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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4]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10(행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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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04 2014.06.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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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34]새 언약 백성의 도전(진군)과 기회10(행 18:1-4)

고린도를 향한 진군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던 바울은 그들의 합류가 늦어지자 아테네 남서쪽 80KM 지점에 위치한 아가야 도(道)의 수도 고린도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터키 북중부 흑해연안 본도출신의 유대인 아굴라와 그의 부인 로마출신의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였고,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다”(3절). 이때가 주후 52년 경이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시에 살다가 주후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로마시에서의 유대인추방령에 따라 천막수요가 많은 고린도에 이주하여 정착한지 1-2년밖에 되지 아니한 부부였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아니면 바울 일행을 만난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설명이 없어서 알 수 없으나 바울 일행의 고린도 정착에 큰 힘과 의지가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기 전까지 고린도 정착 초기에 얼마동안은 아굴라의 집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자급자족하였고, 늘 하던 방식대로 안식일마다 유대교회당에 나가 말씀을 강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 문의 개종자들에게 전도하였다(4절).

고린도는 자유인이 25만, 노예가 40만, 전체 인구가 65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였다는 주장도 있고, 인구 10여만 명에 노예가 3분의 1정도였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 신학자들은 후자에 동의한다. 고린도는 상업도시였다. 고린도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고, 거기에는 1,000여명의 성창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는 예배는 이들 여사제들과의 성관계를 맺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예배는 큰 유혹이 되었고, 음행을 경고한 고린도전서 5-6장의 바울의 권고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고린도를 넣어서 만든 헬라어 합성어는 이 도시의 성문란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코린띠아조(corinthiazo):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하다(음행을 하다); 코린띠아이 헤타라이(corinthiai hetarai): 고린도의 친구들(창남들); 코린띠아이 코라이(corinthiai corai): 고린도의 아가씨들(창녀들).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 배후에는 숨은 인물이 많았다. 바울을 말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할 수 없으리만큼 그의 선교사역과 가르침은 일세기 중엽 지중해 연안의 전 유럽을 발칵 뒤집기에 족한 것이었다. 바울은 시리아, 키프로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전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고, 핵심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주옥같은 13편의 서신을 남겼다. 그러나 그에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혹은 브리스가) 부부의 헌신적인 섬김과 사역이 없었다면, 바울이 이룬 많은 업적의 일부는 성취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 부부 이외에도 누가, 실라, 디모데, 디도, 마가를 비롯해서 많은 동역자들이 바울을 도와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역을 하였지만, 성서에 나타난 가장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 부부로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이상의 사람이 없을 것 같다.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들 부부에 상반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중에 터키 남갈라디아 지역에서 박해와 고난을 무릅쓰고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고백대로 남에게 부끄러움이 될 만한 신체적 결함이 있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그의 신체적인 장애가 이곳 터키에서 받은 박해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이 지방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돌로 몰매를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적이 있었다. 이 지방에 사는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 4:13-14). 이 말씀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육체의 시험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눈물겹도록 사랑했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지방에서 바울은 정착하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표면적인 이유가 될 수 있겠으나 마땅한 동역자를 찾지 못한 것이 더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난 후부터는 선교지에 장기 체류가 가능하여졌다. 이 점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바울 일행의 체류선교의 공헌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을 만드는 가죽 세공업자였다(18:3). 바울의 직업도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과 곧 친구가 될 수가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간 체류하였는데, 경제적 안정과 신체적 보호가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를 전진기지로 삼아 온 그리스에 전도하였는데, 그와 함께한 일군들은 제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배움은 곧 도제식 현장실습이었다.

좋은 일군을 만나는 것은 결코 사람의 뜻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개입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에서 살다가 주후 49년경에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추방령에 따라 고린도에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주후 51년경에 바울은 터키 북서부 지역인 흑해연안의 비두니아에서 복음사역을 하고자 하였으나 성령께서 이를 허락지 않으셨고, 오히려 밤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16:9)는 환상을 보고 그리스로 건너간 것이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계기였다. 이들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바울 일행보다 먼저 고린도에 정착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면, 차기 선교지인 에베소와 로마에 각각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선교준비를 한 것은 인위적인 계획이 포함된 시너지효과로 보인다. 그들은 이미 체류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들 부부는 사업가로서(18:3), 전도자로서(18:26), 동역자로서(롬 16:3), 바울을 목숨 바쳐 섬긴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로서(롬 16:4), 에베소교회의 담임자로서(딤후 4:19)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으며, 이들은 그들의 집을 사업장으로, 선교기지로, 교회로(롬 16:4; 고전 16:19), 선교사합숙소로서 제공하였다.

바울의 인간적인 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목숨까지라도 바치고,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이 눈까지라도 빼어 주고자 했던(갈 4:15) 바울은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은 능력의 사람만은 아니었다. 성도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늘 받았던 것도 아니다. 불신자의 핍박은 당연하다고치더라도, 일부 교인들로부터 당한 모멸과 멸시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바울은 “사탄의 사자” 혹은 “육체의 가시”라는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었다(고후 12:7; 갈 4:13-15; 딤후 3:10-12). 이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안질이나 간질로 추정된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나를 쳐서”를 간질환자들이 갑자기 땅바닥에 넘어지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또 갈라디아서 4장 15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할 수만 있었다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썼기 때문에 안질을 의심하게 된다. 바울은 대개 대필을 통해서 글을 썼다. 갈라디아서도 누군가를 통해서 기록한 글이다. 대필의 이유가 바울의 눈병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바울은 외모가 그렇게 잘난 것도 아니었다(고후 10:7; 갈 4:13). <바울행전>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에 터키지역 이고니온의 주민인 바울의 동역자 오네시보로가(딤후 4:19) 이고니온으로 오고 있는 바울을 마중 나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네시보로가 본 바울은 “작은 체구, 맞닿은 양미간, 코는 조금 길고, 대머리에 다리는 휘었고, 단단한 체격에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엄하게 책망하고 있고,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는 시험거리가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성도들의 태도에 있었다. 일부 성도들은 이런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지만, 다른 성도들은 바울에게 모욕적인 언사와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바울의 내면적 신령한 면을 본 성도들이 있는가하면, 육체적 외모만 취한 성도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말에 졸한 사람이었다(고후 10:10; 11:6). 바울은 지혜가 많고 말씀에 능력이 있었지만, 능변가는 아니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바울이 선포한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영적인 귀를 열지 아니하고 아볼로식의 능변에만 가치를 둔 저질 신앙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후 10:10)고 바울을 비방하였다.

바울이 자신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에 밑거름이 되어준 많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신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는 호감을 주지 못했다는 점에 힘주어 말하고 싶다. 고린도교회의 특성이었던 노예근성은 노예가 많았기 때문이었고, 빌립보교회의 특성이었던 시민근성은 시민권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예근성을 버리고 시민근성으로 단단히 무장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도전(진군)에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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