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강20]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1(눅 9: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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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0]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1(눅 9:51-56)
오름과 생명의 일
유대인들은 ‘오름’을 ‘알리야’(aliyah)라고 부른다. 특히 이 오름은 ‘예루살렘 시온에로의 오름’(ascension to Zion)을 말한다. 지역의 높낮이와 동서남북에 상관없이 예루살렘에로 향하는 것이 오름이다. 예루살렘이 다윗왕국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전국에 단 하나뿐인 성전(聖殿)이 세워졌던 성지(聖地)이며, 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석회암으로 된 해발 760미터 고지에 자리하고 있어서도 그렇다. 다음 장에 소개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언급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10:30)까지는 약 30킬로미터이며 내리막길이다. 여리고는 해수면보다 260미터나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예루살렘까지의 고도가 무려 1020미터에 이른다. 만일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를 예수님처럼 도보로 오른다면(18:35-19:10), 제주공항에서 한라산 1100고지 휴게소까지를 도보로 오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51절) 제자들과 더불어 갈릴리 북쪽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걷기 시작하셨다. 직선거리로도 130여 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였다. 예수님 당시 도보로 6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고 한다. 당대의 사람들이 하루 30킬로미터씩 걸었다고 가정했을 때, 총 도보거리는 180여 킬로미터에 이른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생애 마지막을 보내신 기간도 6일간이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까지의 기간이 두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오른 예루살렘에로의 여행이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렸는지, 몇 킬로미터나 걸으셨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여행은 주후 30년 겨울과 봄 사이에 이뤄졌고, 유월절을 일주일 앞둔 니산 8일 또는 양력 3월 31일 금요일 오후에 예루살렘외곽 베다니에 도착하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갈릴리 지방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써 이곳 갈릴리에는 해수면보다 무려 210미터나 낮은 곳에 5천만평이 넘는 큰 호수가 있다. 물은 1년 내내 눈으로 덮인 헐몬산에서 유입되기 때문에 맑고 깨끗하며 37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겨울에 집중되고 연평균 200~500밀리미터에 불과한 물 부족 국가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이렇게 큰 담수호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다.
갈릴리 호수는 북쪽 헐몬산에서 유입 받은 깨끗한 물을 남쪽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흐려 보낸다. 요단강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젖줄이다. 이 강의 길이는 320킬로미터나 되지만, 직선거리로는 96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이 강의 특징은 낙차가 크고 협곡이어서 배가 다닐 수 없다. 그 대신 도보로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 60여 곳에 이른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은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을 배경으로 이뤄졌다. 물이 생명체를 살리듯이 예수님의 활동은 사람들을 씻기고 위로하며 고치고 살려냈다. 마치 갈릴리 호수가 물을 요단강으로 흘러 보내듯이 희년과 만선의 기쁨을 모든 사람에게 흘러 보내시려고 제자들을 불러 훈련하시고 파송하셨다. 또 예수님은 생명의 물길인 요단강을 따라 예루살렘에로 향하셨다. (우리도 생명의 물길인 교회생활을 통해서 하늘 예루살렘에로 올라야 한다.)
오름과 죽임의 일
요단강 하류인 남쪽에 유대지방이 있었다. 이곳에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유대인의 거룩한 성이 있다. 예루살렘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시온 산성, 다윗 성, 하나님의 성, 거룩한 성, 정의의 성, 믿음의 성, 평화의 성, 아름다운 성 등이 그것들이고, 문자적으로는 평화의 성이란 뜻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 장소이며, 가장 먼저 교회가 설립된 장소이다. 이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2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사해가 있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무려 421미터나 낮은 곳에 있는 2억5천만평 크기의 염해이다. 염해에서 불과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여리고가 있는데, 염해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여리고는 요단강이 근처에 있고,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여서 오렌지, 바나나, 대추야자 등 온갖 작물이 풍성한 곳인 반면 염해는 사막이며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사해(死海) 즉 죽음의 바다이다. 이 죽음의 바다 가까운 곳에 예루살렘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에 오르셨다.
