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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1]새 언약 백성의 새 출애굽7(행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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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529 2014.02.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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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1]새 언약 백성의 새 출애굽7(행 4:1-12)

최초의 기독교 탄압

누가는 사도행전 4장 1-4절에서 최초의 기독교 탄압을 언급하면서 곧바로 믿는 자의 수를 계명의 아들들을 기준으로 오천 명이나 되었다고 기술하였다. 이 기술은 하나님의 섭리가 기독교복음전파에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보여주려는 누가의 역사기술방법이다. 누가는 탄압이, 1장 8절의 주제대로,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몰아가는 물리적 추진력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의 첫 언급 장소가 4장이다. 이후 12장까지는 베드로 중심의 히브리파(국내파) 유대인 기독교에 관한 기술이며, 박해도 동족인 히브리파 유대인들로부터 받는다.

복음의 발전이 탄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실제로 인류사의 발전도 시련이 가져온 결과였다. 인류는 늘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그것은 오로지 시련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따라서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겪어야할 시련이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보여주는 헤라클레스와 제이슨 같은 영웅들의 삶이 그랬고, 복음서가 보여주는 예수님의 삶이 그랬으며,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사도들의 삶이 또한 그러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설교했던 솔로몬 행각은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미문과 마주한 성전 뜰 동쪽 끝자락에 있었지만, 성전 뜰 남쪽 끝자락에 건립된 왕의 행각과 직각(??) 형태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왕의 행각의 오른쪽 코너에 산헤드린공회당이 있었다. 성전에는 치안을 담당한 레위인 군졸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내 공회에 보고되었고,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은 보고를 듣고 달려온 담당 직원들이었다.

여기에 언급된 제사장들은, 당번 때만 와서 봉사하고 돌아가는 일반 제사장들이 아니라 성전에 상주하는 직원 제사장들이었을 것이다.

이 당시 유대지방은 로마총독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왕이나 군대가 없었다. 따라서 유대인 최고위직은 정치인이 아닌 종교인인 대제사장이었다. 당연히 그에게는 사형을 언도하거나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 다만, 로마는 유대인들의 정서를 감안해서 성전치안만큼은 레위인들이 맡도록 허락하였다. 군졸이 400명쯤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대의 책임자가 ‘성전 맡은 자’였고,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벼슬이었다.

사두개인들은 앞에 언급된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를 모두 포함한 정치종교집단이다. 이 당시 사두개인들은 집권세력이었고, 헬라주의자들이었다.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하여 문자적으로 읽었다. 따라서 오경에 실린 레위인의 정결의식과 제사의식,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반면, 오경에 없는 내세, 부활, 영적세계, 천사와 마귀 등의 존재는 믿지 않았다. 또 이들은 예수님을 처형한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이것이 최초의 탄압이었다. 그러나 탄압은 복음의 불씨를 흩어뜨려 불이 번지게 하는 효과,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우는, 그래서 전 로마제국으로 번져가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불은 로마라는 통일제국, 헬라어라는 공용어, 알렉산더와 로마가 닦아놓은 도로와 항만과 항해술의 발달이라는 준비된 환경 속에서 지중해연안 세계 구석구석까지 번져나갔다.

산헤드린 공회원들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시간은, 3장 1절에 의하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이었다. “제 구 시”는 해가 뜬지 9시간 째, 대략 오후 3시경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저녁 6시경 해가 진후부터 새 날이 시작된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했을 때, “날이 이미 저물었고,” 그 날의 공무가 종료되었으며, 새 날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날이 밝으면, 공회의 심문을 받게 하려고 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것은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고나서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3시간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된 이유는 2절에 나타나 있듯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했기” 때문이었지,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전부터 알고 있던 앉은뱅이에게 일어난 기적은 베드로와 요한의 부활증언을 가볍게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밤 시간이 지나고 낮 시간에 산헤드린공회가 소집되었다. 이들은, 5-6절에 의하면,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었고,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었다. 공회는 이스라엘의 최고 종교법정으로써 ‘산헤드린’(Sanhedrin)이라 불렸다. 구성은 70-72명으로 이뤄졌고, 모세의 70인 장로에서 유래하였다. 의장은 대제사장이었다.

