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30: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9(고전 15: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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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30: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9(고전 15:12-34)
“죽은 자의 부활” 개념
죽은 자들이 다시
산다는 믿음은,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부활을 전파하는 바울을 비웃었듯이 또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는 12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기독교 밖에서는 보기 힘든 사상이었다. 그리스신화에 부활과 승천의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기껏해야 디오니소스와 관련해서 포도가 짓이겨져 죽지만 이듬해에 다시 열린다든지, 페르세포네와 관련해서 식물이 겨울에 죽지만 봄에 되살아난다든지
하는 자연현상을 신화로 풀어썼을 뿐이다. 또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 같은 영웅들이 영혼들의 지하세계(음부)에 다녀왔다고 하지만, 둘 다 목숨이
붙어 있는 육신으로 다녀온 것이어서 그것을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 헤라클레스의 육신은 장작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다만
그의 영혼은 다른 혼령들과 마찬가지로 음부로 내려가지 않고, 올림포스 신들의 대전에 올라 헤라로부터 영광을 입고 그녀의 딸 헤베와 결혼하였으나
이 또한 육체부활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 동생 세트 신에 의해 죽은
오시리스의 사체를 누이이자 아내였던 이시스가 수습하였고, 홀몸으로 오시리스의 아이인 호루스를 잉태하였다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을 찾아볼 수 없다. 윤회설도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은 아니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신들이 인간의 몸으로 자주 변신하기도 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갖기도 하는, 말 그대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신들의 이야기로 풀어쓴 교훈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구약성서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개념은 없다. 에녹, 모세, 엘리야의 사례들에서처럼 승천개념은 있지만, 예수님의 사례에서처럼 부활개념은 없다. 에녹과 엘리야는 산채로, 모세는 사후에 시신으로 승천한 것이어서 그들은 모두 예수님처럼 “죽은 자의 부활”과 상관없다. 또 바울 당시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에 없다는 이유로 부활도 영생도 믿지 않았다.
“죽은 자의 부활” 신뢰도
헬라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음부의 세계로 옮겨가기 위해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주고 밑바닥이 없는 소가죽 배를 타고 통곡소리가 참혹하게 들려오는 비통의 강, 깊은 시름의 강, 분노의 불길이 치솟는 불의 강, 이생의 기억들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망각의 강을 차례대로 건너면 너른 벌판에 이르게 되고, 벌판 오른쪽에 낙원(엘뤼시온, Elusion), 왼쪽에 지옥(타르타로스, Tartaros)이 있다고 믿었다. 이뿐 아니라, 영지주의 헬라인들은 육체를 악하거나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보았기 때문에 육체로 부활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육체를 벗어나 빛의 세계로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부활을 전하는 바울을 조롱했던 것이기 때문에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의 다수가 육체부활을 믿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영적세계에 대한 개념이 약했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통치할 미래의 지상세계인 ‘올람 하바’(Olam Ha-Ba)를 희망(Ha-Tikvah)했기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크게 반대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놀라운 것은 부활사상으로 무장한 기독교복음이 뿌리 깊은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종교사상뿐 아니라, 삶 전체를 뒤엎어놓았고, 지난 2천 년간 서양문화와 문명의 상징이 되게 한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과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르네상스시대이후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점차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18세기에는 이성과 과학을 중시하면서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부정하는
계몽주의와 자연신론이 대두되었고, 19세기에는 무신론과 진화론이, 20세기에는 비교종교비평과 양식비평 같은 치명적인 성서비평방법론들이 대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스 라이드(Ipsos Reid)가 캔웨스트 뉴스 서비스/글로벌 뉴스(CanWest News Service/Global
News)를 대신해서 2006년 4월 11-12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73퍼센트, 미국인의 78퍼센트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고 있었고, 또 미션널 리서치 센터(Center for Missional Research)가 2007년 3월 22-26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퍼센트 이상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끔찍한 일이 되고 말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가정하였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13, 16절).
둘째, 복음전도자들의 수고가 헛될 것이다(14절).
셋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헛될
것이다(14절).
넷째, 그리스도인들은 거짓증인이 되고 말 것이다(15절).
다섯째, 죄 사함과 구원도 받지 못할
것이다(17절).
여섯째, 이미 죽은 성도들의 수고도 헛될 것이다(18절).
일곱째, 기대하는 것이 이생뿐이면, 죽음을 무릅쓰고
탄압을 받아가며 복음을 전한 전도자들과 순교자들이야말로 정말 불쌍한 자일 것이다(19절).
이뿐 아니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전도자들이 전파한 복음이 모두 거짓이 되고, 교리 그 자체가 헛것이 된다. 따라서 헛것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게 되고, 맹수와 싸우듯이 목숨을 걸 필요가 없게 된다. 오히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30-32절). 모든 것이 가하다.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외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거짓에 “속지 말라”(33절)며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들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이가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가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각 자기의 차례대로 될 것이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이시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께 속한 자들이다. 그 다음은 마지막인데, 그때는 그분께서 모든 권력과 모든 권세와 권능을 없애 버리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때이다. 그분께서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두실 때까지 다스리실 것이니,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 성경에 말하기를, “그분께서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하였으니 모든 것을 발아래 복종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모든 것을 그분께 복종하게 하신 분은 그 가운데 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그분께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하신 분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유 안에서 만유의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다(20-28절).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자들의 삶에는 어둠이 빛으로, 혼돈이 질서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변화의 능력이 늘 충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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