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29: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8(고전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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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9: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8(고전 15:1-11)
“전하여 준 대로”(kathos paredoka)
사도는 예수님 밑에서 직접 배우고 또 배운 것을 전파하기 위해 파송된 자를 말한다. 바울의 경우, 육신의 예수님에게 배운 것은 아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배웠고 또 배운 것을 전파하기 위해 이방인들에게 파송된 자이므로 사도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9장 1-2절에서 “내가...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 하였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예수님께 배운 것을 전파하기 위해 파송된 사도직의 결과물이다.
바울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가장 신령한 것을 사랑이라고 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령한 사랑이 가장 뛰어나게 표현된 것이며, 이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설교)하는 것이 예언이며, 인간을 회개케(권면)하여 회복(희망, 위로)시키고 세우는(살리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복음의 루트는 예수님 한분뿐이란 것이 바울의 지론이다. 그러므로 전하여 준 대로, 배운 대로 믿고 그 가운데 굳게 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1-3절).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다”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내가 전한 복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어떤
가르침과 실천이 정통(옳음)인지를 알 수 있다.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지어질 당시 수집된 책들의 정경여부를 결정지은 잣대는 사도들의
전통(가르침과 실천)이었다.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엡
2:20)고 했다. 여기서 “너희”는 교회를 지칭한 것이고, “모퉁잇돌”이란 건물 네 모퉁이에 놓는 주춧돌과 같은 것으로써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이뤄진 사실들이 교회의 근간이란 뜻이다. 그리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란 예수님께 배운 자들이 전하고 실천한 내용들이 교회의 기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순종하라고 권하였고(롬 6:17),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고 칭찬(고전 11:2)하였으며,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고 충고하였으며,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심지어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고 하였다.
“성경대로”(kata tas graphas)
바울의 말씀은 분명하다. 예수님께 받은 것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 사도전통이고 정통(옳음)이며, 그것들을 굳게 지키고 믿어야(2절), 또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굳게 서야(딤후 3:14-17)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사도들이 직접 목격한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성도들의 부활을 위한 첫 열매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각각 한 번씩 “성경대로”(kata tas
graphas)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구약성서에 예언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족해방과 고토회복을 희망하며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수백 년째 기다렸던 유대인들로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는 해석은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 일이었다. 그처럼 구약성서를 이해한 사람이 나사렛파라는 새로운 종파가 생기기전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은 유대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예언의 이런
식의 해석은 예수십자가사건, 예수부활사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서를 자세히 읽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이 생전에 여러 차례 예고하셨던 것이었음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서를 유대교 랍비들과 다르게 해석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예수라는 이름의 젊은 예언자가 천국운동을 펼치다가 위정자들에게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적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체포된 당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되었으며, 그분을 따랐던 사람들이 당대 최고였던 로마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던 동굴무덤에서 시신은 사라지고 수의만 남겨진 빈 무덤을 목격하였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그분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당사자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과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기타 오백여 추종자들의 대다수가 아직 살아있다고 하였다. 바울이 고린도 서신을 쓴 때가 주후 57년경이었으니까 목격자들이 예수님과 비슷한 연령대였다면, 대부분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의 요지는 예수부활의 증언이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격담에 기초한 것이고, 누구에게 들었다가 아니라, 직접 만나보았다는 증언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부활의 정황증거들
예수부활은 기독교의 시작점이고 핵심이며 죽음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따라서 예수부활은 기독교변증의 최대 쟁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부활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다. 예수부활은 창조나 진화와 마찬가지로 반복된 실험으로 과학적 사실로 입증될 수 없다. 과학적 사실은 어떤 일정한 법칙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부활과 같은 기적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같은 결과가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실험을 통한 입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성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히 11:3)고 고백하였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롬 10:9)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부활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유물과 문헌에 의한 고증학 방식으로 입증된다. 바울이 언급한 신빙성 있는 목격자들의 직접증거와 주일예배, 성만찬, 침례와 같은
정황증거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부활의 진실성 가부는 믿음의 문제이지 입증의 문제는 아니다.
교인들의 다수가 유대인들이었던 초기교회가 엄격하게 지키던 안식일을 버리고 주일을 지킨 것은 예수부활의 확실한 정황증거이다. 그들이 일가친척과 공동체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고 버림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렇게 한데는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불렀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려고 주일날 모였다.
침례와 성만찬도 예수부활의 강력한 정황증거들이다. 침례와 성만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에 동참하는 예식이다. 이들 예식이 초대교회 창립 때부터 시작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기독교만의 독특한 예식으로 발전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무지한 겁쟁이이자 배신자였던 제자들, 박해자였던 바울이 변화되어 순교를 무릅쓴 데에는 부활과 성령강림 같은 어떤 강한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목숨 걸고 전했던 복음이 그리스 로마세계의 철학과 종교들뿐 아니라, 삶 전체를 뒤엎어놓았다는 점이다. 그리스 로마세계에 ‘부활’이란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부활개념은 기껏해야 포도열매의 신인 디오니소스, 계절의 신인 페르세포네, 음부의 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헤라클레스의 이야기 정도이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산다는 믿음은,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부활을 전하는 바울을 비웃었듯이, 기독교 밖에서는 보기 힘든 사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와 로마는 기독교의 양대 산맥인 동방교회인 정교와 서방교회인 가톨릭의 산실이자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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