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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5]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7(눅 2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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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91 2013.03.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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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5]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7(눅 22:7-23)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장 7절에서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란 유월절 예비일을 지칭한 말이다. 주후 30년은 유월절 예비일이 목요일이었다. 유월절 식사는 18단계로 이뤄지는 긴 종교 식사이다. 예비일 오후 3시에 유월절 양을 잡는데, 이는 성전에서 저녁희생이 드려졌던 기도시간이다. 양의 도살(shechitah)은 랍비나 제사장처럼 경건하고 율법에 밝아 도살을 합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shochet)이 대행한다. 예수님은 금요일 밤(우리 시간으로 목요일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셨다.

2천 년 전 보통 유대인들의 집 다락은 식사, 잠자리, 손님접대에 사용되었던 2층(복층)을 말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를 먹기 위해 모인 곳이 마가의 집 2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는 마가와 친분이 있었지만 마가의 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19-20절은 주의 만찬 제정사이다. 이 제정사를 소개한 사람이 네 명인데, 마태와 마가의 것은 로마교회의 것으로 바울과 누가의 것은 안디옥교회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바울과 누가는 둘 다 안디옥 교회 출신이며 50-60년대를 함께 사역한 선교사들이다.

네 개의 제정사들 가운데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에 실린 바울의 것이 50년대 중반의 것으로써 현장성이 가장 뛰어나고 오래된 것이다. 그 다음이 누가의 것이고, 마태와 마가의 것은 현장성보다는 예배용으로 다듬어진 것들이다. 현장성이 높을수록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이 강조된다. 바울의 것에 2회, 누가의 것에 1회 있고, 마가와 마태의 것에는 언급이 없다. 마태와 마가에 반복령이 없는 이유는 70-80년대에 이미 주의 만찬이 모든 교회들에서 매주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현장성이 높은 바울과 누가의 것들은 “새 언약”의 성격이 매우 강한 반면에 마태와 마가의 것들은 “새”자(字)가 빠지고 “언약의 피”만 언급되었다. 그 이유는 복음서들이 기록될 당시에 이미 예루살렘이 붕괴되고 유대교가 극도로 약해진 상황이었고, 기독교는 이미 새로운 언약공동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장성이 높은 바울과 누가의 것은 빵을 먹고 포도주잔을 들기 전에 “저녁 먹은 후에” 또는 “식후에”란 말을 쓰고 있지만, 예배용으로 다듬어진 마태와 마가의 것들에서는 배불리 먹고 마시는 애찬에서 소량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기념의식으로 바꿨기 때문에 “저녁 먹은 후에” 또는 “식후에”를 생략하였을 것이다.

반대로 현장성이 낮을수록 신학적 해설이 많아진다. 바울과 누가가 “너희를 위하여”라고만 한 반면에 마가의 경우 “많은 사람을 위하여”로 마태의 경우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로 진보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한 이해가 제자들에서 유대민족에로, 유대민족에서 전 인류를 위한 것에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첫째로 배타적 민족주의 유대-기독교에서 온건적 포용주의 헬라-기독교에로 하나님의 구원의 지평이 점차 넓어지고 있었던 것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함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함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둘째로 땅에서 하늘에로, 육(肉)에서 영(靈)에로, 유한에서 영원에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옛 언약의 피

출애굽기 24장 1-11절에 언약체결 장면이 나온다. 이 언약의 핵심은 가나안땅이다. 1-3절은 예비단계로써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에게 하나님이 토라율법을 내용으로 언약을 맺고자 하시는데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묻는 장면이다.

4-8절은 본 단계로써 엄숙한 언약식의 장면이다. 모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언약, 곧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기록하고, 언약식 당일 이른 아침에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지파 수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바치게 하였고, 소를 잡아 바친 화목제의 살코기들은 언약식 마지막 단계인 언약의 식사 때에 사용하였다.

언약식의 중요단계 가운데 하나는 제물의 피를 뿌리는 의식이다. 모세가 소들의 피를 받아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린 다음, 언약서인 토라를 회중에게 읽어준다. 회중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고 응답한다. 그러자 모세가 양푼에 담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11절은 언약의 식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9-10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 그리고 11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대표들 간에 나눈 언약의 식사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고 했다. 고대근동에서는 계약체결 후 그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단을 쌓은 후에 계약 당사자들이 함께 식사를 나눴다.

이 시내산 언약을 구약 혹은 옛 언약이라고 말한다. 이 계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제사장의 나라가 되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출 19:5-6). 우리는 이것을 ‘선민’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조건이 바로 이 시내산 언약이고, 이 언약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과 토라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 시내산 언약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첫째는 짐승의 피로써 맺어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땅을 조건으로 맺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옛 언약에서 땅은 문자적이고 세속적인 지상의 가나안 땅이고, 구원개념은 이 땅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대가로 받은 것이므로 이 땅의 지속적인 유지여부는 언약의 내용인 토라의 준수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리 대단한 유대인일지라도 그들이 죄와 허물, 특히 우상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피조물인 이상, 그들의 땅은 그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 땅을 소유했던 때보다 빼앗겼던 때의 기간이 3배나 더 길었다. 일찍이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이 시내산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키는가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불행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사 24:5) 때문이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불행이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렘 22:9)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시내산 언약과 같지 아니한 새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31:31-33).

새 언약의 피

19-20절에서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근거는 하나님이 시내산 언약과 같지 아니한 새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을 것이라고 한 예레미야의 예언에 있다. 이 언약의 핵심은 하늘 가나안땅이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더 좋은 언약”이라 했고,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 또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히 8:6)라고 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옛 언약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소의 피를 계약 당사자인 회중에게 뿌림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새 언약의 강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심령에 뿌림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히브리서가 새 언약을 일컬어 “더 좋은 언약”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침례식 때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과 계약을 체결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죄의 종살이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새 삶을 주신 하나님 한 분만을 구주로 모시고 섬기며, 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새 언약을 맺는다.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붓는 예수님의 피로 된다. 이것이 신약(新約) 곧 새 선민언약이다.

주의 만찬은 새 선민언약체결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10)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는 행위이다. 주의 만찬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공고히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97년경 로마로 붙잡혀 가면서 일곱 편의 서신을 썼다. 그는 에베소서신에서 주의 만찬을 ”불사(不死)의 약(藥)이요, 죽음의 해독제“라고 불렀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너희들이 주의 만찬에 자주 모이면 사탄의 세력은 무너지는 것이다”고 하였다.

주의 만찬은 기독교예배를 영적예배로 만들뿐 아니라, 유대교예배와 차별시킨다. 주의 만찬 제정사들은 “떡을 가져(봉헌), 감사기도 하시고(주의 만찬기도), 떼어(분병례) ... 주시며(성찬배수/聖餐拜受), 이르시되(교훈)”로 되어 있다. 이것들과 신약성경의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초기 기독교예배는 제1부 말씀의 예배로써 성경봉독(바울서신의 봉독), 집례자의 설교, 기도, 찬송시(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엡 5:16, 골 3:16, 고전 14:26)가 있었고, 제2부 주의 만찬예배로써 인사와 평화의 입맞춤(고전 16:20-24), 봉헌(“떡을 가져”), 주의 만찬설교(“이르시되”), 주의 만찬기도(“축사하시고,” 고전 10:16), 주기도(마 6:9-13), 주의 만찬에의 초대(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라나타.”) 분병례와 참여(“떼어 주시며”), 그리고 축도(고전 16:23-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아멘”) 순서로 이어지는 예전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요, 구약에서 모형을 갖는 실체적 예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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