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강32]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8(행 1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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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2]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8(행 17:1-15)
데살로니가를 향한 진군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태장을 맞고 초죽음이 되어 감옥에 갇혔고, 한밤중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차꼬에 묶인 채로 기도하고 찬송하기 시작했다. 기도와 찬송은 아픔과 두려움을 잊게 하고,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후일 바울이 형편에 지나도록 선교헌금을 보내주고 감옥에 갇힌 자기를 위해 마음을 써준 빌립보교회에 쓴 편지를 보면, 기쁨이란 말이 들어간 단어가 16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빌립보에서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조차 기도하고 찬송했던 바울은 또 다른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기쁨을, 그것도 16번이나, 입에 올린 것이다. 바울은 기쁨을 명예나 권세나 재물에서 찾지 않고, 주 안에서 찾았고, 성도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에서 찾았다. 그의 기쁨은 철저히 이타에서 비롯되었다. 이타가 그로 하여금 옥중에서 기뻐할 수 있게 하였고, 모든 위기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게 하였으며,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힌 원통함을 마음에 담기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새 희망을 찾는 데서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하였다.
빌립보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바울 일행은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암비볼리’(Amphipolis)와 ‘아볼로니아’(Apollonia)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암비볼리는 마케도니아 동부지방의 수도였다. 빌립보에서 약 53KM 지점에 위치해 있었고, 아볼로니아는 암비볼리에서 약 48KM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암비볼리에서 ‘암비’(amphi)는 양(兩), 두 가지, 원형, 주위란 뜻이다. 안동 하회마을처럼 강이 도시 양끝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란 말도 있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도시 주위에 몰려 살았기 때문이란 말도 있으며, 해협주변을 가리킨다는 설명도 있다. 아볼로니아는 그 이름으로 볼 때 아폴론을 주신으로 섬긴 도시였을 가능성이 있다.
데살로니가는 아볼로니아에서 약 50KM 떨어진 마케도니아 서부지역 수도였다. 그래서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까지는 약 150KM, 도보로 일주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누이 데살리(Thessally)의 이름을 딴 도시로써, 2004년 아테네올림픽 3차전에서 한국팀이 말리에 3골 차로 뒤지던 후반에 조재진의 연이은 헤딩슛과 말리의 자책골로 기적 같은 동점 드라마를 연출하며 올림픽 8강 진출의 쾌거를 일궈낸 곳이다. 또 역사적으로는 주후 390년에 주민반란으로 7천여 명이 학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이 사건의 책임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물었고, 끝내는 황제를 굴복시켜 참회케 한 전무후무한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도시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2년 후인 392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여 비잔티움제국을 꽃피우게 한 사람이었다.
데살로니가는 인구 20만의 항구도시로써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바울 일행은 이곳에서 3주 이상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인들의 박해로 고린도까지 피신한 바울은 최초의 두 서신을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냈다. 이때가 주후 51-52년경이었다. 신약성서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이 두 서신들을 보면, 이 무렵 바울은 주의 재림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교회와 베뢰아교회 설립
데살로니가에는 헬라파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다. 바울은 늘 하던 대로 회당예배에 참석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세 안식일에 걸쳐 구약성경을 가지고 유대교인들과 토론하였는데, 아마도 그 내용은 신약성서에서 볼 수 있는 예표론, 즉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그림자와 모형으로, 예수님을 율법과 예언의 실체로, 또 오실 자 메시아로 해석한 해설이었을 것이다. 3절을 보면, 바울은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또 예수님이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시라고 강력히 말하였다. 그 결과 몇몇 유대인들과 많은 수의 문의 개종자 헬라인들이 적지 않은 귀부인들과 함께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이 사람들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상당한 수의 교인들을 빼앗긴 유대교인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였고, 시내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여 바울 일행을 잡으려고 하였다. 바울 일행이 야손의 집에 묵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바울 일행을 잡지 못하자, 야손과 몇몇 성도들을 시청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였다. 고소내용은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6절) 반역을 꾀한다는 것과 야손이 그들과 야합하였다는 것이었다. 시청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으나, 혐의를 입증할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음으로 보석금을 받고 일단 풀어주었다.
