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눅강21]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2(눅 9:57-62)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2,496 2012.12.07 08:35

본문

[눅강21]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2(눅 9:57-62)

오름과 그 목적

갈릴리지방에서의 예수님의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셨고, 명성도 얻으셨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실 자로 예언된 메시아이신 것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의 해방절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의 표적 때 사람들이 앉았던 “푸른 잔디”(막 6:39. 마 14:19와 요 6:10참고)가 유월절이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에서 푸른 잔디를 볼 수 있는 시기는 겨울철이고, 봄이 오는 첫 길목에 유월절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다가오면, 빼앗긴 땅을 되찾고 주권을 회복시켜줄 메시아에 대한 기대로 바람이 들어간 고무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곤 한다. 여기에 더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가오는 유월절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한층 더 높였다. 뭔가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어갔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일인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죽음의 때 혹은 영광 받으실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결심하셨다. 그 때가 주후 30년 겨울철이었고, 다가오는 유월절은 니산 15일, 양력 4월 6일 목요일 밤부터 시작될 것이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한 오름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유월절까지 보름달이 몇 번 떴다가졌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최소 한번에서 많으면 두세 번까지로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르신 것은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목적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평화를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영원한 참 평화를 주시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성전과 유대교율법에 포박된 하나님 신앙을 인류에게 되돌려주시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하나님 신앙을 포박(捕縛)한 바벨론이었고 하나님 신앙을 가두고 생명을 빼앗는 사해(死海)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사 11:9)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합 2:14)하게 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오르시는 것이었다. 또 그 일의 성공적인 성취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의 교회(Christian Church)를 세우시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십자가수난과 부활과 승천과 영광은 일종의 모범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걷게 될 순례의 길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순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역사 속에서 지속시켜가게 한다는 것이 누가의 신학적 통찰이요, 지연되고 있는 재림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러므로 누가는 9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51절에서 승천하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이후부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르시는 과정을 9장 53절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13장 22절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17장 11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18장 31절에서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19장 11절에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19장 28절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다.”라고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오름과 제자의 길

누가복음 9장 57-62절은 세상에 나가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고, 평화와 희년과 만선의 기쁨을 전하며 하늘 예루살렘에 오르는 평화군의 군사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갖춰야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관한 말씀이다. 57절에서 “길 가실 때”는 예루살렘에로 오르는 길을 말하고 소개된 세 사람은 예수님과 제자의 길에 관해 담화를 나눈 자들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 제자의 길에 관한 말씀을 평화군 파송과 예루살렘을 향한 오름의 시기에 배치하였다. 예수님은 이미 8장 19-21절에서 참 가족의 의미를 교훈하셨고, 9장 1-9절의 파송설교에서 희년선포의 긴박성과 복음전도의 절박성을 강조하셨다. 9장 57-62절의 제자의 길에 관한 말씀은 참 가족의 의미와 하나님의 일의 긴박성과 절박성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을 제자로 삼아주기를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아마도 그 사람은 예수님의 인기와 영광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거처도 없이 떠돌아야하는 제자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머리를 누일 곳조차 없는 떠돌이 예언자이셨고, 배척과 환난의 길을 걸으셨던 분이다. 갈릴리에서 그분에게 쏟아진 사람들의 열광과 인기는 세속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짧게는 수주일 길게는 수개월이내에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말 거짓된 것이었으며,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 독배였다. 그러므로 인기와 영광만을 보고 제자의 길을 걷겠다고 나선 이 사람의 청을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58절)는 말씀으로 거절하셨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셨으나 먼저 부친을 장사지내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이 사람은 윤리적 도덕적 사회적 의무이행에 가치를 둔 효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60절)는 말씀으로 이미 강조하셨던 참 가족의 의미와 하나님의 일의 긴박성과 절박성에 관해서 교훈하셨다.

세 번째 사람은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을 약속하면서 먼저 자신의 가족에게 작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는 말씀으로 청을 거절하셨다. 제자가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온전히 헌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참 가족의 의미와 하나님의 일의 긴박성과 절박성을 재고하도록 교훈하셨다.

한편 마태는 이 제자의 길을 광풍진압 사건에 맞춰서 소개하였다. 따라서 마태복음 8장 18-27절에 소개된 갈릴리 호수에 불어 닥친 광풍을 진압하신 예수님의 기적은 제자의 길이 고난과 죽음을 각오해야할 험난한 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포기할 각오와 가난하여질 각오와 하나님의 참 가족의 의미와 하나님의 일의 긴박성과 절박성을 깨달아 즉시 결단하고, 위험에 직면하여 죽음을 불사하며, 성령님으로 충만함과 쉼 없는 기도와 믿음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오름과 신앙생활

누가는 신약성경을 쓴 다른 어떤 저자들보다도 ‘성령’과 ‘성령 충만,’ ‘기도’와 ‘기도하다’란 단어를 월등히 많이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쉼 없는 기도만이 성령 충만할 수 있고 성령 충만해야 하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생활과 성령 충만하심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델과 샘플로 제시하려고 하였다.

첫째,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신령한 체험들을 하셨다.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 문이 열렸고,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으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는 음성을 들으셨다. 또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입은 옷에서 광채가 빛났으며,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율법과 예언에 관한 신령한 담화를 나누셨다(눅 9:28-29).

둘째,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셨다. 먼저 누가복음 11장 5절부터 13절의 비유에서 ‘강청(强請)의 기도’를 강조하셨고, 18장 1절부터 8절의 두 번째 비유에서는 ‘끈질긴 기도’를 강조하셨으며, 18장 9절부터 14절의 세 번째 비유에서는 ‘겸손의 기도’를 강조하셨다. 특히 강청의 기도를 강조하실 때에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셋째,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다. 공직생애를 앞두고 40일간 금식기도로 준비하셨고(4:1),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에 한적한 곳에 피하셔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도를 하셨다(5:16). 제자선택을 앞두고 산에 올라가 철야기도 하셨고(6:12),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앞두고 홀로 외로이 기도하셨다(9:18).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도 기도하셨다(11:1).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보기도 하셨다(22:32).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는가를 알리기 위해서 누가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고 적었다. 십자가에서도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기도를 드리고 운명하셨다.

예수님께서 배척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또 민중이 요구하고 제자들이 원하며 마귀가 꾀이는 빵과 명예와 권세에 대한 유혹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충만하셨기 때문이고, 기도하셨기 때문이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끊을 수 있었던 것도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며 행한 기도 때문이었다(22:41-44). 못 박히신 십자가에서조차 고고한 모습을 보이실 수 있었던 것도 기도하셨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성공의 비결은 그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서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