몬(아몬) 등이 있었다. 델포이의 아폴론신탁소의 퓌티아는 에틸렌 가스에 취해 신탁을 전했고, 도도나(Dodona)의 제우스신탁소의 무당은 떡갈나무잎사귀 소리를 듣고 신탁을 전했다. 무당들의 예언은 애매모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델포이의 퓌티아는 알렉산더에게 푸념조로 “진짜 못 말리는 사람이군요.”라고 했고, 주전 6세기에 페르시아를 공격해도 좋겠는가라고 묻는 소아시아지역 리디아왕국의 크로이소스 왕에게 “페르시아로 진격한다면, 강력한 대국 하나를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했다. 이 애매모호한 신탁의 해석은 전적으로 신탁을 청하는 자들의 몫이었다. 퓌티아의 푸념을 신탁으로 받아드린 알렉산더는 진짜 못 말리는 사람이 되었고, 신탁을 페르시아에게 이긴다는 뜻으로 해석한 크로이소스는 전쟁에 패함으로써 자신의 왕국을 멸망시켰다.

구약성서의 역사관

구약성서의 역사가들과 예언자들의 활동내용은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이었다. 이 두 운동의 근거는 하나님과 히브리민족사이의 언약이었고, 그 내용이 토라(모세오경)이고, 토라의 핵심이 십계명이다. 토라는 총 613개로써 248개의 ‘~하라“는 계명과 365개의 ’~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 지켜야할 4개의 계명과 이웃에게 지켜야할 6개의 계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라이외의 나머지 구약성서들은 역사서, 예언서, 성문서로 나뉘는데, 성문서는 예배와 전도문서이고, 역사서와 예언서는 두 가지 다 민족의 흥망성쇠를 토라에 근거하여 성찰한 영감의 글들이다.

역사서들은 두 가지 역사관으로 대별된다. 여호수아서, 사사기서,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신명기 역사관을,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는 역대기 역사관을 갖고 있다. 신명기 역사서들은 사사시대로부터 바벨론에 유배될 때까지의 기록이다. 이들 역사서들은 히브리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면 이웃 민족들로부터 고통과 재앙을 당하게 되고, 깨닫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되는 과정의 연속을 기록하고 있다. 언약을 잘 지킬 때 이스라엘은 흥성(興盛)했고,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면, 쇠망(衰亡)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언제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따라서 신명기 역사서들의 핵심과 재앙이 주는 역사적 의미가 회개와 구원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반면에 역대기 역사서들은 주전 538년 고국에 돌아오기 시작한 때로부터 432년까지의 유대왕국의 복구에 관한 기록이다. 여기서 복구란 예루살렘성전 재건축과 예루살렘 성벽축수는 물론이고 신앙개혁과 유대민족의 정체성까지 다 포함한다. 유대인들이 주전 605년, 597년, 586년에 각각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그 후손들이 최초 유배 후 67년, 148년, 173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을 때의 상황, 즉 페르시아 제국의 한 도로 편입되어 있던 유다도의 상황은 야훼신앙과 혈통이 혼합되어있었다. 따라서 역대기 역사가들은 민족의 살길이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민족의 순수성에 있다고 믿었다. 안식일을 준수하고, 십일조와 성전세를 바치며,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하고, 이방신들을 멀리하며, 절기들을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옛 다윗왕국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잘못을 회개하고 고치는 것, 민족의 순수성과 야훼신앙을 토라대로 회복하는 것만이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유배되는 재앙을 피하는 길이며, 모세와 같은 그리스도가 와서 옛 다윗왕국의 영광을 회복시키는 길임을 선포하였다.

성서에서의 예언

성서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리스의 예언자들과 신탁소의 무당들처럼 앞날에 대해 점을 치지 않았다. 그들의 예언활동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에서 떠나 재앙을 당하는 백성에게 회개운동을 펼친 것이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회복운동을 펼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예언은 이 회복운동에 포함된 것이었다.

성서의 관심은 온통 가나안땅에 집중되어 있다. 구약은 지상의 가나안땅, 신약은 천상의 가나안땅에 관한 말씀이다. 예언의 내용은 이 땅을 주시겠다는 것과 약속받았거나 확보한 땅을 빼앗겼을 때 회복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회복의 조건은 회개이고, 궁극적인 회복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완성된다는 내용이다. 땅은 희망(Ha-Tikvah)이었고, 다가올 세상(Olam Ha-Ba)이었다.

isaiah_jeremiah.jpg 구약시대의 예언자들 가운데 이사야(yesayahu, 야훼는 구원이시다)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한 주전 722년을 전후로 절반씩 40년간 활동하였다. 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마헬살랄하스바스’와 '스알야숩'이 그들이다.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신속함’이란 뜻으로 회개운동에 관련된 이름이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타민족의 침략을 받게 하여 유배를 보내시겠다는 뜻이다. '스알야숩'는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란 뜻으로 회복운동에 관련된 이름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 받게 하신 후에 유배생활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텐데, 그 기회가 회개한 자들(남은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란 뜻이다.

예레미야(Yirmeyahu: 야훼께서 해방하신다 혹은 높이신다)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한 주전 586년 무렵까지 활동하였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불행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사 24:5) 때문이라고 했듯이,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의 불행이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렘 22:9)라고 했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기”(렘 11:10)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시내산 계약과 같지 아니한 새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을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31:31-33).

세례 요한, 예수님, 사도들도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을 펼쳤다. 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3:2)였다. 교회시대의 문을 개방한 베드로의 첫 설교도 “회개하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행 2:38)였다. 바울은 십자가에 관한 말씀, 구원과 재림에 관한 말씀을 예언으로 보았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가 신령한 자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자라고 하였다. 이 같은 내용은 다니엘서와 계시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말씀 선포)을 하려고 하라”고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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