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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2]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3(눅 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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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612 2012.12.1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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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2]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3(눅 10:1-24)

70인의 신학적 의미

숫자 70(혹은 72)은 완전, 충만, 전체를 의미하며, 지구상의 모든 종족을 상징한다. 숫자 70은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누가복음에서 이 숫자가 갖는 의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며, 전 인류를 상징한다는데 있다.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인 70(LXX역에서는 72) 종족의 명단이 실려 있다. 야벳의 계보에서 14종족, 함의 계보에서 30종족, 셈의 계보에서 26종족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70 종족은 지구상의 모든 종족을 말한다. 그러나 70이란 숫자는 완전수에 대한 유대개념에 따른 것으로써 문자적 기술(記述)이기보다는 신앙적 기술이다. 인류가 하나님이 만드신 한 조상에서 비롯된 한 가족임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들고, 아담을 통해서 종족이 퍼져나갔듯이, 홍수이후에도 노아를 통해서 다양한 종족들이 퍼져나갔고,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사는 지역이 다를지라도, 근본은 다 하나님의 가족이란 것이다.

헬라제국시대인 주전 3세기에 유대인들은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이 성경을 셉투아진트(Septuagint) 혹은 70인 역(LXX)이라고 부르는데, 전승에 의하면, 70(혹은 72)인의 학자들이 프톨레미 필라델푸스 통치시대인 주전 284-247년 사이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프톨레미 필라델푸스의 지원 아래 이스라엘 12지파에서 6인씩 선발된 72인이 알렉산드리아 인근의 바로스 섬에 모여서 72일 동안 모세오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고 전한다. 유대교적 기독교를 이방세계의 기독교로 발전시킨 바울, 바나바, 빌립, 스데반과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바로 이 70인 역 그리스어 성경을 사용하였고, 당연히 누가와 디모데와 같은 이방인 기독교인들도 이 70인 역을 사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70(혹은 72)이란 숫자는 유대민족에서 전체 인류, 소수민족종교 유대교에서 전체 인류의 종교 기독교에로 확대된 것을 뜻한다.

유대인들에게 70(혹은 72)이란 숫자는 완전하고 충만하다는 뜻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근 때 야곱이 데리고 이집트에 들어간 사람의 숫자가 70명이다(창 46:27). 이 숫자는 며느리들이 제외된 것이기 때문에 신학적 의도인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소 215년에서 최장 430년 만에 야곱의 후손들이 춘분이 지난 보름날(유월절)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50일 만에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식 때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섰다(출 24:1,9). 이밖에도 기드온의 70명의 아들(삿 8:30), 아합의 70명의 아들(왕하 10:1), 칠십 이레(단 9:24), 바벨론 포로 70년(렘 29:10), 엘림의 종려나무 70주(출 15:27) 등이 구약성경에 언급되었다.

둘째, 유대인들은 입법과 사법의 최고의결기구인 ‘산헤드린’(Sanhedrin)을 70(혹은 72)명으로 구성하였다. 산헤드린은 헬라어로 ‘같이 앉다’(συνεδριον)란 뜻이다. 모세의 70인에서 유래하였다. 의장은 대제사장이었다.

70인 평화군의 파송

누가복음 10장에서부터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이 끝나는 19장까지에 실린 대부분의 기사들이 누가복음에만 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요단강 동편지역, 지금의 요르단에 속하는 베레아 지방에서의 이야기들이다. 이 지방은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파송하신 70인이 평화의 복음을 선포한 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다.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지역에 지구상의 모든 종족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70인을 둘씩 짝지어 파송하신 것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대로 평화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창세기 10장이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인 70개의 종족의 명단을 소개한 것은 인류가 하나님의 가족인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의 길을 이방인 지역으로 택하신 것과 이 이방인 지역에 70인을 파송하신 것은, 물론 사마리아인들의 거부가 원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참 가족을 불러 모우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을 찾기 위해서 파송하셨다면, 70인의 파송은 이방세계로부터 하나님의 참 가족을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70인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상징이며 대표이다.

