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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9]로마시대 보통사람들의 형편(눅 12: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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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110 2013.02.19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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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9]로마시대 보통사람들의 형편(눅 12:22-48)

군인

이 글은 로버트 냅(Robert Knapp)이 쓴 <99%의 로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로마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Invisible Romans)>를 읽고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로마제국의 전체인구 6천여만 명 가운데 99퍼센트를 차지했으나 역사가들이 외면했던 평민남녀, 빈민, 노예, 해방노예, 군인, 매춘부, 검투사, 산적과 해적들의 이야기이다. 저자가 이용한 자료의 대부분은 그들이 쓴 편지, 비문, 낙서, 문학과 신약성서 등이고, 극히 일부는 지배계층이 쓴 역사와 희곡, 시 등이다.

신약성경 저자 중에는 누가가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관심은 인권이 말살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되고 있다.

정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직업이 귀했던 로마시대에 군인들의 삶은 보통사람들보다 안정적이고 윤택했다. 급여이외에도 충분한 양식과 생필품이 공급되었고, 법률상의 특권을 누렸다.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은 물론이고, 재판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군인은 중죄의 혐의가 충분한 경우나 중죄를 지었더라도 고문을 받거나 광산에서 중노동을 하거나 교수형을 당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으며, 맹수 우리에 던져지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군대는, 살아남는다면, 신분상승이 보장되는 유일한 제도였다. <로마군이 강했던 이유였다.>

반면에 군인은 두 가지 신(神)을 숭배해야 했다. 첫째는 황제이고, 둘째는 유피테르였다. 로마군대는 국가와 동일시되는 황제를 위한 군대였다. 따라서 로마에 충성한다는 말은 황제에 충성한다는 말이었다. 황제는 인간들 속에 있는 신이었다. 그렇더라도 군인은 각자가 원하는 종교를 추가로 더 갖기도 하였다. 군인의 가족은 군대였다. 그런 이유로 결혼할 수는 없었으나 비공식으로 아내와 자식을 갖는 것에는 관용을 베풀었다.

퇴역군인은 중요한 세금이 면제되었고, 각종 사회봉사의무도 면제되었다. 퇴역군인에게는 면책특권이란 것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정착하여 품위 있게 삶을 살 수 있는 자신감도 갖고 있었다.

사병들에게 가장 큰 권위를 지닌 인물은 백인대장이었다. 군대생활이 천국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는 백인대장의 손에 달려 있었다. 백인대장은 군사재판위원회의 위원자격이 있었고, 사병의 진급과 전출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런 백인대장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항상 뇌물을 바쳐야 했다. 그 때문에 백인대장들은 뇌물을 받아 챙기는 것을 특권으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백인대장은 제대 후 소도시에서 지배계층에 진입하거나 지역의 시의원 혹은 수석 치안판사가 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백인대장은 일반 사병의 15배에 달하는 봉급을 받았다. 백인대장은 대기실이 딸린 커다란 방을 숙소로 배정받았다. 백인대장은 막사에서 아내나 자녀와 함께 지낼 수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회당을 건축해주고 수하의 노예를 사랑했던 백부장의 신분과 재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7:1-10).

평민

삶의 모든 것이 지배와 복종게임으로 이해되는 계급사회 속에서 로마시대에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 질병, 전쟁, 폭력살인, 납치, 강간의 고통 속에서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살아야했다.

제국의 전체인구 6천여만 명 가운데 대략 25퍼센트를 차지했던 평민들조차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운명을 걱정해야 했다. 운명은 항상 나쁜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컸다. 미래에 대한 이 같은 불안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능력에 맞춰져 있었다.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은 착취하고,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굴종하는 식이었다.

