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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눅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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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20 2015.01.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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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눅 15:1-7)
Stretching Out A Helping Hand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

lostsheep_k.jpg 금년 2015년은 양 중에서도 청양(靑羊)의 해다. 을의 상징색이 청색이기 때문이다. 양은 평화의 동물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온순하다. 뿔이 있지만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 무리 동물이지만, 계급을 다투거나 암컷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양은 자연친화적 동물이다.

양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특별한 동물이다. 죄인을 대신해서 또는 성경필사를 위한 가죽제공을 위해서 희생되었다. 게다가 우유와 털을 제공한다. 이 모든 것에 더해, 양은 우리의 구세주님과,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요 1:29), 그리스도인들 또한 주 예수님의 어린양들이다.









<아래의 그림은 우정사업본부가 을미년 양의 해를 맞아 발행한 연하우표 4종. 디자인은 모두 우표디자인공모대전 수상작품들이다.>

을미년(乙未年), 손 내밀기의 해

2015sheep.jpg아무도 정죄하지 말라. 만일 그대가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거든, 그렇게 하라. 그러나 그렇지 않거든, 그대의 두 손을 모아 형제들을 위해 복을 빌라.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하라. - 스와미 비베칸다

Condemn none: if you can stretch out a helping hand, do so. If you cannot, fold your hands, bless your brothers, and let them go their own way. - Swami Vivekananda

아래의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16세기 초에 시스틴 채플 천정에 그린 프레스코 가운데 두 개이다. 하나는 아담의 창조이고, 다른 것은 술 취한 노아와 아들들이다. 이 두 개의 그림에 ‘손 내밀기’가 묘사되어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 아담의 손 내밀기이다. 창조의 일을 하기위한 것으로써 그 결과가 보기에 심히 좋았고 축복이었다. 다른 것은 노아의 아들 함의 손 내밀기이다. 비방을 하기위한 것으로써 그 결과는 심히 불행한 저주였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양팔 벌림의 상징이다.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나가는 복된 2015년 청양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creation_adamandham.jpg금년은 양띠해이다. 올해도 우리는 금양모피(황금양의 털가죽)를 찾아 모험을 떠난 영웅 이아손(제이슨)처럼 뭔가 모를 목마름에 목을 적실 물을 찾아 거친 바다 험한 산으로 나서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한평생 염려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지옥 타르타로스에서 벌을 받고 있는 탄탈로스처럼 끝없는 목마름에 지쳐있다. 탄탈로스는 물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 물을 마시지 못한다. 그가 마시려고 입을 갖다 대면 물이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왜 그는 물을 마실 수 없을까? 누구도 그의 목마름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목을 축일 수 없는 형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내가 목마르다”고 호소하셨다. 그러나 손발이 대못에 박혀 나무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목을 축일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분에게 신 포도주를 적신 스펀지를 내밀었다. 지금도 주님은 목말라하시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계신다.



iamthirsty4.jpg이 주님의 호소의 본질을 터득했던 사람들이 톨스토이였고, 테레사였다. 그들은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의 목마름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타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마치 탄탈로스가 물속에 있지만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내 이웃이 나의 목마름에 무관심하면 나의 목마름이 해결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웃의 목마름에 관심 갖지 않으면 주님의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나의 목마름도 해결되지 않는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탄탈로스처럼 목마름에 지쳐만 있을 것인가? 나가서 목마른 자들의 목을 축이라”(마 25:40).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탄탈로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

iamthirsty5.jpg그리스-로마 신화에 탄탈로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고 자산가였다. 게다가 그는 신들의 신뢰까지 받고 있었다. 그는 종종 제우스의 초대를 받아 신들의 잔치에 참석하였다. 신들과 함께 신주(神酒)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신주(神酒)에 취해있었다. 마치 그는 자신이 신인 듯 착각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술이 깨면 인간사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졌다. 그래서 그는 신의 권력을 흠모하며, 신들의 잔치의 영원한 손님이 되고자 했다.

그는 곧 자신의 궁궐이 신들의 잔치마당이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하여 이번에는 그가 신들을 초대하고 싶어졌다. 신들을 위한 잔치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손님의 자리가 아니라, 주인의 자리에 앉고 싶어졌다.

탄탈로스는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것으론 양이 차질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신들을 위한 비장의 음식으로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대가는 지독한 형벌이었다. 지옥 타르타로스에서 자신의 몸이 물속에 목까지 잠겨 있는데도 목이 말라 고개를 숙이면, 그 순간 물이 말라버리고, 배가 고파 눈앞에 열려 있는 과실을 향해 손을 뻗으면, 그 순간 과실이 사라져버렸다. 결국 그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과 배고픔, 곧 욕망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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