대제사장의 권한은 일 년에 하루 대속죄일 때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과 산헤드린 의장을 맡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당시 대제사장은 로마당국이 임명한 꼭두각시였다. 대제사장이 한 명뿐이어야 하는데도 안나스와 가야바 두 사람이 언급된 것은 로마가 합법적으로 임명된 안나스를 끌어내리고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를 꼭두각시로 앉혔기 때문이었다.

이들 공회원들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모세오경뿐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와 랍비들이 만들어 지키게 한 각종 울타리 법을 동일하게 정경으로 받아드리고 있었고, 신구약 중간기를 지배한 헬라시대의 영향을 받아 예정과 자유의지, 영혼 불멸, 몸의 부활, 영혼의 존재, 천사와 마귀의 존재, 사후 상벌, 성경의 영감설, 죽은 자의 미래, 인간의 평등을 믿었으며, 주로 원리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에 치중하여 민중 속에 파고들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모든 정파와 종파들은 사라졌지만, 바리새파는 살아남아 오늘날의 유대교로 발전되었다.

공회원들 가운데는 대학자 가말리엘 1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율법학파의 창시자인 힐렐의 손자로서 예수님 공생애와 예루살렘교회 창립 초기인 주후 25-50년경에 활약했다. 그가 사도들에게 우호적인 변호를 했다는 사실이 5장 33-40절에 실려 있다. 그에게 동료내지는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울과 요하난 벤자카이 및 가말리엘 2세였다. 이 가운데 바울은 유대교 기독교의 족쇄, 즉 율법주의자들의 지배에 매어있던 교회를 해방시켜 오늘의 이방인 교회로 발전시킨 그리스도의 교회의 대사도가 되었고, 요하난 벤자카이와 가말리엘 2세는 예루살렘 멸망 직후, 로마의 허가를 받아 욥바 남동쪽 20킬로미터 지점, 지중해 동쪽 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Japheth) 혹은 ‘얌니아’(Jamnia)란 소도시에 율법학교를 세워 성전을 대신할 율법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생존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더 이상 탄압할 수 없게 되었다.

산헤드린 공회 청문회

앉은뱅이 사건은 산헤드린 공회를 들썩거리게 만든 큰 사건이었다.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은 이 사건이 공회를 소집할만한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제자들이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예수님은 그들이 불과 두어 달 전에 메시아 사칭, 신성모독, 성전모독, 혹세무민의 죄로 십자가에 처형했던 인물이 아닌가? 게다가 그들이 미문을 지날 때마다 보아오던 40대 앉은뱅이 남성이 버젓이 걷고 있지 않는가? 불안하고 당혹스런 일이었다.

드디어 청문회가 열렸다. 그들은, 7절에서처럼, 물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는 성령님으로 충만해 있었다. 예수님의 이름만으로 일어난 엄청난 사건에 흥분이 고조되어 있었다. 그는 이제 예전의 어부가 아니었다. 예전의 약해빠진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해 있었다. 반석(베드로)처럼 굳건한 믿음위에 서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거칠게 없었다. 8-12절은 베드로의 세 번째 공개설교 내용이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우리가 불구자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그가 어떻게 낫게 되었는가 하는 경위에 관해서 심문을 하는데, 불구자였던 저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된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입니다. 여러분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예수는 집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공동번역).

이 설교 속에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이 앉은뱅이가 누구의 힘으로 고침을 받았느냐,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느냐?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살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된 것이다. 여러분들은 쓸모없다고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돌을 집 모퉁이 돌로 쓰셨다. 그러므로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다.”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므로 앉은뱅이 사건은 오순절 날 방언 사건과 더불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또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천국복음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한 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던 돌을 하나님께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다는 표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새 언약 백성, 새 이스라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건물의 모퉁이 돌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이 당시 유대인들의 건축은 모퉁이 돌이 방향과 각도를 결정하였다. 우리나라의 머릿돌보다는 커다란 주춧돌에 가까운 돌이다. 이 돌은 다름 아닌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한다. 베드로가 이제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선포한 내용을 뜻한다. 이 반석위에 자기를 세우는 자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마 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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