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강36]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갖춰야할 덕목6(눅 17: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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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36]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갖춰야할 덕목6(눅 17:20-37)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누가복음 17장 20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나라가 어느 때 임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의 답변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동문서답이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기독교의 입장을 대변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의 하나님나라는 천국이아니라 신정국가를 뜻한다. 회복된 다윗왕국을 말한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고 하루 세 번 바치던 희생제사와 성전예배가 회복된 왕국을 말한다. 유대교를 국교로, 토라계명을 헌법으로 한 신정국가의 재건을 말한다. 유대왕국이 사라진 것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였다. 이후 유대인들은 제2모세가 출현하여 빼앗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되찾고 유대왕국을 회복시킬 것으로 믿어왔다. 그 다가올 나라를 ‘올람하바’(Olam Ha-Ba)라 부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라가 지상 가나안땅이 아니고, 하늘 가나안땅인 ‘낙원’이라고 믿었다. 낙원은 영혼들의 나라이다. 낙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을 기다리는 곳이다. 참되고 영원하며 부활의 몸을 가지고 들어갈 다가올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이며, 그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출범될 것이라고 믿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크고 근본적인 차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지상에 출범되었다는 것이다. 그 나라가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회중을 말한다. 교회도 낙원처럼 영적인 나라이다. 죄 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부활의 몸을 아직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낙원인 하늘 가나안땅을 향해서 순례하는 공동체이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출범되어 성령님께 이끌리는 공동체이다. 그 모형이 모세시대의 광야교회이다. 히브리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사막에서 40년간 구름기둥에 이끌리어 가나안땅을 향해 순례하였다. 순례를 마친 후 그들은 지상 가나안땅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땅이 영원하고 참된 안식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고,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지상 가나안땅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약속이자 지복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613개의 계명과 그 계명들을 보호하기위한 수많은 울타리 법들을 만들어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지키려했던 땅을 지키지 못했고 수천 년간 떠돌이가 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령님의 이끌림도 없고, 이미 이뤄진 하나님나라의 개념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20-21절에서 보듯이, 하나님나라가 그들 가운데 또는 그들의 심령과 그리스도의 교회와 하늘 가나안땅인 낙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요, 성령님이 시작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혹은 ‘오래된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다리는 나라인 동시에 이미 오래된 나라이며 우리 가운데 있는 나라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누가가 예수님의 삶과 성도들의 삶의 특징으로 성령님의 충만, 성령님의 이끌림, 성령님의 능력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된 하나님의 나라
누가복음 17장 22-25절은 이 오래된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나라가 아직 시작되지 아니하였고, 25절에서 인자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셨다. 그리고 23절의 경고,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는 거짓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30여명의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했었다고 말한다. 그들 가운데 유다 마카비, 세례 요한, 예수님, 발 코크바, 사베타이 제비가 포함된다. 유다 마카비는 예수님보다 한 세기 앞선 사람이고, 세례 요한은 동시대 사람이다. 발 코크바는 예수님보다 한 세기 후의 사람이고, 샤베타이 제비는 17세기 사람이다.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us)는 헬라로부터 유대인을 해방시켜 하스몬가왕가를 세웠고, 주전 64년 로마에 멸망하기까지 100년간 주권을 지속시킨 영웅이자 혁명가로서 모쉬아크(메시아)에 준하는 인물이었다. 발 코크바(Bar Kochba, 별의 아들)로 불린 코시바의 아들 시몬(Simon ben Kosiba)도 뛰어난 혁명가였지만,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로마에 무너짐으로써 유대인들에게 1,800년이 넘게 시련과 실망(Kozeba)을 안긴 인물이었다. 샤베타이 제비(Shabbetai Zevi)는 1665년 유럽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1666년에 이슬람교로 전향한 전형적인 거짓 모쉬아크였다.
민중이 세례 요한을 보려고 광야에 나간 것은 그가 메시아인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헤롯 안티파스도 요한에게 관심을 보였고, 두려운 나머지 살해하였다. 이라크 남부와 이란 남서부에는 수천 명의 만다야교(Mandaeism)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지금도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믿고 있다.
예수님은 25절에서 하나님나라가 임하기전에 인자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교회설립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 교회는 보이는 지상의 하나님나라요,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오래된 하나님나라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보증하고 보장하는 것이 성령님이라고 하였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나라를 미리 맛보고 누리는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라고 불렀다.
이 교회가 세워진 것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날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이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세워진 날도 유월절 날 이집트를 탈출하여 죽음의 바다 홍해를 건넌 지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이었다. 이 옛 이스라엘 공동체는 시내산에서 탄생되었고, 새 이스라엘 공동체 교회는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탄생되었다.
2천 년 전 보통 유대인들의 집 다락(2층)은 식사, 잠자리, 손님접대에 사용되었다. 마가의 다락방은 제자들이 숙식하는 곳이었고, 집회 장소는 성전의 솔로몬 행각이었다(행 3:11, 5:12). 제자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고”(눅 24:53), 관행에 따라 하루 세 번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이)을 암송했는데(행 3:1, 10:9),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에는 성전의 뜰에서 했다(행 3:1).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시간은 오전 9시 기도시간이었고, 오순절 순례자들이 운집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성전의 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 회개와 결단
누가복음 17장 26-37절의 말씀은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오래된 하나님의 나라에 이어서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교훈한다. 이 교훈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우주종말을 준비하라는 경고일 수도 있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개인종말을 준비하라는 경고내지는 지금 당장 회개하라는 촉구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아 때의 홍수심판과 롯의 때의 유황불심판이 우주종말을 경고하는데 쓰이는 사례들이긴 하지만, 노아 때의 홍수심판과 롯의 때의 유황불심판이 곧 바로 우주종말로 이어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 사례들은 임박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경고, 그것이 우주종말이든 개인종말이든 간에, 신속한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는 데 매우 적절하다. 노아의 때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해서도 안 되고, 롯의 처처럼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우주의 끝이든 인생의 끝이든 그 끝은, 34-35절의 말씀처럼,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것”이고, 도둑이 예고 없이 들듯이 느닷없이 찾아온다(마 24:43). 그러므로 지금 당장 회개해야한다. 결단을 미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12장에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15절)고 이미 경고하셨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21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19절) 것으로써 자기 목숨을 지켜낼 수 없다고 경고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고 물으셨다. 또 예수님은 16장에서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교훈하셨다. 재물로는 “영주할 처소”(9절)를 살 수 없다고 교훈하셨다. 예수님은 이곳 17장에서 세 번째로 경고하셨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27절) 것과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28절) 것만으로 자기 목숨을 지켜낼 수 없다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음을 다음과 같은 말로 경고하셨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31-35절).
예수님 당시 로마사람 절반이 20세 무렵에 죽었다. 고려시대의 귀족과 왕들의 평균수명이 40세였다.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은 24세였고, 왕들도 47세에 불과했다. 인간의 수명은 점차 늘어나 2050년쯤에는 15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장수에 있지 않고, 죽음에 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현대과학의 업적에 너무 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위기는 순식간에 닥친다. 전쟁, 테러, 지진, 태풍, 홍수, 폭설, 기근과 같은 천재지변이나 대형사고가 언제 우리에게 덮칠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혼인집인가, 초상집인가?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다”(전 7:4)고 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는 자가 진정한 지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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