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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8]누가복음 4-9장의 만선(滿船) 이야기(눅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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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206 2012.11.2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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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8]누가복음 4-9장의 만선(滿船) 이야기(눅 5:1-13)

만선의 기쁨: 예수님을 태워야

갈릴리 호수에 어부들의 배가 있었다. 밤이 새도록 고기잡이를 했지만, 잡은 것이 없어서 비어있는 배였다. 이 쓸쓸하고 처량한 배에 예수님의 관심이 쏠렸다. 물결에 출렁이며 내는 삐걱 소리, 그 소리가 뭔가를 갈망하고, 애원하는 호소란 것을 아셨다. 누가복음 4-9장은 이 삐걱 소리가 도움을 구하고 있는 병든 자, 죄지은 자, 가난한 자, 우는 자, 버림당한 자의 외침이란 것을 밝혀준다.

누가복음 5장의 빈 배는 인간들의 오랜 외로움의 상징이다. 인간들의 오랜 출렁임의 상징이다. 인간들의 오랜 헛수고의 상징이다. 인간들의 오랜 배고픔의 상징이다. 인간들의 오랜 병듦의 상징이다. 그런 빈 배에 예수님의 시선이 꽂혔다.

누가복음 5장의 빈 배는 그릇의 상징이다. 37-38절에 언급된 가죽부대가 그것을 말해준다. 여기에 낡은 가죽부대와 새 가죽부대가 언급된 것은 그릇의 변화, 낡은 것이 새 것이 되고, 병듦이 건강함이 되며, 죄인이 성도가 되고, 주린 자가 배부른 자가 되며, 우는 자가 웃는 자가 되고, 버림당한 자가 위로받는 자가 되며, 빈 배가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그래서 하나님나라가 그들의 나라로 바뀌는 변화가 필요한 그릇이다.

예수님은 이 변화를 위해서,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되는 빛과 생명과 평화의 일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사도들을 택하시어 평화군(a peace corps)을 조직하시고, 강령을 선포하시며, 임무를 설명하시고, 미션수행의 모범을 보이시며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파송하셨는데, 이 내용이 누가복음 4-9장의 기록이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의 팬에 해당되는 구경꾼이 있고, 그물을 씻는 어부들이 있다. 이 어부들은 밤샘을 했지만, 빈 배로 아침을 맞은 실패자들이고, 예수님께 냉담했던 자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태운 빈 배와 베드로가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빈 배에 예수님을 태웠고, 말씀에 순종하여 만선(滿船)을 체험하였다. 베드로는 이 체험을 계기로 어부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바꿨다. 냉담했던 자에서 수제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어부들이 밤샘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것, 그것도 만선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은 그것을 취하지 않고 바로 버렸고, 심지어 생업도구인 배까지 또 만선을 이룬 물고기까지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점이다. 예수님을 배에 태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졌거나 만선체험 후 “깊은 데”가 무얼 뜻하는지 알게 되었거나 천직을 발견했거나 만선의 진정은 기쁨이 어데서 비롯되는지를 알았기 때문은 아닌지 연구해볼만한 일이 생긴 것이다.

누가복음 5-6장에는 비교해 볼만 것들이 있다. 빈 배와 만선을 이룬 배, 어부들의 밤샘 수고와 예수님의 밤샘 기도, 그물과 같은 생업도구를 챙긴 행위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행위가 그것들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빈 배에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빈 배는 어부들이었을 수 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밤샘그물질이 가져온 결과는 헛수고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빈 배에 모셔야할 분은 예수님이시다. 만선의 기쁨이 그분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만선의 기쁨: 손을 내밀어야

누가복음 5장 5절에서 어부들이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허탕을 쳤던 것의 대칭은 6장 12-13절에서 “예수께서 ...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일로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허탕을 친 어부들을 불러 사람을 낚는 제자로 삼으셨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가? 하나님의 일 때문인가, 세상의 일 때문인가, 우리는 과연 수고한 보람을 얻고 있는가, 마냥 허탕만 치고 있는가, 우리가 밤을 지새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삶의 목적, 성과, 소명, 사명에 대해서 점검을 하고 있는가?

