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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50]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5(행 2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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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81 2014.07.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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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50]새 언약 백성의 새 나라의 전망5(행 27:27-44)

살림의 일을 행한 바울

크레타 섬의 미항을 떠나 비교적 짧은 거리인 뵈닉스로 향해가던 배는 강한 북동풍에 의해서 14일간 840km 떨어진 멜리데(몰타) 섬 해안 근처에까지 떠밀려갔다. 주후 60년은 9월 28일이 초막절 보름날이었고, 배가 미항에 도착했을 때가 9월 23일 대속죄일이 막 지난 때였으므로 14일이 지나 배가 몰타 섬 해안 근처에 다다른 때는 아마 10월 중순, 티쉬리월 그믐쯤이었을 것이다(우리나라 음력 8월 말일).

이 난국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은 바울이었다. 바울은 상황판단이 정확한 사람이었고, 죽음 앞에서조차 생명을 논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으며, 폭풍 속에서 능력의 주님을 볼 수 있는 영안이 뜬 자였다. 바울은 극한 상황 속에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죽음의 바다에서 구원의 해변을 말할 수 있었으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설교했던 살림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배가 몰타 섬 근처 “열다섯 길,” 즉 27미터 깊이의 물에 이르렀을 때 선원들은 배의 뒷부분인 고물에서 닻을 내려 배를 움직이지 않게 한 후에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자 선원들이 배 앞쪽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구명보트를 내려 도망가려고 하였다. 이를 눈치 챈 바울은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선원들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군사들이 구명보트의 줄을 끊어버렸고, 구명보트마저 잃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배와 승객들의 목숨을 책임진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276명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게 하고 삶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들은 무려 14일간이나 음식을 먹지 못해 탈진해 있었다. 배불리 먹고 난 후에 남겨두었던 밀을 바다에 내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다.

우리들도 때로는 살기 위해서 움켜잡았던 것들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버리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버려야할 상황이 오기 전에 깨닫고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바울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그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도 바울이란 하나님의 사람이 동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살리기 위해서 276명 전원을 살려주셨다.

우리가 살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잘못된 판단과 생각, 잘못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들이 잘못 선택한 일들로 인해서, 바울과 그의 일행처럼, 심하게 고통을 겪어야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앞에 늘 도사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들의 선한 뜻대로만 움직여 주질 않고, 오히려 악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그로 인한 고통과 시련을 면키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새 언약 백성은, 바울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써 상황을 주도하여 빛과 질서와 생명의 일을 해야 한다.

살림의 생각을 했던 바울

날이 밝자, 육지가 보였다. 그들은 닻줄을 끊고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해안에 접근하였다. 그런데 그만 배가 모래톱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배의 고물은 파도에 깨어졌다. 군사들은 죄수들이 도망갈 것을 두려워하여 죽이려했지만, 백부장이 바울을 구하려 하여 죄수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백부장은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헤엄을 치게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에 있던 물건들을 의지해서 육지에 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바울의 말대로 한 사람도 상하지 않고 모두 해안에 상륙할 수 있었다.

폭풍을 만난 좁은 배속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람들 중에는 자기만 살려고 도망치려한 선원들이 있었고, 고정관념에 매어서 죄수들을 죽이려한 군사들이 있었으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살림의 일을 한 바울이 있었다.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들어난다. 성경에서 불같은 연단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보면, 고린도전서 3장 12절의 말씀처럼, 금인지, 은인지, 보석인지, 나무인지, 풀인지, 지푸라기인지가 다 들어난다. 어려운 일을 당하기전까지 감춰져있던 속성이 불같은 시험을 당하게 되면 다 들어난다. 14일간 폭풍과 흑암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했던 이 죽음의 용광로에서 각자의 인격과 인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육지가 가깝다는 사실을 육감으로 알아챈 선원들은 함께 고생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치려 하였다. 선원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을 것이고,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배를 조정해야할 선원들이었다. 그들이 떠나버리면 아무도 무사할 수 없다.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풍랑이 멎는다 해도 배를 움직일 선원이 없다면 얼마나 암담한 일이겠는가? 하나님의 도우심도 좋고, 바울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필요하고, 백부장과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선원이 없이는 배를 움직일 수 없다.