‘야손’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콜키스 땅에 있는 금양모피(황금양의 가죽)를 찾기 위해서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었던 영웅의 이름이자, ‘여호수아,’ ‘호세아,’ ‘예수’에 대한 헬라어 이름이다. 영어로는 ‘제이슨’이라 부른다. ‘야손’이란 이름은 헬라인과 헬라파유대인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야손이 유대인이었는지 혹은 문의 개종자였는지가 명확치 않다. 중요한 것은 루디아가 있어서 빌립보교회의 설립이 가능했던 것처럼, 야손이 있어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설립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로마서 16장 21절에서 야손은 바울의 친척으로 언급되었고, 가톨릭교회는 야손이 나중에 바울의 고향인 다소의 주교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중에는 아리스다고(Aristarchus)와 세군도(Secundus)도 있었다(20:4).
성도들은 그날 밤에 바울 일행을 베뢰아로 떠나보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약 8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베뢰아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유대교회당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였다. 다행히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그 결과 꽤 많은 유대인들과 적지 아니한 수의 문의 개종자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믿게 되었다. 이 사람들이 베뢰아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이들 중에는 부로의 아들 소바더(Sopater)가 있었다(20:4). 소바더는 바울이 야손과 함께 자신의 친척으로 언급한 소시바더(Sosipater)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베뢰아까지 찾아와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을 벌였다. 성도들은 곧바로 바울을 바닷가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실라와 디모데는 그곳에 남았다. 몇몇 사람들이 바울을 아테네까지 안내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데살로니가 서신들
바울이 진군한 도시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세운 것은, 어떻게 보면,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지에 자기 이름의 도시들을 건설한 것과 같다. 알렉산더는 정복한 지역마다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알렉산더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도시들은 그리스문화와 사상을 동방에 전파하는 거점이었다. 알렉산드리아로 이름 붙여진 도시가 70여 개나 되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도시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다.
데살로니가 서신들은 바울이 쓴 최초의 편지이자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글이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서 베뢰아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 정착하여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것이다.
데살로니가 서신들의 기록목적은 시련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경건하고 성결한 삶을 살며, 일상생활에 소홀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주의 재림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이 글들은 바울이 선교지에서 행한 설교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녀온 디모데의 보고가 바울에게 큰 기쁨과 힘을 주는 고무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성도들이 여전히 바울을 사모하였고, 가르침대로 잘 지키고 있었으며,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높이 평가하면서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살전 2:20)고 극찬하였다.
그러나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재림의 기대 때문에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신자가 있었는가하면, 부정한 생활을 끊지 못하는 신자도 있었고, 재림이 있기 전에 죽은 신자들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이런 자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뜻”(4:3, 5:16-18)을 전하면서 음행을 멀리하고 거룩하게 살되, 항상 기뻐하고, 쉼 없이 기도하며, 매사에 감사하며 살라(살전 5:16-8)고 권면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체 47절 가운데 38퍼센트인 18절이 종말에 관한 내용일 정도로 주의 재림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쓰였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먼저 배교와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을 말하고, 주어진 생활 속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촉구하였다.
바울은 후서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장 3-4절을 보면, 성도들은 믿음이 일취월장하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피차 풍성하게 사랑하였으며, 온갖 핍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인내와 믿음을 나타내 보였다. 전서 1장 3절의 말씀대로, 성도들의 믿음에 역사가 따랐고, 사랑에 수고가 따랐으며, 소망에 인내가 따랐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과 인내에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풍성하였다. 성도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일궈갔다. 그것이 그들이 바울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들었던 이유였다. 칭찬하기나 감사하기가 쉬워 보이지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칭찬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며, 불평과 원망과 책망으로 하기 때문이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하지 않고, 불신과 미움과 절망으로 하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고, 쉼 없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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