누가복음 5장 13절에서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문둥병자]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신 것의 대칭은 6장 10절에서 예수님께서 “그[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한 말씀이다. 여기서 문둥병자와 손 마른 자가 고침을 받은 기적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 5장 11절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른” 후에, 또 5장 28절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른” 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뭔가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암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할 것인가, 무엇을 내려놓아야할 것인가? 우리를 짓누르고 지치게 하며 탈진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우리의 짐들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손을 내밀어”와 “네 손을 내밀라”에서 도움을 주는 자나 도움을 받는 자 모두가 손을 내미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대체 이 둘 사이에 어떤 역학이 있는가? 누가복음 5장 12절에서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와 13절에서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고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과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고칠 수 있다는 믿음과 고쳐주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서 만들어진 시너지는 어떻게 효과가 나타났는가? “나병이 곧 떠났다”는 13절의 말씀에 그 답이 있다. 또 5장 18-26절에서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인 채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린 협력자들의 돕겠다는 마음과 중풍병자의 고침을 받고 싶다는 마음과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합하여 만든 시너지는 어떻게 효과가 나타났는가? 25-26절을 보면, 중풍병자가 침상에서 일어나 그것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것을 본 사람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람, 예수님, 하나님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는 영광으로, 땅에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눅 2:14) 보상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훼방꾼이 될 수도 있고, 구경꾼이 될 수도 있으며, 일군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을 주기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서 만선의 기쁨을 원한다면, 예수님처럼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고, 빈 배를 채우는 제자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만선의 기쁨: 생명을 살려야

빈 배는 인간들의 오랜 외로움의 상징이다. 빈 배는 인간들의 오랜 출렁임의 상징이다. 빈 배는 인간들의 오랜 헛수고의 상징이다. 빈 배는 인간들의 오랜 배고픔의 상징이다. 빈 배는 인간들의 오랜 병듦의 상징이다. 그런 빈 배에 예수님은 관심을 보이셨다.

빈 배는 밤샘수고를 했지만 허탕을 친 어부들의 상징이다(5:1-11절). 빈 배는 문둥병자의 상징이다(5:12-16절). 빈 배는 중풍병자의 상징이다(5:17-26절). 빈 배는 손가락질 당하는 세리의 상징이다(5:27-39절). 그러나 빈 배는 깊은 데로 가기를 원한다. 빈 배는 만선의 기쁨을 원한다. 빈 배는 수고한 보람을 원한다. 빈 배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질고로부터 고침받기를 원한다. 오랜 외로움, 오랜 출렁임, 오랜 헛수고, 오랜 배고픔, 오랜 병듦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빈 배는 누군가의 깊은 관심을 원한다. 빈 배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란다. 빈 배는 의사를 필요로 한다.

누가는 그 누군가가 예수님이신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빈 배에 관심을 보이셨고, 만선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으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고치셨고, 중풍병자에게 영혼과 육체의 질고로부터 해방을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빈 배에 관심을 갖고 채우셨을 뿐 아니라, 빈 배의 소유자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시고 또 다른 빈 배들을 채우도록 하셨다.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던 자가 도움을 주기 위해 손을 내미는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적재적소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5:36-39절). 헌 옷에 새 옷 조각이 적절치 않고, 새 포도주에 낡은 가죽 부대가 적절치 않듯이, 의사는 건강한 자에게 필요치 않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의 적재적소는 어디인가? 그곳은 건강한 자들의 현장이 아니라 병든 자들의 현장일 것이다. 그곳은 가득 채워진 현장이 아니라, 비어 있는 현장일 것이다. 그곳은 배부른 자들의 현장이 아니라 배고픈 자들의 현장일 것이다.

예수님은 빈 배들을 보시고 그 배들이 채워져야 할 것을 아시고 만선을 이루게 하셨다(5:1-11절). 예수님은 문둥병자가 엎드려 낫기를 구할 때, “손을 내밀어” 고치셨다. 예수님은 이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한 적한 곳을 찾아 가셔서 이 안타까운 현실을 놓고 기도하셨다(5:12-16절).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낫기를 원하여 지붕의 기와를 벗기기까지 했을 때 그 절박함을 보시고 그의 육신의 병은 물론이고, 영혼의 죄까지 사해 주셨다. 그가 원하는 육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에게 필요한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다(5:17-26절). 이뿐 아니라, 예수님은 멸시의 대상인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죄인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다. 이것은 인간의 문제가 육적인 문제 즉 떡(빵)과 건강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 즉 복음(교회)과 구원에 있어서 반드시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려 회개시키려 왔노라”(5:27-32절).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존재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지, 만선의 기쁨은 또 어떻게 오는지를 성찰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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