누가복음 6장은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손 내밀기’와 ‘생명 구하기’를 위해서 ‘성령 충만함’과 ‘기도하기’로 무장한 평화군(Peace Corps) 또는 새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암흑시대를 떠나보내고 광명시대를 열기 위해서 평화군을 조직하셨다. 이 평화군의 선봉장들이 12사도들이다. 6장 17절을 보면, 평화군의 총사령관이신 예수님이 맨 앞에 서셨고, 몇 걸음 뒤에 열 두 사도들이 도열하였으며, 또 몇 걸음 뒤에는 “그 제자의 많은 무리” 즉 예수님의 제자들의 큰 무리가 도열하였다. 여기서 “그 제자의 많은 무리”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것이 70인 제자들일 수 있다.

‘성령 충만함’과 ‘기도하기’로 무장한 예수님의 평화군이 ‘손 내밀기’와 ‘생명 구하기’를 통해서 물리쳐야할 적군들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들이었다. 예수님의 중요 임무들 가운데 한 가지가 사람을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었고(6:18, 13:32), 12사도들(9:1)과 70인들(10:17)의 임무도 귀신을 제어하며 항복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귀신들은 사람들을 외롭게 하고, 병들게 하며, 괴롭게 하는 모든 악한 것들의 원인이며 상징이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한 새 언약공동체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공식 입장이다.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신하는 12제자들이 있고, 70인 장로들을 대신하는 70인이 언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몰몬교가 주장하는 것처럼 통치계급은 아니다. 계시록 7장은 동쪽에서 올라온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도장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수가 144,000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고 노래하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10)가 도열하고 있다. 이들 구원받은 무리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군이고 교회이며 새 이스라엘이다.

70인의 복음사역

앞장인 9장에서 파송의 목적, 긴박성 및 연속성이 언급되었다. 복음사역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목적은 이 생명 살리는 일이 역사 속에서 지속돼야하기 때문이었다. 그 제자들의 공동체가 평화군이고 교회이며 새 이스라엘이다. 이 공동체의 임무는 빈 배처럼 외롭고 흔들리고 배고프고 병들고 지친 이들에게 희년을 선포하고 만선(滿船)의 기쁨을 주는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특징적으로 설명된 것은 평화군의 복음사역이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의 과정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 오름의 길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기”(3절) 때문에 고난의 길이요, 가시밭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 길이 영광의 길이 되고, 승리의 길이 될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고, 역사 속에서 손을 내밀어 생명구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일이 시급하고 긴박하기 때문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기”(2절) 때문에,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챙기거나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4절)할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치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사환 게하시를 파송할 때,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라”(왕하 4:29)고 한 것과 같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만큼 시급하고 긴박하다는 뜻이다.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는 희년선포활동은 역사 속에서 시급하고 긴박하게 지속돼야할 일이지만, 사람들의 호불호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배척을 당하더라도 평안을 빌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의 상처나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말씀한다(5-6, 10-11절). 또 7-8절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와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으라”는 말씀은 12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는 언급되지 아니한 추가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주어진 것을 감사히 받고, 더 좋은 대접을 받기위해서 집을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의 ‘카샤룻’(Kashrut) 음식법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12제자들과 70인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특히 70인은 이방인 지역인 요단강 동편 베레아를 순회하였다. 그들이 접촉해야할 사람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다. 70인이 대접을 받아야할 곳도 대부분 이방인의 집들이었다. 그런데 경건한 유대인들이 카샤룻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과 식탁교제를 갖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행위일뿐 아니라,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생각하는 세리들과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리지 않으셨다. 바울도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평화군의 임무는 귀신을 제어하며 항복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사람들을 외롭게 하고, 병들게 하며, 괴롭게 하는 모든 악한 자들의 능력이 제어되고, 굴복되며, 사망의 권세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해야할 일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17-20절). 그리스도인들의 오름의 행진은 사단의 권세를 붕괴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년의 기쁨을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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