죽음과 질병은 큰 걱정거리였다. 많은 아이들이 열 살 이전에 죽었고, 인구의 절반은 20세 무렵에 죽었다. 기대수명은 50세에 못 미쳤다. 가난과 빚도 큰 걱정거리였다(12:22,29, 7:41-42, 16:5-7). 가난 때문에 가정은 붕괴되고 가족은 노예로 팔리기 십상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랑은 사치에 불과했다. 노예가 주인에게 예속되듯이,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예속되었다. 이혼이 흔했지만 여성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불안한 사회와 경제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 잦았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보듯이 여행에는 산적과 해적들의 위험이 뒤따랐다(10:30). 가난할수록 낮은 계급일수록 법 앞에서 불리했다. 분쟁해결을 위한 비용도 문제지만, 판사에게 줄 뇌물이나 연줄이 없다면, 소송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옳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폭력은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주인은 노예를 때리고 강간했으며 학대했다. 가장은 부인과 어린 딸을 매춘부로 내몰기까지 했다. 플라우투스가 “여자보다 비참한 존재는 없다”고 했듯이, 여성에게 임신과 집안 일 말고는 법적 지위란 것이 없었다. 여자는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었다. 투표권도 없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지배를, 결혼 후에는 남편의 지배를 받았다. 폭력남편에게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참금을 되돌려 받고 이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비문을 통해서 볼 때, 여성들이 일을 가질 수 있는 비율은 1퍼센트에 불과했다. 가난은 젊은 여성들을 매춘부의 길로 내몰았다. 이 시대에 매춘은 합법이었고, 국가에 세금도 냈다. 그러나 매춘부의 대다수는 여자노예들이었고, 그 나머지는 입에 풀칠이 어려운 여성들이었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무작정 당하고 산 것만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은 강했다. 심히 불평등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조차 여성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남편의 강력한 동반자로서 인생의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로마시대에 법집행은 끔찍하고 잔인했다. 채찍질하거나 신체를 절단하고, 인두로 낙인을 찍기도 하고, 광산에 보내며, 효수시키거나 검투장에 투입시키거나 맹수들의 밥으로 던지거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지배계층은 물론이고 평민들조차 노예와 해방노예와 상인과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증오하였다. 폼페이에서는 “나는 가난한 자들을 증오한다.”는 낙서가 발견되었다. 이처럼 보통의 사람들은 무서운 가난과 착취와 폭력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좌절감이 너무 컸다. 일을 많이 할수록 보상이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빼앗길 것이 더 많아지는 현상에 상실감이 컸다. 그런 상황앞에서도 그들은 마냥 굴하지 않고, 운명의 가시밭을 헤쳐 나갔다.

빈민

로마제국의 전체인구 가운데 65퍼센트가 빈민이었다. 그들의 소망은 오로지 생존이었다. 출세나 성공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들의 형편은 “배를 채울 빵이나 입을 옷”이 없는 상태였다. 이 당시 가구당 일 년 최저생계비가 300데나리온이었다고 한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품삯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 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국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벼랑 끝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좌절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가진 자들에게 저항했고, 더 좋은 세상을 꿈꿨다. 기독교 복음이 그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심어준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시대에 노예의 숫자는 로마시민권 자들보다 조금 많은 전체인구 중에 15퍼센트를 차지하는 900여만 명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노예들이었다. 더러는 노예의 자식들, 강도나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상인에게 팔린 자들, 빚을 갚지 못해서 계약서를 쓰고 스스로 된 노예들도 있었다. 여기에는 빚을 탕감 받거나 굶주림을 면하려는 아버지들이 팔아넘긴 자식들도 있었다.

노예들은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었다. 복종이 강요된 주인의 재산이었다. 그들은 24시간 노동과 폭력과 성적학대에 시달렸다. 그들이 주인에게 받은 얼굴의 낙인과 등의 채찍자국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흔적이었다. 노예들에겐 그 어떤 도덕심도 수치심도 남겨지지 않았다. 남녀 주인들이 남녀노예들을 애어른 가리지 않고 성 노리개로 마음껏 농락했기 때문이었다. <미주의 흑인노예들도 마찬가지였다.>

해방노예들도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지배계층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였다. 그들은 주인을 대신해서 가사와 공무 및 회계업무를 책임졌다. 주인은 자기 재산을 굴리고 부를 창출하여 여유로운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수족인 해방노예의 능력에 의존해야 했다(12:36-48, 16:1-10, 17:7-10, 19:12-27). 이로 인해서 능력이 남다른 노예나 해방노예들은 막중한 일을 책임 떠맡거나 부를 쌓을 수 있었다. 해방노예는 옛 주인을 후원자로 모셨는데, 후원자(patron)란 아버지(pater)란 뜻에서 나왔다. 해방노예의 책무역시 아들의 책무에 준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해방노예는 신분상승을 이룬 후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노예공동체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노예와 자유인의 세계를 편하게 오간 역동적 존재였다.

로마시대에 여성들은 결혼하거나 누군가의 이윤을 위해 성적갈취를 당할 운명이었다. 수입이 짭짤한 매춘의 유혹은 노예주인은 물론이고, 가난한 자유인 여성과 가장에게도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남녀 매춘부(15:30) 대부분은 생사여탈권을 쥔 노예주인과 가장에 의해서 강요되었다. 그 당시 매춘은 세금을 내는 합법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매춘부들은 주인이나 포주들에게 수입의 대부분을 빼앗겼고, 더러는 악랄한 착취와 학대를 견디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지만, 더러는 돈을 모아 해방노예가 되거나 포주가 되기도 했다. 복음서가 기록된 때에 폼페이시민 1퍼센트는 매춘부였다고 한다.

이런 자료를 근거로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고, 기독교 복음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복음이 오늘에도 고통스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여전한 위로와 소망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확신한다. <메시아는 인간이 최악의 상태 즉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을 때 출현한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믿음과 인내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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