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28: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7(고전 14:2-40)
본문
손 내밀기28: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7(고전 14:2-40)
신령함의 척도
바울에게 있어서 신령함의 척도는 세움(살림)이다. 생명과 질서가 신령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신령한 은사는 아가페 사랑이다. 바울이, 만일 사랑이 없다면, 방언과 천사의 말도, 최고조에 이른 예언의 능력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구제와 봉사도, 요란한 타악기소리에 불과한, 아무 것도 아닌, 아무 유익도 없는 육신에 속한 것에 불과하다고 선포한 것은, 세움(살림)이 없는 것의 무익함을 지적한 것이다. 예언이 방언보다 신령한 이유는 예언이 앞일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세움과 권면과 위로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계시)과 말씀을 쉽고 바르게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이므로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친다. 여기서 유익이란 성도들의 신앙수준이 향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1절에서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권면하였다.

반면에 방언은 개인의 영혼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알아듣지를 못해 세움과 권면과 위로가 되지 못한다. 바울이 4절에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했지만, 14절에서는 방언기도는 마음(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자의 영혼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움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적 예배 때는 방언보다는 예언을 하도록 권하였고, 19절에서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당대의 신탁소들에서 무당들의 방언을 사제나 시인이 곁에 서서 듣고 통역해서 신의 뜻을 전달해주듯이 통역을 세우지 않고 하는 방언은 곡조가 없는 피리(aulos)나 거문고(kithara) 소리와 같고, 신호가 명확치 않은 나팔(salpinx) 소리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사적인 경우에는 15절에서 마음(생각)으로 하는 기도뿐 아니라, 영혼이 하는 기도를 허용하였고, 또 마음(생각)으로 하는 찬송뿐 아니라, 영혼이 하는 찬송을 허용하였다.
오순절 방언운동의 뿌리
바울은 22절에서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으로,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으로 보았다. 여기서도 바울은 예언이 점이 아닌 하나님의 뜻(계시)과 말씀을 풀어 설명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고, 반면에 방언은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큰 능력 행하심에는 반드시 목격자들로부터 놀람과 표적이 뒤따른다. 놀람은 능력이 나타난 결과이고, 표적은 목적이다. 예를 들어, 모세나 선지자들 또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은 모두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일군들로서 하나님의 뜻(계시)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선포한 예언(말씀)은 듣는 자들한테서 회개와 회복(희망)이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모인 공적 예배에서는 방언을 피하고 예언하기를 힘써야한다고 권면하였던 것이다.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방언은 잊힌 은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기독교의 주류신학에서는 신령한 은사들이 기독교 창립과 신약성서 27권의 완성으로 그
사명이 끝났다고 해석하였다. 한편 비주류신학으로써 가끔씩 오순절 성령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혜성처럼 나타났으나 대부분 이단으로 정죄되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곤 하였다.
오늘날의 오순절 방언(성령)운동은 1905년에 침례교회에서 나온 소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로스앤젤레스 브레아 거리(Bonnie Brea Street)에 ‘사도 믿음 선교 교회’(Apostolic Faith Mission)를 세운데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06년 4월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에 건물을 임대하여 ‘아주사 거리 선교 교회’(Azusa Street Mission)로 새 출발하였고, 이후 1931까지 전 세계 방언운동의 요람이 되었다. 초기에 이 운동을 이끈 인물은 흑인 목사 윌리엄 시모어(William Seymour)였다.
2006년 4월에는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와 메모리얼 콜로세움 등지에서 아주사 거리 선교 교회 100주년 대회가
‘2006년에 다시 함께’란 주제로 25일부터 29일까지 미국오순절연합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조용기 목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군중이 이 집회에
참석하였다. 참고로 오순절교회 계통인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1953년 4월 8일 광주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공적 예배에서의 질서
바울은 26절에서 공적 예배에서 하는 모든 순서의 목적을 세움(살림)에 두라고 권하였다. 또 바울은 31절에서 예언과 방언은 그 목적을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려는 데”에 두되, 40절에서 순차에 따라서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권하였다. 고린도교회에는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는”(37절) 자들이 남녀무론하고 많았고, 성도들 앞에 나서고자 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바울은 34절에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복종하라고 명령하였다.
평소 남녀평등주의를 표방했던 바울로 볼 때, 이곳에서의
충고는 다소 충격적이다. 반면에 이 무렵 이교문화에 푹 젖어있던 헬라 여성들의 관행으로 볼 때, 바울의 충고는 시의적절한 면이 충분하였다.
디오니소스 예배의 큰 특징은 여성들이 주관한다는 점, 숭배자들이 광란상태에서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점, 술 취함과 집단혼음과 광기로 인해서
무질서하다는 점, 날고기를 먹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솔방울과 리본으로 장식한 지팡이를 흔들며 무리지어 행진하였고, 피리소리에 맞춰 소고 치고
고함치며 춤(헤드뱅잉)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이 상태에서 그들은 숲속이나 들판으로 나갔고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여 동물을 산 채로
찢었으며 그 고기를 뜯어먹고 피를 마셨다.
플라톤은 이런 육체적 광기가 이데아세계로까지 승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바울이 이를 기독교에서 성취시켰던 것이다. 디오니소스 제전이 제공한 마음의 치유와 해방은 본능적 원시적 성적 에너지의 발산과 쾌락에서 온 것으로써 오늘날의 클럽문화에 비교 될 수 있다. 바울은 기독교를 이런 이교문화와는 확실하게 다른 거룩한 공동체로 만들고자 했다.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은 델포이와 도도나의 신탁소무당들이 무아지경에서 내뱉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에 익숙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보다는
방언을 더 신령한 것으로 여겼고, 공적 예배 때 자신의 신령함을 앞 다퉈 과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성도들이 서로 먼저 설교하겠다고
다툰 것과 같다. 이 무렵 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설교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가장 신령한 것이 사랑이고, 세움(살림)은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예언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실제로 성서시대의 예언자들은 방언으로 예언하지 않고, 항상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다.
- 이전글 손 내밀기29: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8(고전 15:1-11) 15.05.31
- 다음글 손 내밀기27: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6(고전 14:1) 15.05.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