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1]구원사역의 점진적 연속성1(눅 24:47-53, 행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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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구원사역의 점진적 연속성1(눅 24:47-53, 행 1:1-5)
하나님께 잇대어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최초의 인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맺은 언약에서 보듯이, 신인관계를 언약관계로 설명한다. 신인관계가 크고 작은 언약들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 언약관계는 항상 ‘위로부터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사랑으로 친히, 항상, 먼저, 인간을 찾아오셔서 은혜로써, 사랑으로써, 자비로써, 맺는 언약이다. 인간에게 무슨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죄와 허물을 피하지 못하는 피조물이고, 창조주의 뜻을 거스르는 배신자이다.
신구약성경 모두는 인류를 두 가계로 나눈다. 이 두 가계가 걷는 길은 각기 다르다. 두 개의 길이 있는데, 한 길은 생명의 길이고, 다른 길은 멸망의 길이다. 생명의 길을 걷는 가계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이다. 반면에 멸망의 길을 걷는 가계는 세상의 자녀들로서, 가인에게서 보듯이, 하나님한테서 떠나 세상에 속한 자들이다.
창세기는 아담으로부터 셋과 에노스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계와 아담으로부터 가인과 라멕으로 이어지는 세상의 자녀들의 가계를 밝히고 있다. 모세오경을 기록한 히브리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창 4:6) 셋, 에노스로 이어지는 신앙의 가계에 잇대었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뿌리로 잇대고 있는 야곱까지의 가계는 주로 혈통보다는 신앙에 의한 것이고, 그렇다보니까 장남이 아닌 경우가 많다. 히브리민족은 인근의 타 민족들에 비해 역사가 짧았으나 영성에서는 월등히 우월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시공간적인 우월성이 아니라,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민족의 뿌리를 하나님에 잇대었다. 이 점에서 히브리인들의 위대함이 입증되었다. 그들이 위대했던 것은 그들이 강성해서도 아니고, 다수민족이어서도 아니고, 뛰어난 문명을 이뤄서도 아니다. 인접한 국가들이 이룬 고대 문명들에 비하면 그들의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그들은 출발이 많이 뒤쳐진 약소국이었고 소수민족이었으나 유일신 하나님에 잇댄 신앙만큼은 타국의 추종을 불허한 월등한 영성을 지녔으며, 토라(모세오경)를 읽고 쓰고 지키는 민족이었다.
유일신 하나님과의 언약이 민족단위로 나타난 최초의 글이 출애굽기이고, 그 언약의 말씀위에 세워진 나라가 이스라엘이었다. 히브리민족은 국가명과 지명, 심지어 인명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 만들 정도로 신앙을 최우선시하는 민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민족의 출범과 흥망성쇠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서 설명하였다. 그 언약이 시작된 과정을 밝힌 기록이 출애굽기이고, 그 내용이 가나안땅과 맞물려 있다.
그들은 떠돌이와 노예였기 때문에 나라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주할 땅을 주시는 대신에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기로 언약하였다. 한 민족의 출현과 국토의 소유권을 유일신과의 언약으로 설명한 민족은 이스라엘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국가가 위협을 당할 때에도, 국토를 빼앗기고 떠돌이와 노예로 전락하여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겪는 동안에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영원에 잇대어
이스라엘 민족은 인류역사상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가장 적게 누린 민족, 가장 불행했던 민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앙과 예배의 내용으로, 명절과 축제의 내용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연대의 끈으로, 교육의 내용으로, 윤리와 도덕적 실천의 내용으로, 법과 질서의 내용으로까지 삶에 녹아내리게 하였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나라를 영속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희망의 노래로 애창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흑암과 혼돈과 죽음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빛과 질서와 생명을 불어넣으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예와 떠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 조상들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역사의 중심에 선 주인공으로 고백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민족사를 기록할 때 그들을 주인공이나 주어로 쓰지 않고, 하나님을 그들 역사의 주인공과 주어로 썼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곧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였음을 고백하였다. 예를 들면, 일반 역사가들이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쓸법한 내용을 그들은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독수리 날개에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물로 사막을 통과케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적었다.
누가는 이스라엘 민족사의 전면에 항상 성령님이 계셨다는 것을 히브리민족의 광야생활을 이끈 구름기둥에서 확신했을 것이다. 누가는 그것이 예수님의 삶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예시(豫示)와 예표(豫表)적 사건이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히브리민족의 출애굽사건, 광야생활, 가나안입성이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누가는 성령님이 이끄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져왔다는 특별한 통찰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도, 그리스도인의 삶도, 히브리인들이 맺었던 하나님의 언약에 잇대어 있는 것이지, 돌연변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과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에 잇댄 역사관은 옳되, 영원에 잇댄 역사관에는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영원은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가나안땅의 영속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영원은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하늘 가나안땅에서의 영생을 말한다.
둘째, 하나님의 성령에 잇댄 역사관은 옳되, 성령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뿐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성령은 인격체이신 성령하나님을 말한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에 잇댄 역사관은 옳되, 언약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완성으로 오해했고, 그로써 선민의식과 자기우상에 빠졌던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이 완성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으로 믿었다. 구약은 장차올 더 좋은 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로써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교회의 예시와 예표였다.
성전에 잇대어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유대교의 완성이다. 이것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눅 24:53)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는 말씀의 뜻일 것이다. 누가의 지대한 관심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아담이후 지속되어져왔고, 현재진행중이며, 먼 미래에까지 지속된다는 점과 바야흐로 그 패러다임이 바꿨다는 데 있다.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패망한 주전 586년 이후 예언자들은 제2모세의 출현을 예언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제1모세시대를 옛 언약시대라고 불렀고, 제2모세시대를 새 언약시대라고 불렀다. 일부 유대인들은 오실 자 제2모세가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고, 십 수 년쯤 후에 안디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행 11:26).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제2모세시대를 소수민족인 유대인들만을 위한 시대가 아니라, 민족성별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인류를 위한 새천년시대로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나라를 그리스도의 나라 또는 그리스도의 교회라 불렀고, 교회를 완성으로 보지 않고, 영원한 하늘 가나안땅에 잇대는 오름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새천년시대를 이끄는, 즉 하늘 가나안땅, 하늘 예루살렘, 하늘 시온에로의 오름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 성령님은 특별한 하나님의 종들에게 역사하시는 계시와 능력 행함의 사역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가나안땅의 소유권자임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임과 하나님의 가족의 식구임을 보증하고 인치는 중생사역의 주체이실 뿐 아니라, 이러한 구원의 확신 속에서 종말에 주어질 하늘의 참 평화를 맛보고 누리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성화를 이뤄가게 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으로 확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성령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물로,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주어지며,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임재 하시어 내주하시는 임마누엘로 확신하였다. 이 시대를 일컬어 기독교는 새천년시대, 신약시대, 교회시대, 성령시대, 은혜시대, 복음시대, 종말론적 시대라고 부른다. 모두가 다 같은 뜻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문서로써 이 놀랍고 특별한 은총의 시대가 어떻게 출범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발전하여 갔는지, 또 그 전망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이다.
이 놀랍고 특별한 새 언약시대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예배)”는 것,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며,”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가는 증언한다. 이것이 예언자들이 선포한 회복운동의 내용이다. 제2모세의 출현에 대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절망에 빠진 인류에게 주신 회복의 메시지로써 흑암과 혼돈과 죽음에서 회복되는 길이 회개라고 선포하였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이 회개가 선포되는 새 언약시대가 오순절 날,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오순절 날에 옛 언약을 체결했듯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4:47). 이 일에 관한 기록이 사도행전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신약의 출애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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