선주와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백부장과 군사들은 크고 작은 일들의 책임을 진 실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맡겨진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죄수들을 처형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들의 이런 답답함이 어디에 기인했다고 보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고정관념, 틀에 매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앞을 내다보지를 못했고, 현실의 상황에만 급급하여 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생각들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울은 시종 하나님의 종으로써 뿐 아니라, 상식과 순리에 있어서조차 그들보다 앞선 생각을 하였다. 그가 비록 수인의 몸이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었으며, 사람의 목숨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지도자였다. 망망대해에서 폭풍만난 배를 실질적으로 안전하게 지휘하고 움직였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었다. 이런 큰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울의 지도력과 영적인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살림의 생각과 살림의 일에서 나왔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하는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섬기는가에 따라서 영적인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

생명의 주를 믿었던 바울

살림의 일과 살림의 생각을 했던 바울,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바울로 인해서 276명이 목숨을 건졌다. 절망에 지친 사람들에게 먹기를 권하였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었던 바울의 행동, 그 어려운 정황 속에서조차 상황판단을 바르게 하였고, 모든 정황을 통솔해 나갔으며, 절망의 늪에서조차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잊지 않았던 바울의 믿음이 276명의 목숨을 살렸다. 감옥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갖는 자포자기와 좌절의식이 창조주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바울한테서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모든 자들을 능가하고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광풍을 만난 사람들이 취한 행동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바람이 워낙 세서 어찌해 볼 수 없었으므로 바람에 배를 내맡겼다(15절). 그러다가 바람막이가 되어준 가우다 섬을 지날 때에, 즉 기회가 주어졌을 때, 끌고 다니던 구명정을 바다에서 끌어올려 갑판에 단단히 묶는 일을 했다(16-17절). 그리고 배가 북아프리카 쪽으로 밀려가 모래톱에 걸리지 않도록 갯바닥을 끌도록 만든 일종의 제동장치인 닻을 내리고, 돛을 내려서 갑판에 묶는 일을 하였다(17절). 둘째 날에는 짐을 바다에 풀어버렸고, 삼일 째 되는 날에는 배의 보조기구들, 특히 돛대를 내버렸다(18-19절).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다 힘을 합쳐서,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물건들을 버리는 행동에 동참하였다. 이것은 한 때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던 것들조차도 위기탈출을 위해서는 버려야할 순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내림과 버림은 승선한 자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게 될 가망성은 여전히 희박하였다(20절). 그 후로도 열흘이 넘게 광풍은 불어 닥쳤고, 14일 동안 불어 닥친 성난 바람으로 인해서 결국은 배까지 파도에 부셔졌으며, 목숨이외에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힘을 합해서 모든 것을 내리고 버렸고, 마침내 곡물까지 버린 후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살린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바울의 믿음이었다. 사실 배 안에 있던 276명 가운데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다.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 이 믿음이 그들을 살렸다. 버릴 것은 버리더라도 믿음만은 버리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풍은 배 안의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버릴 것과 보존할 것을 구분하게 해주었다. 만일 우리에게 남은 생애가 한 달뿐이라면, 그 짧은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좋을 일들의 구분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폭풍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는 먹고 입고 쓰는데 유용했던 물건이라도 전혀 무가치하게 여겨질 것이다. 오히려 평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구명조끼와 같은 것들이 최우선적으로 선택될 것이다. 믿음의 경우도 이와 같다. 믿음은 일상에 필요한 생필품처럼 먹고 입고 살아가는 데 그다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폭풍이 인생에 불어 닥쳐 난타를 당할 때면, 모든 것을 다 버려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은 지켜야할 무한 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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