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강13]예수님의 평화군(平和軍) 강령(눅 6: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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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3]예수님의 평화군(平和軍) 강령(눅 6:20-49)
강령(綱領)의 내용
누가복음 6장은 예수님의 평화군(Peace Corps)의 조직, 출정, 강령 등을 보여준다. 특히 17절은 이들 평화군이 평지(전장,戰場)에 도열(堵列)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평지란 저지대의 평지가 아니라 고지대의 평지를 말한다. 예수님의 활동무대였던 갈릴리 호수와 가버나움과 같은 연안마을들은 지중해보다 대략 21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한다. 갈릴리 호수는 둘레가 약 53km이고, 남북으로 21㎞, 동서로 11㎞에 이르는 커다란 호수이다. 그렇더라도 예수님의 활동무대는 주로 갈릴리 호수 북쪽마을들이었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동하신 경로는 주로 북서 또는 북동 혹은 그 반대방향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배를 타신 것은 아니다. 또 갈릴리 지역의 평균 고도가 500-700m사이에 이르고, 갈릴리 호수 동북쪽의 너른 골란고원은 해발 1000m에 이른다. 이는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 호수와 호수를 낀 주변지역들의 고도차이가 700m에서 900m 혹은 1200m에 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 서서 바라본다면, 동서남북으로 주변이 모두 산으로 보일 것이다. 마태가 산이라고 한 지역을 누가가 평지라고 한 것은 지역이 달라서가 아니라 바라본 위치가 달라서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태는 모세가 율법을 전수한 시내산을 염두에 뒀고, 누가는 평화군의 연병장(練兵場) 또는 전장(戰場)을 묘사한 때문이다.
17절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대장이신 예수님이 연단(演壇)에 서시고, 맨 앞줄에 열 두 사도 그리고 몇 걸음 뒤에 많은 수의 제자들이 도열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임무(任務)는 암흑시대를 몰아내고 광명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들의 무장(武裝)은 하나님의 살롬(peace of God) 즉 ‘손 내밀기,’ ‘생명 구하기,’ ‘기도하기’이다. 그들의 적(敵)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들이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훈령(訓令)하셨다.
누가가 6장 20-49절에 소개한 예수님의 훈령은 마태복음 5-7장에 실린 산상수훈과 시작부터 끝까지 내용이 거의 같다. 그렇지만 누가의 것이 30절에 불과한 반면, 마태의 것은 109절이나 된다. 절수로만 보면, 마태가 소개한 산상수훈의 28퍼센트에 조금 못 미친다. 그리고 마태가 산상수훈의 거의 모든 내용을 모아서 마태복음 5-7장에 집중시킨 반면, 누가는 내용의 일부를 그의 복음서 곳곳에 분산시켰다. 그러나 분산된 내용을 다 합치더라도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분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마태의 관심은 유대교의 모세오경에 능가하는 기독교의 복음과 모세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소개하는데 있었다. 그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많은 양의 비유와 말씀들이 소개되었다. 반면에 누가의 관심은 이방세계를 향한 평화의 복음, 즉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2:10)과 “이방을 비추는 빛”(2:32)으로써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있었다. 그 때문에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14개의 선교비유를 비롯하여 사마리아인, 이방인, 여자, 어린이, 가난한 자, 멸시받는 자, 병든 자,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어린 사역이 소개되었다. 마태는 율법에 의한 옛 질서를 대신할 메시아시대의 새 질서에 따른 새 윤리를 설파하는데 주력한 반면, 누가는 사마리아인, 이방인, 여자, 어린이, 가난한 자, 멸시받는 자, 병든 자, 고통 받는 자들에게 필요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데 주력하였다. <이것이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의 일부가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의 길에서, 특히 이방지역인 데가볼리와 베레아에서 선포된 이유이다.>
강령(綱領)의 대상(對象)
평화군의 대강령(大綱領)은 애인(愛人) 즉 ‘인간사랑’이다. 누가복음 6장 20-49절에 실린 예수님의 훈령(訓令)의 특징은 경천(敬天) 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없다는 점이다.
누가복음 6장 20-49절에 실린 예수님의 훈령은 평화군이 실천해야할 15개의 강령이다. 이 15개의 강령은 ‘손 내밀기’와 ‘생명 구하기’를 누가 누구에게 실천할 것인가를 말씀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이 3인칭으로 되어 있는 반면에 누가복음 6장 20-49절의 강령은 “너희”라는 2인칭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너희”란 예수님의 훈령을 듣고 있는 평화군의 용사들이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17절)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훈령을 실행에 옮겨야할 자들이다.