갈릴리호수에서 넘쳐흐른 물이 요단 협곡을 따라 흐르다보면 사해에 이르게 된다. 사해는 흘러들어온 물을 가두는 죽음의 바다이다. 지대가 너무 낮기 때문에 흘러들어온 물은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높은 기온에 수분을 빼앗겨 염도가 일반 바닷물보다 열 배나 높은 곳이다. 사해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사해(死海)라고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칼슘과 마그네슘 함유량이 높아 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사해는 수십 년 전만 해도 해수면보다 390미터 정도 낮은 곳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30여 미터나 더 낮아져서 해발 마이너스 421미터에 머물고 있고 크기도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1930년보다 32미터나 더 낮아진 수치다. 이유는 요단강 곳곳에 댐을 설치하여 가둔 물을 농업과 생활용수로 쓰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서 사해로 흘러들어오는 물의 양이 심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사해가 줄어들면서 염분 층이 빗물에 녹아내려 ‘싱크홀’이 생기고 이로 인해 지반이 붕괴되고 있고, 유입되는 물의 양이 점점 더 줄어 최근에는 사해가 일 년에 1미터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요단강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요르단에게도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갈릴리와 유대지방 사이에 산지로 이뤄진 사마리아가 있었다. 이곳 사마리아는 주전 722년 앗수리아에 멸망당할 때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강제이주 당한 곳이고,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또 다른 강제이주 당한 이방인들로 채워졌던 곳이다. 그래서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의 피가 섞이고, 유대교와 이교가 혼합된 곳이 되었다. 그리고 북쪽 갈릴리 사람들과 남쪽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였고, 사마리아 지방을 가급적 피해서 왕래하였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란 뜻과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있었던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죽임이 판을 치는 죽음의 도시였다. 맑고 깨끗한 생명의 물을 받기만 하고 내보지 않아 죽음의 바다로 돌변한 사해에서 보듯이, 예루살렘은 정치경제종교의 중심지였지만, 권력과 명예와 재물에 매몰되어 외식으로 율법을 지키고 소통을 가로 막으며 이전투구를 일삼았기 때문에 점차 해골의 언덕으로 변해갔다. 예수님은 이곳에 하나님의 영생수가 흐르게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름의 방향전환
죽음의 도시 예루살렘에 가둬놓고 흐르지 못하게 했던 생명수를 온 세계로 흘러가도록 둑을 허문 이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바울의 공로가 특히 컸다. 사해(死海)라는 예루살렘에 갇혀있던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 세상에 충만”(사 11:9, 합 2:14)하게 한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주후 66-73년과 132-135년에 두 차례 발발한 유대-로마전쟁은 오만과 자기우상에 빠져 이방인들을 멀리하고 멸시하며 하나님을 독점하였던 예루살렘을, 둑을 무너뜨려 물을 흘러 보내듯이, 무너뜨린 사건들이었다. 이때부터, 좀 더 정확히 밝히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난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에 성령님께서 오신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한 오름의 방향은 하늘 예루살렘에로 바꿨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오르는 것은 땅을 얻기 위함이다. 떠돌이와 노예였던 유대인들은 땅에 대한 희망에서 시작된 민족이고, 땅을 얻었으나 빼앗긴 이후 땅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고 살았던 민족이며, 그 땅을 영구히 차지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시온에로 오름을 계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얻고자한 땅은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가난과 질병이 멈추지 않는 고통의 땅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르신 것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땅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큰 기대를 걸었던 유대인들은 치유되기 어려운 환멸과 좌절을 느꼈다. 한편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르셔서 얻고자 했던 것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영원한 땅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 땅은 호숫가의 빈 배처럼 쓸쓸하고 처량하거나 물결에 출렁이며 삐걱거리는 땅이 아니라 희년이 선포되고 평화와 만선의 기쁨이 충만한 영원한 나라였다. 만일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이 땅에서 소망을 찾고자 한다면, 기독교로부터 환멸과 좌절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복음 9장 51-56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하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이 평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사마리아인들의 배척이 그것인데 이 배척은 예수님께서 이미 갈릴리 나사렛에서 당하신 것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예고하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암시한 것이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예루살렘에로 오름에 있어서 불굴의 결단이 필요한데 배척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행 14:22)이라고 했다. 또 51-56절의 말씀은 배척과 핍박이 닥칠 때 박해자들을 대항하지 말고, 복음이 수용되는 다른 지역으로 피신할 것을 교훈한다. 바울 일행은 한 지역에서 쫓기면 즉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쫓기는 것으로 인해 주눅 들거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강조하려했던 것들 가운데 한 가지는 배척과 핍박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여지게 되었으나 오히려 더 많은 지역에 복음이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배척과 핍박은 복음이 더 많은 지역으로 퍼지게 한 수단이 되었고, 교회가 단단하여지게 한 방법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서 생명을 얻을 사람들이다”(히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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