예수님의 훈령은 복(福)과 화(禍)의 선언으로 시작된다. 마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숫자 8에 맞춰서 8복을 언급하였지만, 누가는 마태의 8복의 절반인 4복을 소개한 대신에 마태복음에 없는 4화를 추가하였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에는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가 각각 네 개씩 병행되어 나타난다. ‘가난한 자’(20절), ‘주린 자’(21절), ‘우는 자’(21절) 및 ‘왕따 당한 자’(22-23절)는 복이 있고, 23절에서,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하였다. 이 복은 뒤에 이어진 15개의 강령을 실천하고, 35절에서, 받을 상이 크고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는 약속과 동일한 복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인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및 왕따 당한 자는 평화군의 용사로서 강령의 실천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겪을 자들이다. 반면에 “부요한 자”(24절), “배부른 자”(25절), “웃는 자”(25절) 및 “칭찬을 받는 자”(26절)는 15개의 강령들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기준이 없다면,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왕따 당한 자라고 해서 무조건 복을 받거나 큰 상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 기준이 없다면, 반대로,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을 받는 자라고 해서 무조건 화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버림당한 자는 예수님의 평화군의 용사인 그리스도인 자신일 수도 있고, 강령을 실천해야할 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버림당한 자이며, 또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버림당한 자에게 사랑을 실천해야할 평화군의 용사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평화군의 대강령(大綱領)인 애인(愛人) 즉 ‘인간사랑’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및 칭찬을 받는 자라고해서 복을 받을 수 없거나 화가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및 칭찬을 받는 자란 잘 살고 행복한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강령을 실천하지 않거나 핍박하는 자들이다. 역사(歷史)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입증하듯이, 복과 화는 반드시 받을 자에게 돌아간다는 뜻으로 누가는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혹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다”(23,26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두 번 언급하였다.
강령(綱領)의 실천방법
누가복음 6장 20-49절의 15개의 강령은 예수님의 평화군의 ‘손 내밀기’와 ‘생명 구하기’가 어떤 방법으로 실천되어야할 것인가를 말씀한다. 이 강령들은 전후반부로 나눠져 있는데 앞부분에 10개가 나온다. 1)원수를 사랑하라. 2)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3)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 4)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한쪽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쪽 뺨도 대주라. 6)겉옷을 뺏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7)구하는 자에게 주라. 8)가져가는 자에게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 9)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10)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이 10개의 강령은 모두가 대인관계 혹은 이웃관계에 관한 것으로써 애인(愛人) 즉 ‘인간사랑’에 관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32-34절에서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너희가 만일 너희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너희가 만일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셨다. “칭찬(credit) 받을 것이 무엇이냐?”는 “무슨 상급(reward)이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35절에서 10개의 강령을 한 줄로 요약하시면서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고 말씀하셨고, 또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다”고 하시면서 강령을 실천하는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후반부 36-38절에 5개의 강령이 더 나온다. 11)자비로운 자가 되라. 12)비판치 말라. 13)정죄하지 말라. 14)용서하라. 15)주라. 그리하면, 비판받지 않고, 정죄를 받지 않으며, 용서를 받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38절)고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비판하고, 정죄하며, 용서하지 않고, 주지 않는다면, 너희를 그렇게 행하도록 만든 기준, 잣대, 저울, 법률 등이 바로 너희를 비판하고, 정죄하며, 용서하지 않고,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38절에서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다”고 하신 말씀의 뜻이다.
예수님은 39-49절에서 예수님의 평화군의 용사들이 강령을 지켜야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셨다. 눈이 성해야 맹인을 인도할 수 있고, 온전해져야 선생과 같아지며, 제 눈 속의 들보를 빼내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빼낼 수 있다고 하셨다. 좋고 나쁜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선하고 악한 사람도 그의 언행을 보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또 평화군의 대장이신 예수님의 강령을 듣고 실천하는 자는, 48절에서,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한 것”과 같으나 예수님의 강령을 듣고 실천하지 아니하는 자는, 49절에서,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한 것”과 같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강령은 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분명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바꾸며, 세상에 평강을 끼치는 일이란 것을 예수님은 친히 입증해 보이셨다. 예수님의 가치판단이 옳다는 것은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이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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